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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 2008.5.23(금) 02:55 편집
[이명박정부 출범3개월]<1>‘허니문 기간’의 불화…
여여 ‘불통’ 여야 ‘먹통’… 과도기인가 미숙함인가
《이명박 정부가 취임 3개월(25일)도 못 돼 국정운영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지고 여야 간에, 정부와 국민 간에, 심지어 여-여(與與) 간, 부처 간에도 주요 현안에 관한 의견 조율이나 합의 도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재수입 파동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표류와 같이 임기 초 정부의 유례없이 무기력한 국정운영과 난맥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과제 달성이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만든 국정 주요 분야의 장애요인을 차례로 진단해본다.》
與, 친이-친박 갈려 권력투쟁 인상
당정 지휘라인-여야 막후대화 실종
당-정-청 조정할 컨트롤타워 시급
‘脫여의도’ 집착 말고 타협 나서야
“곳곳이 첩첩산중이지만, 특히 내부의 적들이 더 무섭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취임 87일 만에 쇠고기 재수입 파동 과정에서 빚어진 정부의 미흡한 일처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한 참모는 당-정-청 곳곳에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교란하는 장애요인이 적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쇠고기 문제를 포함해 주요 정책 현안을 둘러싼 국정혼선은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무엇보다 집권세력 내부에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이 부재(不在)한 데다 이를 총괄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 국정난맥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명지대 윤종빈(정치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효율을 최고 가치로 믿고 3개월을 달려왔지만 정치 영역에선 소통이나 리더십 등 다른 가치도 중요하다”면서 “국민의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알더라도, 추진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정역할 실종된 청와대=쇠고기 파동은 ‘왜곡된’ 정보와 이를 교묘히 악용한 일부 세력에 의해 확산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청와대가 정부부처에 대한 총괄 조정 및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소통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광우병 괴담의 초기 대처 과정에서 정무, 홍보, 민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수석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 참모는 업무 전문성 외에 최소한의 정무와 홍보적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던 와중에도 쇠고기 협상과 직·간접 관련이 있는 경제수석실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에서는 국민과의 소통 창구인 언론에 협상 전말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언론의 비판에 못 이겨 8일 한 차례 비공개 브리핑을 한 것이 고작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부처 업무에 청와대가 간섭하지 말라는 당초의 지침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부처와의 의견 조율이 소홀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과의 협의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주당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국회를 열기 전에는 청와대 정책라인이나 정무수석비서관 야당 정책위의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게 관례였지만 5월 임시국회 소집 때는 이 같은 과정이 생략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정책과 노선이 다른 전임 정권이라 해도 분명 배울 만한 경험이 있는 법”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청와대 참모 등을 적극 접촉해 국정운영의 성패에 관한 살아 있는 교훈을 전수받겠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집안에 총질하는’ 집권 여당=국정운영에 동반 책임을 져야 할 집권여당의 ‘오불관언’식 태도 역시 여권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10년 만에 되찾은 정권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3개월간 당에서 제대로 대통령을 감싸 안고 보좌하는 발언이 없었다”며 “정책 방향이 옳은데도 친박 친이로 갈리고, 친이 내부도 몇 갈래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하는 통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FTA처럼 분명한 당론과 국정운영 방향을 놓고도 정부와 청와대만 탓하며 ‘집안에 총질하는’ 의원이 많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이상득 국회부의장이나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이른바 실세는 대통령의 형 또는 낙선한 이유로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너무 멀리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곧 물러날 지도부가 힘 있게 국정을 조율하기란 힘들다”고 말했다.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휘부가 구성되기 전에는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여야는 물론 여권 내, 심지어 정권 주류 내부에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무대 위보다는 막후와 수면 아래에서 대화 접촉을 활발히 함으로써 대화 타협의 토양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기능 소홀히 하는 대통령=그러나 여권 안팎에는 소통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 스스로가 소통의 종합판이랄 수 있는 정무 혹은 정치의 중요성을 간과해왔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대통령이 ‘얼리 버드’를 강조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다 챙기다가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5월 취임 3개월이 채 못돼 화물연대 파업이라는 물류 대란을 겪었다.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정부의 안이한 대처로 결국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는 소동을 겪었다. 같은 달 말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반대하며 집단 연가 투쟁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취임 100일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40.2%(한국갤럽 조사)에 그쳤다.
이는 같은 시기 김영삼 전 대통령(83.4%), 김대중 전 대통령(62.2%)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쇠고기 관련 추가협의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회동해 야당의 요구를 경청한 뒤, 미국 측과 검역주권 명문화를 타결하는 모양새를 취했더라면 야당 측 입지를 세워주면서 윈윈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시하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청와대는 오히려 회동 전에 검역주권 명문화 방침 등을 미리 흘려버려 야당 대표에게 내놓을 카드를 스스로 팽개쳤다”면서 “여야 회담이 성과를 거두려면 양측 실무진이 사전에 자주 만나 합의안을 도출해놓은 상태에서 정식 회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531만 표라는 유례없는 표차로 승리한 것이 정책 집행 과정에서 ‘쌍방향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을 무디게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더 나은 후보가 아닌 덜 나쁜(less worse) 후보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유권자들은 이 대통령의 정책을 모두 지지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임성호(정치학) 교수는 “이 대통령이 CEO 대통령을 강조하다보니 자기 역할을 경제에 한정하고 야당과의 관계나 국민과의 소통은 등한시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정치권을 너무 자기 식으로 주도하려는 게 노무현 정부의 문제였다면 이명박 정부는 탈(脫)여의도에 집착하다 정치가 실종되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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