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4일 실시된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재·보선에서 자신의 지지기반 지역에서도 패배했다. 쇠고기 문제 등 잇단 실정(失政)으로 텃밭의 전통적 지지층마저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보선 전문당'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난 5년간 재·보선에서 연전연승했던 한나라당으로선 여당이 돼서 처음 치른 선거에서 호된 회초리를 맞은 셈이다.
반면 2004년 이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재·보선과 대선, 총선에서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던 야권(野圈)은 이번 재보선에서 만회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불패(不敗)신화 깨진 한나라당한나라당은 2004년 이후 국회의원·단체장 재·보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 4·9 총선에서도 텃밭이 아닌 수도권을 휩쓸었다. 서울·경기·인천의 111개 지역구 중 81곳을 승리했다.
그러나 4일 재·보선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서울 48개 선거구 중 40개를 석권했지만, 이번 단체장 재·보선 중 서울에서 유일하게 실시된 강동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이겼다. 강동구는 95년 첫 지방자치 선거를 제외하면 한 번도 한나라당이 구청장을 내준 적이 없는 텃밭이다. 그 밖에도 인천 서구와 경기도 포천을 포함, 수도권의 3개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모두 패했다.
반면 민주당은 수도권의 자치단체장 3곳 중 2곳, 광역의원 11곳 중 9곳에서 1위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수도권을 탈환했고, 한나라당은 "대선과 총선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수도권 정당으로 자리잡았다"고 큰소리쳤지만 한 달여 만에 그 얘기를 거둬들여야 하게 됐다.
◆여(與) 고정 지지층마저 등돌려이번 재보선 결과가 보여주는 주요한 특징은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층마저 정부의 최근 실정(失政)으로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경남 지역은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다. 하지만 남해군수 선거에선 무소속에 졌고, 거창군수 선거에서도 무소속후보에게 졌다. 경남·북의 5개 지역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경북 청도 한 곳만 건졌을 뿐이다. 한나라당 권영세 사무총장은 "사전 여론조사에서 선거 결과가 상당히 나쁠 수 있겠다는 짐작은 했지만 영남권에선 기대를 했는데 결과는 나빴다"고 했다. 한나라당으로선 부산 시의원 선거 네 곳 중 세 곳을 이긴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영남 이외 다른 지역 선거에서의 패배 역시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투표율이 낮을 경우 고령층의 투표 비율이 높아지고, 조직표가 힘을 발휘한다"며 "수도권에서도 의외로 선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제 이날 비가 오는 가운데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음에도 한나라당은 참담한 패배를 기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조사팀장은 "최근의 민심 이반 과정에서 고정지지층까지 이탈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투표율과 개표 결과로 볼 때 투표장에 가지 않았거나 다른 후보를 찍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청와대 '쇄신' 부담 더 커져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은 선거 전(前)부터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자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는 이번 선거 결과로 부담을 더 크게 안게 됐다. 이 대통령도 이날 재보선 결과를 보고 받고 후속 대책을 충실히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아직도 전반적인 인적 개편을 비롯한 전면 쇄신에 주저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게 됐다"며 "당으로서도 민심 회복을 위한 잇따른 조처를 취하고 청와대에 건의하려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9개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 선거구 중 6곳에만 후보를 냈다. 대구 서구와 강원 고성군은 한나라당 단체장의 비리 문제로 공석이 된 탓에 후보를 내지 않았고, 전남 영광군은 후보를 내지 못했다.
권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