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서울에서 회견 중인 로버트 러니.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한국이 불과 60여년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라운 성장을 이뤄낸 것을 보니 내가 이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6·25전쟁 중 1950년 '흥남(興南)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로버트 러니(Lunney·81)씨가 15일 한국을 찾았다. 흥남에서 피란민과 군 병력 10만여명을 철수시킨 이 작전 당시 러니씨는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상급 선원이었다. 현재 미국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러니씨는 정부가 건국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호국유공 외국인의 한 명으로 선정됐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0년 12월12~24일 중국군의 인해전술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맥아더 장군은 동부전선의 미군과 한국군을 흥남항에 집결시켜 피란민과 함께 선박 편으로 철수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러니씨는 47명의 동료들과 함께 작전의 맨 마지막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탈출했다. 사흘간 진행된 이 탈출은 식량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은 기적 같은 사건으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2004년 영국 기네스북 본부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세계 기록'으로 인정했다.
▲ 1950월 12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하기 위해 흥남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피란민들. /조선일보DB
20대 청년으로 작전을 수행했던 러니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추운 겨울날 중국군이 사방을 둘러쌌던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잊을 수 없다. 갑판과 짐칸 할 것 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태웠는데 대부분 노인과 여자, 아이들이었다. 노인들은 아이들을 꼭 안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 배 위에서 임산부 5명이 아이까지 낳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당시 배 위에는 음식도 물도 전기도 의사도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러니씨는 "피란민과 우리들은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당시 레오나르도 라루(LaRue) 선장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희생자 한 명 없이 성공적으로 거제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감격스러운 순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러니씨는 당시 직접 찍었던 사진들을 포함해 흥남철수를 기록한 각종 자료를 수집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며 남북통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 알렉산더씨와 함께 한국을 찾은 러니씨는 비무장지대 등을 둘러본 뒤 21일 출국할 예정이다.
▲ 6·25전쟁 중 1950년 ‘흥남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로버트 러니(Lunney·81)씨가 15일 한국을 찾았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