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을 바라보는 또다른 민심은 촛불의 지속성과 당위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자발적 참여”임을 강조하며 “정부의 실정으로 촛불은 오히려 견고한 원동력을 얻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현재와 같은 촛불집회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
이같은 흐름은 정부의 추가협상 결과 발표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지적과 견제 차원에서 촛불집회가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에 “정부도 일방적인 소통방식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오만했음을 반성하고 있는 만큼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맞서는 상황이다.
인터넷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촛불집회 주최측도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끝까지 가야만 한다” “(촛불민심은)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등 촛불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거듭 역설하는가 하면, “정부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국민의 정당한 주권행사를 막고 있다”고 ‘헌법상 권리’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장기화로 비판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다 “미국에 놀아나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친구로 남을지 한국민의 건강을 지킬지의 갈림길에 있다” 등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대책회의의 접근법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보수 = 매국노, 진보 = 애국자’라는 시각이나 ‘다름은 틀림’이라는 태도는 촛불시민을 옭아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몇 단체의 정치적 편향성과 정략적 의도가 불편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다함께, 서청련, 민주노총 등 재야진보좌파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의 깃발을 쉽게 찾을 수 있다.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민족통일애국청년회 등 친북좌파 성향으로 논란을 빚었던 단체 명의의 정권 타도 유인물로 뿌려진다. 초기의 순수성을 잃고 점차 정치집회로 주저앉고 있다는 비판은 이런 이념의 협소함에서 비롯된다.
21일과 22일 48시간 비상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제각기 촛불의 정당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민들의 시선을 싸늘했다.
22일 새벽 광화문 교보문고 옆 골목. 시위대에 의해 끌려나온 전경을 예비군들이 이끌고 빠르게 지나갔다. 전경을 향해 위협적 행동과 “가만 놔두지 않겠다” “정보를 캐자”는 말이 쏟아지자 예비군들이 전경을 감싸고 다시 본대로 인도하기 위해 나선 것.
그러나 몇몇은 이들을 쫓아가며 여전히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를 지켜보던 몇몇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게 촛불이 맞느냐” “제발 그만 좀 하자”는 탄식과 자정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흥분한 시위대에 의해 묻혔다.
이날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일부 시민들은 촛불집회에 대한 염증을 나타냈다. 세종로 사거리 부근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고 있다는 이모씨(48, 여)는 “촛불집회가 지긋지긋하다”고 혀를 찼다.
그는 “나도 광우병 쇠고기 안 먹고 싶고 누구보다 자식걱정, 손주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하지만 대통령도 반성하고 잘하겠다고 하는데 기회나 줘봐야 하지 않나. 누가 기한 정해놓고 대통령 탄핵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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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시간 국민행동 이틀째인 21일 자정무렵 광화문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밧줄로 경찰버스를 끌어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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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나같은 사람들은 퇴근 후 밤장사가 수입의 80%를 차지한다. 그런데 며칠째 공치는지 모르겠다”며 “시위도 좋고 다 좋은데 제발 밤새 이렇게 길 막고 경찰에게 달려들고 그런 일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상 씨(62, 서울 도봉구)는 “언제부터 광화문이 해방구가 됐는지 모르겠다”며 “촛불집회나 촛불반대집회 다 똑같다. 양측 모두 시위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로 꼬집었다.
김씨는 “미국의 기준을 못믿겠다는 건 공권력 자체를 못 믿겠다는 말인데 그럼 무슨 대안이 있으며, 또 세상 어느 나라가 외국에서 자기네 나라를 못 믿겠으니 직접 감독하겠다고 나서는 걸 좋아하겠나. 아마 우리나라더러 그러자고 말하면 내정간섭, 매국노라고 욕할 것”이라면서 “대책회의도 자꾸 말을 바꾸는데 정부나 그들이나 오십보 백보 아니냐”고 말했다.
대학생 박지연 씨(23, 여)는 “촛불집회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처럼 밤새도록 구호를 외치고 도로를 점거하는 건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르신들의 지적처럼 촛불집회에 빨갱이들이 득실거린다곤 생각하지 않고 다만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그렇지만 확실히 초반하고 분위기가 다른 건 사실이다. 정부가 퇴진하는 것보다 변화를 바라는 게 더 실질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장기적인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촛불집회가 거리행진 등을 자제하고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다음 아고라와 디시인사이드 촛불갤러리 등에는 “조금은 냉정해질 때”라며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네티즌 ‘초리미’는 “서울 광장에서 촛불문화제 너무 잘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고 있다”며 “좋은 것도 너무 오래하면 시민들의 지지도 줄어들 수 있다. 촛불문화제가 끝난후 이젠 거리 행진시위는 자제를 하고 교통을 풀어주는 성숙한 시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 아고라 베스트 토론글로 올라온 글에서 네티즌 ‘윤마루’는 “쇠고기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멈추지 않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많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촛불문화제가 정권퇴진 및 대통령을 모욕하는 시위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글귀와 구호들은 범법행위이고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네티즌은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단정짓고 있는 듯하다”며 “정말 만약 5년 후 이명박 정부가 말한 7.4.7 공약이 실행이 되었을 때 현재 탄핵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했듯 퇴임 후 집 앞 마당에 찾아가 ‘존경한다’ ‘악수 한번 해달라’며 손을 내밀거냐. 정부가 잘못하긴 했지만 (정부를 향한) 비판은 (정책이) 종료된 시점에서 그 결과물을 놓고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디시인사이드는 촛불집회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많다. 디시 유저들은 “촛불에 대해 비판하면 무조건 알바라고 공격한다”며 ‘좀비’ ‘인민재판’ 등의 표현을 통해 촛불집회의 일방성과 맹목성에 냉소를 숨기지 않는다.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이 원-턴방식 신문광고 시작의 특성으로 그들의 ´향이´(경향신문)와 ´겨레´(한겨레신문)를 옥죄게 될 것을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 등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도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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