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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입력 : 2008.03.04 06:0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04/2008030400237.html
"탈북자 인신매매 중국도 책임"
배고픔과 가난, 폭압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이 성착취와 강제노동을 위한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데에는 중국당국의 책임도 있다고 미 정부관리가 3일 주장했다.
미 국무부의 마크 래곤 인신매매담당 국장은 이날 우드로우 윌슨센터에서 열린 특강에서 북한을 성착취 및 강제노동을 위한 ‘인신매매 피해대상국’이라며 북한당국은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눈에 띠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이를 허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래곤 국장은 “수천명의 북한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이 인신매매를 당하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고품과 가난, 폭압을 피해서 북한 주민들이 제3국에 재정착하기 위해 이웃나라인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다면서 인신매매범들은 일단 탈북자들이 중국에 도착하면 이들을 강제결혼시키기 위해 팔거나 뇌물로 받치고 강제노동자로 팔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래곤 국장은 중국의 ‘1자녀 정책’으로 인한 남초현상이 이 같은 인권유린의 잠재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며 “모든 전문가들은 중국과 북한 모두 인신매매를 근절하거나 처벌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의 인신매매 피해사례를 인정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래곤 국장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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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3.03 23:08 / 수정 : 2008.03.04 02:5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03/2008030301704.html
[사설] 수만 명 '두만강 심청'들을 어찌할 것인가
조선일보가 영상물로 제작한 중국·북한 국경지대의 북한 여성 인신매매 현장은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다. 아버지는 굶어 죽고 어머니는 못 먹어 눈이 먼 집의 스물다섯 살 난 딸은 심청처럼 곡식 빚 300㎏의 절반을 갚는 조건으로 두만강 너머 중국인에게 씨받이로 팔려갔다. 150㎏ 곡식 값은 한국 돈으로 단돈 4만6000원. 개 한 마리만도 못한 값이다.
오늘 밤에도 두만강변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현재 중국에 숨어 사는 탈북자는 4만 명에서 10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이 중 70~80%가 여성이고 이 여성들 중 상당수가 팔려 온 경우다.
팔려 온 북한 여성들에겐 4만6000원어치의 인권도 없다. 탈북자라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아무렇게나 강간당하고 윤간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인신매매 브로커나 단속 공안에게 강간당하는 경우도 숱하다고 한다. 중국 농촌에 팔려간 여성들은 중국인 남편의 매질과 성적 학대에 인간 이하의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산다. 밥 먹는 대가로 중국인 한 집안 전체 성인 남성의 성노리개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중국인 남편이 함께 살던 북한 여성을 옆집에 팔아 넘기기도 한다. 몇 해 전 국내 TV에서 몇 번의 인신매매 끝에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게 된 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얼굴은 그 자체가 비명이었다.
짐승 같은 또는 짐승보다 못한 처지의 탈북 여성들이지만 그들은 그래도 붙잡혀 북송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한다. 봉건 습성이 남아 있어 남녀차별이 극심한 북한에서 보위부(경찰) 앞까지 끌려가게 되면 "여자는 인간이 아니다"는 걸 뼛속까지 느껴야 하는 모진 닦달을 당한다. 모두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이다.
평양의 당 간부 집이나 외화벌이 일꾼 집 여성들은 남한 여성들 이상의 생활을 한다고 한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장을 메운 여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여성들은 경제가 붕괴된 사회에서 몸으로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집안 일도 모두 그들의 몫이다. 그런 이중고 삼중고 속에서도 북한 여성의 가정 폭력 경험은 90%에 달한다는 것이 탈북자 조사 결과다. 한 탈북 여성은 "중국에서 남한 영화를 보고서 사랑이란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두만강을 건너다 얼어 죽은 채 두 달 이상 방치된 북한 여성의 시신은 지금 북한 여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상징이다.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북한 여성들, 그러다 4만6000원에 제 몸을 내던지는 '두만강 심청'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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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천국의 국경을 넘다 탈북 10년 보고서]
• 10개월간 中·러시아·태국 등 9개국 2만㎞ 누벼 촬영하다 中 국경수비대에 수
차례 끌려가기도
발행 : 조선일보 2008-03-03 [A5면] 기고자 : 특별취재팀;박종인;이학준;방정오;정인택;한용호 ;김영관
조선일보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5월부터 10개월 동안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일본 등 세계 9개국을 이동하며 탈북자 인권문제를 취재했다. 장장 2만㎞의 여정이었다.
중국 톈진(天津), 2007년 5월 28일.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된 날이다. 공항에서부터 공안이 따라붙었다. 잦은 국경 출입 때문이다. 미행은 공안과 국경수비대가 번갈아 맡았다. 공안이 경고했다. "주시하고 있으니까 조심하시오." 우리는 아예 국경마을에 살기로 했다. 몇 달간 생활이 계속되자 미행이 뜸해졌다. 그 와중에 강 너머 북한마을을 촬영하다 국경수비대에 끌려갔다. 간첩 혐의라고 했다. 이후로도 두 번을 더 잡혔다. 캠코더를 버리고 테이프만 들고 도망쳤다. 오랜 취재기간 동안 안면을 튼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구해줬다.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2007년 8월 20일. 취재팀은 탈북자라고 신분을 속였다. 금방 길 안내인이 신분을 눈치챘다. 그는 거절했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위험해." 그를 찾아갔다. 가슴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당신을 속인 것은 사과한다. 나는 한국 기자다. 내 민족의 비극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 그는 동행을 허락했다. 다음날 우리는 국경을 넘었다.
