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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 2008.7.12(토) 03:00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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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초병, 1km 쫓아와 총격 ?… 우발인가
고의인가
■ 풀리지 않는 의혹들
北 “군사 경계구역內 1.2km 지점서 첫 제지”
박씨 시신은 경계구역內 200m 지점서 발견
2m 철망울타리 있는데 어떻게 넘어갔을까
관광객 자유구역서 총격 당하지는 않았나
박씨 ‘규칙위반’하도록 방조했을 가능성도
금강산 비치호텔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비운의 투숙객 고 박왕자(53) 씨가 11일 오전 4시 반경 숙소를 나서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을 조금 넘긴 오전 9시 40분경. 현대아산 직원들은 두 발의 총탄에 몸이 뚫린 박 씨의 주검을 확인했다.
박 씨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유족과 한국인들은 오로지 가해자인 북한이 말하는 사건 전말밖에 들을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진실’에는 석연찮은 대목이 적지 않다. 한국 측 현대아산과 정부가 사실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과정도 개운치 않다.
▽북한, 도망가는 박 씨를 뒤에서 총격=북한 측 주장에 따르면 박 씨는 호텔을 나와 1.5km 떨어진 금강산해수욕장을 걸었다. 그리고 관광객 자유구역을 뜻하는 가로막을 넘어 북한 측 군사 경계구역 내로 들어섰다.
박 씨가 경계구역을 넘어 1.2km 지나 기생바위 근처에 이르자 북한 초병이 제지했다. 초병은 박 씨를 발견하고 멈추라고 했지만 박 씨는 멈추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초병은 박 씨의 뒷모습을 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오전 5시경이었다. 총알 한 발은 등을 뚫고 가슴으로 나왔다. 다른 한 발은 왼쪽 엉덩이를 관통했다. 박 씨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시신은 다섯 시간 뒤 해수욕장 자유구역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규명되어야 할 의혹들=먼저 박 씨가 자유구역을 넘어 군사 경계구역 내로 들어갔다는 북한 주장이 검증 대상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평소에 관광객들에게 군사경계지역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수차례 당부했는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며 북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박 씨의 시신이 발견된 금강산해수욕장 내 ‘군 경계지역’과 출입이 자유로운 ‘자유구역’ 사이에는 2m 높이의 철망이 세워져 있다.
관광객 자유구역 내에서 총격을 당한 박 씨의 시신을 누군가가 군사 경계구역 안으로 옮겨 놓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태다.
박 씨가 해변에 설치된 철망 울타리를 피해 얕은 바다를 가로질러 자유구역을 벗어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박 씨의 ‘규칙위반’을 방조했을 가능성은 더 커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금강산 관광특구 주변은 군사적 요충지역이어서 북한군이 24시간 삼엄하게 경계를 한다”며 “박 씨가 경계구역을 넘어 1.2km나 진입하도록 방치했다는 대목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7월의 동해안 새벽은 초병의 눈을 가릴 만큼 어둡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박 씨의 이동 사실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에 대해 이 전문가는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한국이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는 취지로 한국 정부를 협박해 왔다”며 “박 씨의 실수를 빙자한 의도적 사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가 한 푼이라도 필요한 북한이 사업 단절의 위험을 감수하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저질렀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 박 씨가 처음 초병의 제지를 받았다는 기생바위와 시신 발견 지점은 약 1km의 거리 차가 난다. 북한군 초병이 최초 경고를 받고 달아나는 박 씨를 1km가량 쫓아와 총격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오후 1시반 대통령 보고 → 오후2시20분 ‘北에 대화 제의’ 국회연설▼
靑 “피격사건-개원연설은 별개사안”
통일부 오후 4시 돼서야 공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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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11일 ‘남북 당국의 전면 대화 재개’를 제안한 국회 개원 연설 약 50분 전인 오후 1시 반경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보고 받았다. 사건 발생 8시간 반 만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대아산이 통일부에 사건 개요를 이날 오전 11시 반경 알려왔고 내부 조율을 거쳐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이 오후 1시 반경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오전 11시 45분경 엄종식 대통령통일비서관에게 이 사건을 전했고, 이는 다시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거쳐 정 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 과정에서 상세한 피격 경위와 이번 사건이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 중인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을 추가로 분석해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엄연히 남북 간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것을 인지하고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북측에 전면 대화를 제안한 게 적절한 것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또 북한에서의 남측 민간인 피살이라는 주요 사건이 발생한 뒤 대통령 보고까지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려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피격 사건을 인지한 뒤 정부 일각에서 ‘총격이 아니라 병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며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느라 대통령에게 보고가 다소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피격 사건을 보고받고도 당초 원고 중 대화 재개 대목을 그대로 읽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공교롭게도 개원 연설과 이번 사건이 같은 날 겹쳐서 여러 관측이 나올 수 있지만 두 개는 기본적으로 별개의 사안”이라며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해 정부는 사태 진상을 충분히 파악한 뒤 구체적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며 개원 연설은 이와 무관하게 우리가 앞으로 남북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금강산 피격 사건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우선 금강산 관광 잠정 중단 조치를 취했다”면서 “남북 관계의 큰 방향을 강물이라고 한다면 돌출적 사안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이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이 끝난 지 1시간여 뒤인 이날 오후 4시 이번 사건을 공식 발표했다.
통일부는 브리핑에서 “북측 군인의 발포로 우리 관광객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며 북측도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협조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홍양호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합동대책반을 구성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