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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8.04.09 00:37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9/2008040900099.html
북, 의혹 간접시인… 핵 한고비 넘겨
미국과 북한이 8일 '싱가포르 담판'을 통해 100일 가까이 끌어오던 북핵 신고 문제에 대해 사실상 의견 일치를 이룸으로써 핵 문제가 또 한 고비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뭘 합의했나
북한의 신고 내용은 ▲지금껏 생산한 플루토늄 양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의혹 ▲시리아와의 핵 협력(확산) 의혹 등 세 가지다. 그동안 북한은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킨 UEP 의혹과 지난해 불거진 핵 확산 의혹에 대해 "미친 소리"라며 강하게 부인했었다. 반면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를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미·북은 공개신고서에는 플루토늄만 담아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고, 이견이 있는 UEP와 핵 확산 문제는 두 나라만 공유하는 '비공개 양해각서'에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각서에 미국이 "UEP와 핵 확산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이 (우리의) 이해사항"이라고 적으면 북한은 이런 내용을 "반박하지 않는다"고 간접 시인하는 방식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양측은 지금까지 간접시인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를 놓고 '인정한다(admit)' '인식하고 있다(acknowledge)' '이해한다(understand)' 등 여러 안(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이번에 절충안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사소한 것 같지만 핵 신고서에 담기는 내용이 나중에 검증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8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회담한 뒤 숙소인 리젠트호텔에서 기자들에게 협상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싱가포르
미국은 또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검증은 하되 나중에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는 보장을 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핵 신고 이후가 더 문제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북한이 이번에 신고하는 내용을 검증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신고가 '완전하고 정확한지'를 알아보려면 북한의 핵 시설을 모두 둘러보며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은 그동안 무기급 플루토늄을 30㎏ 정도 추출했다고 말해 왔지만 이는 핵 전문가들이 계산한 최소 수치에 불과하다. 통일연구원 전성훈 박사는 "1차 북핵 위기 때도 북한이 플루토늄 양을 속이는 바람에 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것저것 감안하면 검증에 3~4년은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의회가 신고 내용을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미 의회 안에는 이미 "부시 행정부가 외교 성과를 위해 지나치게 양보를 많이 했다"는 반발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는 신고의 대가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행정부 재량사항이다. 그러나 그 이후 북한과 약속한 경제지원 과정에서 의회가 제동을 걸고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테러지원국 해제 효과는 사실상 없어지며 북한측에 또 다른 반발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넘더라도 3단계인 '핵 폐기'는 신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국과 북한은 아직 이 문제를 논의한 적조차 없다. 협상에서 실제 폐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핵무기 개발 직전에 포기한 리비아의 핵 신고를 검증하는 데도 2년6개월이 걸렸다. 정부 당국자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에 비하면 신고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