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부, 北성명 악용우려 수정요구… ‘뒤늦은 대처’ 외교력 한계 노출 (동아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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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동아일보 | 등록일 | 2008-07-26 |
출처 | 동아일보 | 조회수 | 1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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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 2008.7.26(토) 02:54 편집 |
정부, 北성명 악용우려 수정요구… ‘뒤늦은 대처’ 외교력 한계 노출
북한 반발 예상… 남북관계 경색 길어질 듯
野“비전도 전략도 없는 외교참사” 맹비난
■ ARF성명 ‘금강산-10·4’ 삭제 파장
정부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국 성명에서 2007년 남북이 체결한 10·4 정상선언 관련 문구를 삭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이유는 두 가지로 파악된다.
우선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의 산물인 10·4선언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
또 남북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주장해 온 ‘10·4선언의 이행’이 국제사회의 공식 문서에 기록되는 것이 북한의 대남 공세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일은 한국 외교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외교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정부가 10·4선언 문구 반대한 이유=북한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새 정부에 10·4선언을 이행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두 선언을 과거 남북의 어떤 합의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두 선언의 이행을 통해 한국 정부가 대북 ‘햇볕정책’을 유지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기본 합의를 1991년 노태우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요구에 대해선 명확한 방침을 유보해 왔다. 이 대통령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최근 “과거 모든 남북합의의 이행을 위한 대화”를 강조해 왔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정권 지지층의 요구를 염두에 둔 측면이 크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으로 왜곡된 남북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보수적인 지지층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한국 내 보수 여론은 6·15공동선언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모호한 형태로 수용한 것이고, 10·4선언은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는 대규모 경제지원을 마구잡이로 약속한 ‘대북 퍼주기’의 결정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의장국 성명에 10·4선언의 이행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성명이 ‘남북기본합의서와 10·4선언의 이행’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에 외교적으로 거의 전례가 없는 무리수를 둬가며 의장국 성명을 사후에 수정한 데는 이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파장 있을까=정부 외교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북한의 요구가 성명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고, 회의가 끝난 뒤 이를 삭제하는 소동을 벌인 것은 한국 외교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25일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을 지지하는 내용을 빼기 위해 금강산 피격사건의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도 포기했다”며 “굴욕 외교에 이은 망신 외교”라고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비전도 전략도 없는 외교력 한계가 빚은 참사”라며 “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북한도 성명서 내용이 수정된 것에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여 남북관계의 경색을 푸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24일 오후8시 北요구따라 초안에 없던 ‘10·4정신’ 문구 포함
24일 밤 현지대표단 비상… 柳외교 “반드시 수정하라”
25일 오후5시 싱가포르 “北반발 예상” 금강산-10·4 함께 빼▼
■ 의장성명 수정 전말
1차 초안에 만족→1차 최종안에 당혹→2차 최종안에 안도.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해 24, 25일 이틀간 의장국 성명서 작성과정을 지켜본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서의 최대 관건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해결 및 10·4남북정상회담 정신을 언급한 두 조항 가운데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삭제하느냐였다. 남북 간 경쟁이 벌어진 만큼 진통도 컸다.
외교부 유명환 장관은 ARF 회의를 통해 금강산 피살사건 해결에 대한 국제 공감대 확보에 주력했다. 한국 정부는 특히 금강산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면서 반드시 ‘남북 대화를 통해서’란 표현을 넣으려고 애썼다. 미국만 상대하려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 압박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회의기간에 줄곧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발표한 ‘10·4선언’에 기초해 남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표현을 성명서에 넣겠다고 고집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은 틈만 나면 10·4정신을 강조했지만, 단 1개국도 이 말에 공개적으로 동조한 나라는 없었다”고 말했다.
회담 결과는 폐막일 날 발표되는 의장국 성명서에 집약되는 만큼 24일 오후 처음 공개된 초안은 단연 관심거리였다.
한국 외교부는 초안을 읽은 뒤 만족해했다는 후문이다. 폐막과 동시인 오후 4시에 회람된 초안에는 한국이 원하던 ‘금강산 발언’은 포함됐지만, 북한이 바라던 10·4정신 문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녁 무렵 상황이 급반전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북한의 요구가 너무 강하다.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알려왔다. 결국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에 “성명서 작성은 의장국의 직권임을 존중한다. 그러나 남북 간 균형은 맞춰 달라”고 요청하는 선에서 물러섰다.
그러나 막상 24일 오후 8시 성명서 최종안이 공개되자 외교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희망대로 10·4정신 문구를 반영했지만, 한국이 요구한 금강산 문제를 언급할 때 ‘남북 대화를 통해서’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싱가포르 현지의 한국대표단은 24일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호출돼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유명환 장관은 “모든 외교력을 가동해 성명서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이용준 차관보에게 전달했다.
유 장관의 ‘이례적 지시’는 청와대의 기류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이 차관보는 싱가포르 외교차관을 25일 오전에 만나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결국 정오쯤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 정부의 정중한 뜻을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단, “한국의 요구만 수용하면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금강산 및 10·4정신 부분을 모두 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최종성명은 이날 오후 5시 싱가포르 외교부 홈페이지에 오르면서 확인됐다.
정부 내 고위당국자는 “1차 발표문에 넣어야 할 문구는 못 넣고, 막아야 할 표현은 못 막았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라도 두 대목 모두를 뺀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싱가포르가 최종본을 북한에 보여주고 동의를 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싱가포르=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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