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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ARF 의장성명 파동… 오해와 속사정 /싱가포르, 양측 문구 동시 삭제 결정한 듯 (연합뉴스)
글쓴이 연합뉴스 등록일 2008-07-27
출처 연합뉴스 조회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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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   2008.7.26(토) 20:00 편집


ARF 의장성명 파동… 오해와 속사정 

 

북, 금강산 삭제 요청..남측은 '이의 제기'
 
 

싱가포르, 양측 문구 동시 삭제 결정한 듯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금강산 피격사건' 및 `10.4 남북정상선언'과 관련된 문구가 포함됐다가 삭제된 경위를 둘러싸고 "많은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의장성명에 포함된 `10.4 선언' 부분을 강력히 삭제하려 했으며, 청와대가 싱가포르 현지에 있던 외교부 팀에 이를 지시했다는 부분, 그리고 ARF의장국 싱가포르와 한국 고위당국자간 면담 과정 등 주요 대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못했다고 강조했다.

◇北, 의장성명 삭제 요청..南은 이의제기 = 우선 북한도 의장성명의 내용 가운데 '금강산 사건' 관련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ARF 의장성명에서 북한에 대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의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문구가 다음날 삭제된 것은 북한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고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24일 내놓은 의장성명 최종본에 금강산피격사건에 대한 언급과 일본의 의사를 반영한 '인도적인 우려'라는 표현을 포함시켰지만 북한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자 금강산 사건 부분을 삭제했다. 일본이 자국인 납북자 문제를 감안해 요구한 '인도적인 우려'라는 표현은 한반도 정세와는 다른 단락으로 옮겨졌다.

싱가포르는 또 남북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북한이 요구한 '10.4 남북정상선언에입각한 남북대화 진전을 지지한다'는 문구도 삭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싱가포르와 북한 사이에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확인하느냐"고 답을 피하고 있다.

우리 정부 대표단 역시 24일 밤 의장성명 내용이 전해지자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10.4선언이 성명에 담길 가능성을 낮게 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 기조가 10.4선언 이행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수용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금강산피살 사건이 일어난 지난 1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10.4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면서 남북간의 전면적 대화를 제의한 것도 정부 대표단의 판단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란 의장성명 내용은 사실관계도 부합하지 않는데다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5일 점심때 싱가포르 차관을 만난 이용준 차관보는 이미 상황이 끝났지만 다시 한번 의장성명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토대로 '이의제기'를 했다.

즉,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지지하는 발언은 우리 뿐만아니라 5∼6개국 외교장관이 함께 했기 때문에 의장성명에 넣을 수 있지만 10.4선언과 관련한 발언은 북한 밖에 하지 않았는데 왜 의장성명에 포함됐느냐고 문제를 제기한 것.

특히 성명에 포함됐던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란 문구의 경우 북한도 회의 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한적이 없다는 점을 싱가포르측에 집중 설명했다고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정부 대표단은 그러나 이의를 제기했더라도 싱가포르가 의장성명 내용을 수정할것으로 100%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싱가포르와 추후 접촉 경위 = ARF 일정이 모두 끝났지만 싱가포르 공식방문 일정이 남았던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가 25일 점심때 싱가포르 차관과 면담을 갖게됐다.

이 차관보는 면담에서 전날 저녁 발표된 의장성명 내용을 거론하면서 "왜 어제 그렇게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싱가포르측에 경위 설명을 요청했고, 싱가포르 측은 ARF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나라로부터 의장성명과 관련된 집중적인 항의와 요구를받고 있어 불가피하게 '연락 경로'를 차단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실제로 40여개 항에 달하는 의장성명의 내용을 놓고 각국은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분쟁을 겪는 태국과 캄보디아를 포함해 각국은 그다지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외교무대의 성과를 담는 의장성명의 내용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한마디로 의장국 싱가포르는 '의장직권'을 활용해 그 당시까지 제기된 회의 내용을 토대로 의장성명을 만들어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카드를 빼들었고 이후 각국으로부터 항의가 쇄도하자 '잠적'했다는 것이다.

그날 조지 여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밝힌 의장성명은 "참가국 장관들은 금강산피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히는 동시에 "장관들은 회담에서 작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과물인 10.4선언을 주목한다"면서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25일 점심때 싱가포르 차관을 만난 이용준 차관보는 이미 상황이 끝났지만 다시 한번 의장성명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토대로 '이의제기'를 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새로운 제의 = 이용준 차관보의 발언을 듣고 난 싱가포르측에서 뜻밖에도 '그럼 남북한과 관련된 두 부분을 모두 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차관보는 유명환 외교장관에 보고했다. 그 결과 ▲이미 금강산 사건은 여러나라가 발언을 했기 때문에 정부가 원하는 충분한 효과를 봤으며 ▲ARF 의장성명에 포함된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란 문구의 경우 북한도 그런 얘기를 한적이 없는데도 그 의미를 모르고 싱가포르 외교부가 의장 성명에 넣은 것을 용인할 경우 앞으로 몇년간 두고두고 인용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끝에 싱가포르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교도통신의 보도내용 등을 감안하면 싱가포르는 24일 성명을 내놓은 뒤부터 북한으로부터도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싱가포르는 북한의 '수용불가' 입장과 한국의 '이의제기'를 듣고는 다시 한번 '묘수'를 꺼내든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번 의장성명 수정 파동은 의장국 싱가포르가 여러 참가국 간 신경전의와중에서 의장직권으로 의장성명을 냈다가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하면서 빚어진 일로 귀결된다.

한 정부관계자는 "ARF 의장성명은 구속력도 없고 국제사회에서 갖는 무게감도 그리 크지 않다"면서 "그리고 성명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절차도 해당 회원국의 요청을 의장국이 받아들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장성명(Chairman's Statement)은 각 참가국들 사이에서 이뤄진 회담 내용을 외부로 알리는 일종의 선언적인 문건이자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의장국이 회의에서 나온 의제들을 묶어 발표하는 형식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한 정부소식통은 "ARF에서 금강산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한 정부의 방침이 잘됐느냐, 잘못됐느냐를 따질 수는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ARF 의장성명의 성격 등을 감안할 때 싱가포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에 대한 정확한 상황파악을 우선 한 뒤 판단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ARF에서 금강산 사건을 제기한 것은 남북 당국간 채널이 막힌 상황에서 우리측 요구가 전혀 북측에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방안"이라면서 "무고한 민간인이 살해당했는데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