미국 정부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데 대한 국내의 반발을 의식한 듯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테러지원국이라는 ‘주홍글씨’를 북한으로부터 떼냈다.
미국 정부는 특히 북한 핵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강조해온 대북강경파들을 의식한 듯 북한과 합의한 북한 핵프로그램 검증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국무부, 대변인이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발표 = 당초 일각에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발표할 것이라고 관측했으나 이런 전망은 빗나갔다.
국무부는 이날 숀 매코맥 대변인과 성 김 북핵특사, 폴라 드서터 검증.준수.이행담당 차관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발표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발표내용도 북한과의 핵검증 합의내용을 설명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뒀다.
매코맥 대변인은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요소가 핵검증 패키지에 포함됐다”고 강조했고, 성 김 북핵특사는 북한이 조만간 영변 핵시설에 대한 복원조치를 중단하고 불능화작업을 재개할 것임을 역설했다.
이들은 북한이 기존에 신고한 핵시설 뿐만아니라 미신고 시설에 대해서도 상호동의하에 검증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플루토늄 핵프로그램 뿐만아니라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핵확산에 대해서도 검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한 요건을 갖추게 돼 라이스 장관이 이날 오전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국무부의 이같은 발표는 그동안 북핵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요구해온 대북강경파들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존 볼턴 전 UN대사를 비롯해 대북강경파들은 북한이 그동안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데 대해 반대목소리를 내왔다.
◇부시, 직접 ‘일본 달래기’ 나서 =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데 대해 일본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일본 정부 달래기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려는 움직임에 강력 반발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발표에 앞서 아소 다로 일본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전했다.
이 통화에서 부시 대통령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며 북한에 대해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겠다고 약속, 일본 정부를 달랬다는 것.
또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강조하며 일본측을 적극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주미대사관, 미 국무부와 긴밀 협력 = 주미한국대사관은 이날 차분한 가운데 미 국무부의 발표를 지켜보는 등 진행상황을 점검했다.
미국 정부가 발표에 앞서 한국을 비롯해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 긴밀히 협의해왔기 때문에 놀랄 것도, 특별히 대비할 것도 없었다는 것.
미국 정부는 당초 10일 이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측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에 반발함에 따라 하루 더 시간을 갖고 일본 등 6자회담 참가국들과 조율했다는 후문이다.
미 국무부는 주미한국대사관과도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진행상황을 한국측에 알려줬으며 11일 오전 발표계획을 10일 오후 최종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태식 주미대사는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북핵 검증문제와 관련, “미국은 북한과 조율하고 있고,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도 입장을 개진하며 미측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입력 : 2008.10.1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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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대북정책 입지 넓어져..북 태도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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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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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함에 따라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일단 북.미 관계 개선의 발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당장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비핵화 2단계가 마무리 수순에 들었다는 점에서 비핵화를 사실상 관계 개선의 전제로 삼아온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북정책을 수행할 입지가 넓어진 것이지만 북한에는 오히려 대남 압박을 가속화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테러지원국 해제 자체만으로도 남북 경협 여건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물자 수출 통제 규정의 완화로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에 대한 남한의 설비 반출이 종전보다는 쉬워질 것이란 게 그 근거다.
더 나아가 테러지원국 해제는 사실상 핵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로 구성된 비핵화 2단계의 마무리, 즉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의미하는 만큼 남북관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 정부에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좋은 여건을 제공할 것이라는게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대북 구상인 비핵.개방 3000의 본질이 비핵화의 진전에 맞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기에 테러지원국 해제 후 북한의 핵불능화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및 남북경협 인프라 구축에 적극성을 띨 공산이 큰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는 핵 문제 진전을 명분 삼아 대북 식량 지원, 개성공단 숙소 건설, 대북 통신 자재.장비 제공 등을 보다 적극적.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될 전망이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다루는 북.미 핵검증 협상이 타결되면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핵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그것에 맞춰서 각 분야 사업들이 검토가 되고 우리가 천명한 입장(비핵.개방 3000)에 맞춰서 조정돼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맞장구’를 칠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북한이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계기로 대미, 대남 관계를 동시에 활성화해서 살길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남북관계는 양측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보이는 태도로 미뤄 대미 관계 진전 노력과는 별개로 남측과는 계속 각을 세우려 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달 한때 대남 비난을 줄였던 북한이 최근 비난의 빈도와 수위를 모두 높이고 있는 점, 강경 메시지를 담은 해군 사령부 대변인 담화를 발표한 점, 삐라 살포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 사업 및 개성관광에 악영향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 점 등은 좋지 않은 조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기 전까지는 대남 관계를 개선할 뜻이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자, 대남 압박을 통해 우리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를 유도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정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한 정권수립 60주년(9월9일)을 즈음해 발표한 담화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언론들이 지난 10일 일제히 보도한 이 담화를 통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북과 남의 화합과 대결, 통일과 분열을 가르는 시금석”이라며 “누구나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지하고 성실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에 따른 대외 환경의 긍정적 변화를 활용해 살길을 모색하되 남측과는 경색 국면을 그대로 가져가려 할 가능성이 일단 높아 보인다.
그 경우 남과 북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져올 주변 정세의 긍정적 변화를 관계 호전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입력 : 2008.10.12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