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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조달러 몇년간 조사해와… 수집된 증거 상당한 설득력있다"
크리스토퍼 힐 美 동아태차관보 인터뷰
워싱턴=강인선특파원 insun@chosun.com
입력 : 2005.12.18 21:02 48'
▲ 인터뷰 사진을 찍으려 하자 힐 차관보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뒤쪽 탁자 위에 원래 있던 테레사 수녀 사진을 자신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꿔 놓았다.강인선기자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발언을 자제하던 미국이 최근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Vershbow) 주한 미 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했고, 군축담당인 로버트 조지프(Joseph) 국무부 차관보, 스티븐 레이드메이커(Rademaker) 부차관보 등이 잇달아 북한의 달러 위폐제조 등 불법활동을 경고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한국을 방문한 제이 레프코위츠(Lefkowitz) 북한인권특사도 북한의 불법활동과 인권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이제 협상론에서 압박론으로 방향을 튼 걸까? 진전 없는 핵협상을 잠시 제쳐두고, 위조지폐 등 불법행위와 인권으로 북한문제를 풀어보려는 걸까? 워싱턴에서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Hill)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입지가 약해지고, 대북 강경파들이 득세한다는 추측까지 나돈다. 힐 차관보는 그런 상황에서 지난 16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9월 19일 6자 회담 공동성명 합의 이후 회담이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지고 있는 듯한데….
“북한이 참여할 의사가 있는 한 그렇지는 않다. 6자회담은 아직까지는 북한이나 미국, 다른 참가국들의 이익에 부합한다. 문제는 지난 9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표시나 확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점이 대단히 걱정스럽다.”
―미국이 북한의 외화 송금줄인 마카오의 방코 델타아시아 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한 데 이어, 최근 미국 은행들에 북한이 계좌를 개설해 악용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대북 금융제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금융제재’가 아니다. 위조지폐 발행 등 북한의 불법적 활동 문제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일 아닌가. 미국 수사당국은 몇 년 동안 이 문제를 조사해왔다. 국무부가 외교적, 정치적인 목적에 맞지 않으니 수사강도를 조정해달라든지,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말라든지, 그런 식으로 참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외교부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문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시그널’이 아니라 수사결과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미국은 핵보다 위조지폐문제나 인권문제를 더 중시하고 심각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 또 북한은 소위 이러한 조치가 ‘금융제재’라며 핵 문제 해결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뜻을 거스르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추구하는 한, 북한 금융거래는 면밀한 주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도 핵확산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북한의 자금이 조달되고 관리되는가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북한의 위조지폐 수사결과 나온 증거는 어떤 것인가?
“그 문제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브리핑할 준비도 돼 있고, 다른 외교관들에게도 브리핑한다(지난 16일 오후 실시). 우리가 1~2주일 조사해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주면 좋겠다. 재무부 금융범죄 조사팀이 내놓은 증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위폐사건과 관련해 버시바우 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말한 후, 북한도 반발했지만 열린우리당 의원이 버시바우 대사 소환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그 이야기를 읽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 국내정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일이 다 따라가지는 않는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버시바우 대사가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이며, 이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정부가 다 걱정하는 문제가 아닌가.”
―북핵 협상이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에 대해 상당히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 좌절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어려움은 예상했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일인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미지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도대체 누가 핵무기를 만들려는 북한과 크게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겠는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진정으로’ 있다고 믿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북한이 정말 지난 9월 합의사항을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에게 알려줘야 한다. 공동성명에 합의한 다음날 왜 경수로를 갑자기 요구하는가. 북한의 전기부족 문제는 분명 해결방안을 제시했고,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시점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한 시점이라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는가.”
―북한은 여전히 영변 원자로를 가동해 플루토늄 재처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
“북한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더니 왜 여전히 플루토늄 재처리를 계속하고 있는지…. 전기 때문에? 물론 아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북한도 언젠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진전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전에는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만일 북한이 6자회담을 계속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든지, 또는 참석하지 않을 이유를 계속 만들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계속 생산하는’ 북한에 대항해 우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6자회담이 내년 1월에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가.
“주최국인 중국이 개최시기를 결정해서 알려주면 그때 우리가 북한이 올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겠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를 핵확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워싱턴에서 협상 지지파가 힘을 잃고 강경파들이 득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나는 강경파가 아닌 것 같은가?(웃음)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정말로 아무런 진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야말로 진짜 강경파다.”
―그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좀 더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현재 상황이나 논리로 보면 북한이 충분한 압력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외교적 해결방식이 최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1월 일정을 비워놓고 있다. 만일 북한이 차기 6자 회담에 참여할 의사가 없고 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문제는 커질 것이다.”
지난 9월 19일 공동성명 합의 직후 워싱턴으로 복귀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이날 인터뷰에 나선 힐 차관보는 북핵 문제에 대해 더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북한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고,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년 1월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는 말을 많이 했다. 워낙 노련한 협상가니까 슬쩍 위협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6자회담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힐 차관보는 확실히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실 워싱턴에서 ‘협상파 힐은 어디 가고 강경파만 들끓느냐’고 하던 지난주,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로드아일랜드주에 가 있었다. 그는 “올해 85세인 어머니는 다섯 자녀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면서, “한국정부가 주미 대사관의 위성락 정무공사까지 보내 조의를 표해준 데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부인이 요즘도 한국에서 보낸 날들을 그리워한다면서, “한국의 친구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