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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 위상 단숨에 상위권으로
“한 수 배우자” 미·스웨덴 등 한국행
40㎏대 가벼운 로봇, 세계 표준모델 목표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0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전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에는 한국 로봇 연구의 산실(産室)이 있다.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가 그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형 로봇이란 뜻이다.
이 센터는 2004년 12월 한국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를 개발했다. 휴보는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걷는 로봇이다. 지금은 휴보를 개량한 뉴 휴보를 개발 중이다. 한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했다는 뉴스는 큰 파문을 낳았다. 휴보 개발의 주역인 오준호 소장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국은 일본이다. 로봇과 관련해서 일본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면 전 세계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정도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이 일본이 아니라 한 수 아래로 보던 한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했다는 뉴스를 듣고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그런 일을 한국이 해낸 것이다.
▲ 한국 휴머노이드 로봇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오준호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인체공학·전자공학… 첨단 과학기술 총집합
휴보의 개발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위상을 단번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미국과학재단(NSF)이 “휴보를 휴머노이드 로봇의 연구 기본 플랫폼으로 쓰겠다”며 대여를 요청한 데 이어 이번 여름방학 때 미국 대학생들을 한국에 보내 로봇 기술을 배우게 할 계획이다. 과학기술과 관련해 미국에서 늘 받아오기만 하던 한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한 한 미국에 한 수 가르쳐주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센터의 연구원들은 오는 8월 미국에 보낼 휴보를 제작 중이다. 이 로봇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이공계 명문 드렉셀대학에서 연구에 활용된다.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오는 여름방학 때는 스웨덴에서 로봇 연구팀이 와서 기술을 배워갈 예정이다.
이 사례는 로봇산업의 파괴력을 실감케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로봇에 쏠리는 세간의 관심이 크다는 뜻이다. 로봇은 선진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산업이다. 로봇산업이 정밀기계공업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로봇산업이 발전하려면 인체공학, 기계공학, 기계설계, 전자공학, 전산·재료·인지공학 등이 수준급에 올라있어야 한다. 로봇 한 대에는 현존하는 과학기술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로봇은 연구 분야가 많지만 이 센터는 로봇의 하드웨어 격인 플랫폼(기계)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쓴다는 전략이다. 휴보 개발의 주역인 오준호 소장의 전공이 자동제어·공작기계인 이유도 있다.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은 적은 비용으로 뛰어난 연구성과를 내놓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002년 말 국내 최초로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로봇 KHR-1을 개발했던 휴머노이드 로봇연구센터는 이를 해마다 개량해왔다. KHR-1 개발에 들어간 돈은 4000만원밖에 안 된다. 오준호 소장은 “아시모(일본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2족 보행 로봇) 개발에 2000억~3000억원은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2003년 말에는 KHR-1을 개량한 KHR-2를 내놓았으며 2004년 말에는 휴보(HUBO, KHR-3)를 선보여 대중을 놀라게 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얼굴을 한 로봇인 ‘알버트 휴보’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로봇인 휴보 FX-1을 각각 개발했다.
▲ 오는 8월 미국으로 보내기위해 제작중인 휴보
“일본 베껴선 일본 못 이긴다” 독자 개발 성공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휴보 개발을 주도한 오준호 교수가 채택한 시스템에 그 답이 있다. 그는 ‘일본 베끼기’를 지양했다. “로봇 최고 선진국인 일본을 답습해서는 일본을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독자적으로 로봇 개발을 해내기로 결심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먼저 만든 일본이 한국에 기술을 가르쳐줄 리도 없었고 가르쳐주더라도 막대한 개발비를 한국에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주위의 반대부터 극복해나갔다. 학생들부터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제자들을 설득했고 그의 열의에 감동 받은 학생들은 그 후 열렬한 지지자로 변했다. 당시 로봇은 무겁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로봇의 무게도 100㎏이 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오 교수는 로봇이 무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존 통념을 깨면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40㎏대의 가벼운 로봇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국산화가 안 된 일부 핵심 부품은 외제를 사용했지만 PCB(인쇄회로기판), 배터리 케이스 등 웬만한 부품은 자체 제작하는 방식을 택했다. 로봇에 들어가는 PC 두 대도 직접 만든 것이다. 물론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 센터에는 한 대 9000만원 하는 머시닝 선반이 설치돼 있다. 이 선반에서는 다양한 부품을 깎아낸다. 휴보를 개발하고 나서 국가로부터 1년에 10억원가량 지원 받고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연구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열악한 여건 정신력으로 극복
물질적인 여건이 열악한 건 정신력으로 커버했다.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에는 주말이 없었다. 이른바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 이 센터 구성원들의 1주일 시간표였다. 오 교수부터 새벽 한두 시에 퇴근하는 게 다반사였다.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갖고 불철주야 노력하는데 성과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하면 된다’는 정신은 세계 최소 비용으로 세계 최단 기간 내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내는 ‘대덕의 기적’을 낳았다.
이 연구센터는 흔히 ‘휴보 랩’으로 불린다. 휴보 랩 출신들은 국내외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오 교수는 “우리 연구원들은 날밤을 새는 것도 꺼리지 않는 도전정신이 충만한데다 실험재료를 직접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링까지 숙달돼 있습니다. 이런 연구원들은 세계 어딜 가도 찾기 힘들죠.”
이 센터는 일본을 따라잡고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준호 소장은 “뉴 휴보를 개발해서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의 표준 플랫폼으로 보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센터가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기술적 격차야 지금까지 해온 대로 극복한다 치더라도 국가적 지원은 아직 미흡하다.
현재 이 센터에 지원되는 연구비는 계정이 없어 여기저기서 조금씩 돈을 떼어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센터 직원들의 월급도 제때 못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연구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오 소장은 “로봇은 전폭적인 지원보다 꾸준하고 안정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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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5.09 19:05 / 수정 : 2008.05.11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