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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계' '부실(不實)특검' 논란에 초강수 선택
'불법승계' '부실(不實)특검' 논란에 초강수 선택
잘못된 관행 고치며 재판 대비 측면도
일부에선 "나이·건강문제 감안했을 것"
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건희 회장이 22일 기자회견장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 동반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라는 경영 쇄신안을 발표하자 함께 서있던 이학수·이기태 부회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사장단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위성 생중계로 사내방송을 통해 이 회장의 발표를 들은 각 계열사 임직원들도 "상상을 초월하는 핵폭탄급 조치"라며 술렁였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이 대폭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이 당초 예상을 뛰어 넘어 재계와 사회가 깜짝 놀랄 만큼 강도 높은 쇄신안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장에서 열 린 기자회견에서‘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안경을 쓰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이건희 회장 왜 사퇴했나
이 회장은 지난 11일 특검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저를 포함한 경영진의 쇄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퇴진을 시사한 이 발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삼성 수뇌부와 상의해 미리 준비해온 메모지에 적혀 있었다.
이 회장은 자신의 퇴진 문제를 몇달 전부터 고민해왔다.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3월 초에 이 회장이 퇴진하겠다는 말을 처음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달 들어 특검에서 두 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거취를 마음속으로 정해놓았다는 말이다.
삼성측은 그동안 "이 회장이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쇄신작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전략기획실도 기능과 인력을 축소하되 조직은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4조5000억원의 차명계좌 운영과 경영권 불법승계 시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특검의 부실수사 논란이 일자 이 회장은 자신의 퇴진뿐만 아니라 전략기획실까지 해체하는 길을 택했다.
전략기획실은 계열사 간 사업중복을 조정하고 감독하는 순기능을 가진 동시에 과도하게 계열사 경영에 간섭하고,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삼성의 쇄신안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는 동시에 앞으로 특검 수사 후속으로 진행될 재판과정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일부에서는 올해 66세인 이 회장의 건강 문제를 거론한다. 이 회장은 지난 1999년 폐 근처에 있는 림프절에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은 후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왔다. 이 회장은 작년 11월 선친인 이병철 회장 20주기 추도식에 심한 감기몸살로 참석하지 못했고, 지난 1월에도 감기 몸살로 삼성서울병원에 1주일 가량 입원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도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약간 창백한 얼굴로 들어와 3분 가량 퇴진성명을 낭독한 뒤 곧장 퇴장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회장의 나이와 병력(病歷)을 고려할 때 업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충분히 쉬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이 회장이 경영일선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와 후계구도는 시간 두고 검토
삼성은 이건희 회장, 그룹 전략기획실, 계열사 전문경영인으로 이어지는 경영체제를 유지해왔다. 이 회장이 장기 경영비전이나 글로벌 제휴 같은 큰 그림을 그리면 전략기획실에서 투자계획·자금조달·사업조정 같은 실무계획을 짜고, 각 계열사가 실행을 담당하는 체제였다.
앞으로는 이 같은 경영체제가 사라지고, 각 계열사가 알아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삼성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나 신규 사업진출은 오너인 이 회장이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왔다"며 "삼성의 최대 강점으로 꼽혀온 스피드 경영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삼성의 경영체제는 일단 과도기적인 형태로 유지될 전망이다. 해외사업장으로 나가는 이재용 전무가 수년 뒤 경험을 쌓고 돌아올 때까지 현 경영진과 사업구조를 크게 흔들지 않도록 하는 기조로 돼 있다. 삼성은 5월 중순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할 예정이며, 특검 수사에서 문제가 됐던 경영진 외에는 대부분 유임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여론 동향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기로 한 것도 계열사들의 순환형 출자구조에 대한 외부 비판을 의식한 조치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는 20조원 가량의 돈이 들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또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업에 절대 진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가 차명계좌와 비자금 조성 등 불법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것도 금융사업을 확장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놓았다"며 "하지만 삼성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과연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략기획실 임·직원, 원소속사로 복귀"
● 국내·외 반응
후계자, 한발 물러나 해외현장으로
이건희 회장 사과 및 퇴진성명 전문(全文)
'침묵·사색·결단'의 경영 삼성을 세계일류로 키워
'대외적 삼성대표' 이수빈 회장 역할의 한계
'조세포탈' 해당 2조원 중 세금빼고 활용 현금 헌납보다는 재단설립·출연 가능성
입력 : 2008.04.23 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