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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 2008.4.9(수) 02:58 편집
힐 “제네바 때보다 한단계 진전” 김계관 “의견차 좁혔다”
답변하는 힐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8일 싱가포르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북핵 관련 조율을 한 뒤 숙소인 리젠트호텔에서 기자들에게 회담을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AP 연합뉴스
■ ‘핵신고’ 北-美 싱가포르 회담
UEP-핵확산 개입 ‘간접 시인’ 접점 찾은듯
두차례 4시간 30분 협의… 표현 수위 조율
힐 “잘되면 9일 베이징서 후속 조치 발표”
“북한과 좋은 대화(good discussion)를 나눴다. 제네바(회동)보다 한 단계 더 진전했다.”
8일 오후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다소 지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4시간 30여 분에 걸쳐 주싱가포르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북-미 회담 직후였다.
그는 “모든 것이 잘된다면 (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후속조치(follow-on activity)를 포함한 더 많은 발표를 할 것”이라며 이날 회담에서 핵 신고 문제에 사실상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북-미는 지난달 1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측이 테이블에 앉은 지 약 한 달 만인 8일 6자회담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최종 조율 작업을 했다. 양측은 핵심 쟁점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및 시리아와의 핵 협조 부분에 대해 ‘간접 시인’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해 왔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의견이 상이한 부분을 좁혔다”고 말했다.
8일 오전 9시 30분(현지 시간). 힐 차관보의 숙소인 리젠트호텔 로비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기자 등 30여 명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힐 차관보는 “오늘 회담에서 다양한 주제가 거론될 것이다. 오늘 (회담 시간이) 몇 시간이나 된다”며 회담이 길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오전 10시인 회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즉시 주싱가포르 미국대사관으로 떠났다. 그러나 김계관 부상이 40여 분이나 늦어 회담은 오전 11시가 다 돼서야 시작됐다.
한 달 만에 마주 앉은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는 1시간 30여 분 동안 핵 신고의 최대 쟁점인 북한의 UEP 및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에 대한 이견 조율 작업을 벌였다. 낮 12시 10분쯤 회담은 잠시 쉬었다가 오후 3시경 다시 재개된 후 오후 6시쯤 끝이 났다.
○ 힐 “좋은 대화… 본국에 보고”
힐 차관보는 북-미 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제네바(회동)보다 더 진전된 이야기를 나눴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오늘 내용을 보고했다”며 “나는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밝힐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간 논의해 왔던 ‘간접 시인 방식’에 대해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UEP와 시리아 핵 협조 등 두 가지 의혹을 인정할 경우 1994년 제네바 핵 동결 합의의 파탄 책임을 안게 된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반면 미국 측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경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관계 정상화 조치에 의회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압박해 왔다.
그래서 양측이 접점을 찾은 것이 ‘간접 시인’ 방식. 북한이 공개 의사를 밝힌 플루토늄 부분은 합의문으로 발표하되, UEP와 시리아 핵 협력 의혹은 양측만 공유하는 비공개 양해각서를 통해 신고하는 방식. 미국이 UEP와 시리아 핵 협력 의혹에 대한 이해 사항을 기술한 뒤 북한이 이를 ‘반박하지 않는다’ 등의 적절한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형태다.
그러나 이 표현과 관련해 미국 측은 표현 수위가 높은 ‘인정한다(admit)’ 등을, 북한은 ‘인식한다(acknowledge)’거나 ‘이해한다(understand)’ 등을 주장하며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 본국 훈령이 마지막 변수
이날 힐 차관보가 회담 이후 “양측은 오늘 회담 내용을 본국에 보고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한 것에 비춰 볼 때 신고서의 표현에 대해 새로운 제안이 있었고 이에 대한 본국의 지시와 다른 국가들의 동의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9일 베이징에서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으면 6자회담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며 “(김계관과) 베이징에서 다시 만날 계획은 없지만 본국의 답에 대해 접촉할(in touch) 계획은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9일 0시 15분 비행기로 베이징으로 건너가 6자회담 다른 참가국들에 이번 회동의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김 부상도 9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