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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이건희 삼성 회장 (연합뉴스)
글쓴이 연합뉴스 등록일 2008-04-22
출처 연합뉴스 조회수 1111

다음은 동아닷컴 http;//www.donga.com 에 있는 연합뉴스의 기사입니다. ------------------------------------------- 분야 : 경제   2008.4.22(화) 14:11 편집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이건희 삼성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 회장과 함께 퇴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학수(앞줄 오른쪽 두번째) 부회장과 김인주(왼쪽) 사장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 삼성전자를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이 '특검 암초'를 만나 취임 20여년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회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20년전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먼 현 시점에서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리라고 상상한 이들은 특검 사태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리더로서 확고하게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일 취임 20주년을 맞았으나, 직전에 터진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폭로로 20주년 취임 기념 행사도 갖지 못했던 이 회장은 결국 '특검 암초'를 넘지 못하고 국내 최대 그룹 삼성의 지휘권을 거머쥔 지 20년만에 경영일선에서 퇴진하게됐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타계로 1987년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 회장의 20년경영성과는 삼성의 '글로벌화' '세계 일류화'라고 압축할 수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이 취임하기 전에도 국내를 대표하는 최고 기업이었으나 세계시장에서는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혁신과 '품질중시 경영'으로 대표되는 신경영,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선택과 집중'의 구조조정으로 삼성의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후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을 축으로 하는 제2창업을 선언하고, '21세기 초일류기업 달성'이라는 비전과 '조(兆) 단위 순이익 실현'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실현 불가능한 선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됐던 이 약속은 20년만에 지켜진 셈이다. 삼성은 반도체, TFT-LCD, 휴대전화, 모니터 등의 세계 1등 제품을 탄생시켰으며, 브랜드가치도 2007년 169억 달러로 세계 2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2년에는 시가총액 면에서, 2005년에는 브랜드가치 면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소니를 앞지름으로써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의 하나로 성장했다. 그 결과 삼성의 매출액은 이 회장 취임 당시인 1987년과 비교할 때 17조원에서 152조원으로 8.9배 성장했으며 2천700억원에 불과하던 세전이익은 14조2천억원으로 52.6배 성장했다. 이 시기에 삼성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140조원으로 140배, 수출은 9억달러에서 663억달러로 73.7배 증가했으며, 해외직원을 포함한 임직원수는 16만명에서 25만명으로 1.7배 증가했다.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8%, 시가총액은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의 20%,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삼성그룹의 경영체질을 강화함으로써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데 재계의큰 이견이 없다. 고 이병철 회장 타계 직후인 12월1일 만 45세의 나이로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끊임없는 개혁을 설파, 삼성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질 경영'으로 대변되는 '삼성 신경영' 선언이 그중 하나다. 이 회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지만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기업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던져주었다. 이 회장은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5년, 10년 뒤에는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신세다" 등 위기론, 샌드위치론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 한국사회에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의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함으로써 한국이 전자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닦았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였으며, 1992년에는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였고 2001년에는 세계 최초로 4기가 D램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이 회장의 이같은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또한 만만치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회장은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해지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삼성공화국론'의 근원지로 지목됐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을 통한 불법 경영권 승계, 총수 1인이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는 '황제식 경영론' 등에 대한 비판의 핵심 대상이었다. 삼성 출신 인사들이 경제계는 물론 정부, 정치권 요소요소에 포진하고 삼성의 로비력이 미치치 않는 곳이 없다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에버랜드 CB 배정의 문제점은 국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검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 이 회장의 퇴진을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날의 허물을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다. (특검 문제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한 22일 이 회장의 발언은 이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다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