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을 만나기 위해 국정원 면회실에서 14시간이나 기다리다 결국 쓸쓸히 발걸음을 돌린 ‘국가정보원 강제퇴직 진상규명촉구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회원들.
이들은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직권면직 당했다. 국정원 간부직원 125명을 포함해 581명이 일시에 인사규정에도 없는 ‘총무국근무(재택근무)’ 명령을 받았고, 그로부터 1년 내에 이들은 모두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그 후 이들은 지난 10년여 간 국가를 상대로 10여개에 달하는 각종 소송을 제기했지만, 아직도 못 다한 말들이 많은 듯 했다.
국정원장이 바뀔 때마다 제출하고 있는 이들의 청원서에는 부당하게 퇴직당한 후 지난 10여년간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애끓는 절규가 고스란히 베어 있다.
청원서는 ▲총무국근무(재택근무) 명령의 불법성이 규명돼야 한다 ▲강압에 의한 사직서 제출 사실이 규명돼야 한다 ▲법원도 인정한 구조조정의 허구성을 규명해야 한다 ▲법률상 인사원칙을 무시한 직권남용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잘못된 과거사의 정립은 필연적이다 ▲당시 인사위원들도 불법적인 인사조치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권한 없는 국정원장의 면직처분의 위법성을 사법부가 인정했다 ▲면직자들의 소송에 일관성 없이 대처한 국정원의 입장을 해명해야 한다 ▲소송에 부당하게 관여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잘못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9개항의 진실규명 요청을 담은 A4용지 14페이지 분량이다.
김성호 원장과의 면담이 무산된 후 송영인 진상규명위 대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은 좌파정권이니까 국정원장들이 안 만나줘도 덜 섭섭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니 참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트리며, “앞으론 국회 입법청원과 아울러 실력으로 투쟁하려 한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됐던 피해공무원들이 1989년 제정된 법률 제4101호 ‘80년대 해직공무원의 보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후임정권에서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 받은바 있다”며 “김대중 좌파정권의 대공활동무력화 기도에 따라 강제 퇴출당한 대공전문요원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국정원은 1998년 4월1일 자로 2, 3급 간부 125명을 총무국 재택근무 발령을 낸 후 그해 연말까지 9개월 사이에 2, 3급 직원 총 77명을 승진 또는 신규임용하면서도 총무국 근무자 중 무보직 근무자에 대한 구제조치는 외면했다. 또 98년 4월1일 일부 직제를 폐지했지만, 불과 1~2년 사이 모두 부활 또는 확대개편·신편 시켜 더욱 비대해졌다.
송 대표는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수백명의 직원들을 잘랐는데, 그 후 500명을 시험도 안보고 특채로 특정지역 사람을 뽑았다”고 주장하며 “국정원의 대공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고 혀를 찼다.
진상규명위는 지난 98년 이종찬 국정원장이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결제도 없이 사무관급 이상 간부직원들을 해임한 문제도 제기했다. 이 부분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합법한 것으로 판결났지만, 진상규명위 측은 ‘정치적 의도’에 따른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송 대표는 “당시 대법원 판결요지는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임명할 때 해임권도 위임했다고 확대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지나치게 ‘정치적 의도’를 가진 해석”이라면서 “김만복 국정원장 취임 후 정치재판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