16시간의 산길. 누런 메콩강 물을 떠서 마셨다. 긴장 속에 중-라오스 국경을 넘은 취재팀은 라오스에 대기 중이던 2차 취재팀에게 촬영테이프와 장비를 넘기고 산길을 거슬러 중국으로 돌아갔다. 라오스 입국비자가 없는 취재진도 불법입국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숲속 거머리들이 달라붙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중국쪽을 담당했던 취재팀은 쉴 틈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모두 여섯 번에 걸쳐 이 일대에서 밀입국을 해야 했다. 나중에 토머스 오닐(O'Neill)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가 말했다. "정말 미쳤구나!"
러시아 므르뜨깃, 2007년 11월 3일. 우리는 시베리아의 북한 벌목소를 찾아갔다. 길 안내를 맡은 탈북자가 만류했다. "한국인이 들어가면 당장 들통이 날 거라고. 잡히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우리는 벌목공 숙소까지 들어갔다. 러시아 택시기사가 앞장섰다. 내부를 모두 몰래 촬영하는데, 낌새를 챈 당 간부가 손가락질을 했다. "도망가자." 우리는 정신없이 달아났다.
중국 국경마을, 2007년 11월 21일. 두 번째 인신매매 촬영에 성공했다. 국경생활에 익숙한 우리는 별 긴장감이 없었다. 그런데 길 안내인이 말했다. 며칠 전 북한 인신매매 브로커가 중국인을 국경에서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여자 가격을 흥정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영국 런던, 2008년 2월 3일. BBC 본사에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담당 기자가 촬영 영상을 믿지 못한다. 취재팀이 말했다. "목숨을 걸고 취재한 내용이다. 일말의 거짓도 없다." 현장에서 매일 쓴 일기를 보여줬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반드시 편성을 하겠어, 이건 우리한테도 대단한 영광이야."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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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 '中-北 국경 인신매매' 현장취재
• '두만강 심청' 굶어 죽어가는 가족 위해
발행 : 조선일보 2008-03-03 [A1면] 기고자 : 특별취재팀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 두만강. 2007년 10월 22일 새벽, 하얗게 뜬 달빛을 받으며 문윤희(당시 25세·가명)씨가 강을 넘었다. 낯선 사내 손에 이끌려, 폭 40m도 되지 않는 검푸른 강을 건넌다. 그녀는 팔려가는 길이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중국 농촌 노총각한테 씨받이로 팔려가는 길이다. 사내는 북한의 인신매매 브로커. 매서운 강바람에 갈대가 비명을 지르는데 중국쪽 강둑에 올라선 그들, 아랫도리에 입고 있는 옷은 팬티뿐이다. 바지와 신발은 보자기에 들어 있다. 야밤에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강 건넌 탈북자임이 금방 드러난다. 두만강을 건너는 사람들, 그래서 아랫도리는 입지 않는다.
브로커는 강을 건너 북한으로 돌아갔고, 은신처로 안내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넘어왔어요?" 윤희씨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미공급(未供給·1990년대 후반 식량난 시절) 때 상(喪)하고, 어머니는 못 먹어서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꿔다먹은 '강냉이, 콩, 쌀' 같은 곡식 빚이 300㎏이라고 했다. 심청이처럼, 눈 먼 어머니와 남동생을 위해 그녀가 팔려간다. 브로커는 몸값으로 곡식 빚 절반을 갚아줬다. 350위안. 한국 돈 4만6000원에 '조선의 딸들'이 팔려간다.
중국~북한 국경지대 인신매매 현장이 조선일보 특별취재팀에 의해 확인됐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 이후 급증한 탈북 사태(沙汰)가 인신매매라는 반(反)인권적인 형식으로 악화됐음이 확인된 것이다. 특별취재팀은 2007년 5월부터 10개월 동안 중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등 세계 9개국을 돌아다니며 탈북자들의 삶을 취재했다. 한국, 북한, 그리고 중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이들은 강제북송의 공포와 가난이라는 현실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가 중국 정부에 탈북자의 인권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왜 세계가 그토록 탈북자들의 인권에 주목하는지, 그 이유를 조선일보가 집중보도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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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미디어][천국의 국경을 넘다 탈북10년 보고서](1) 팔려가는 '조선의 딸들'
• "스물다섯 살은 5000위안(약 68만원), 깎을거면 다른데 가"
발행 : 조선일보 2008-03-03 [A4면] 기고자 : 특별취재팀;박종인;이학준;방정오;정인택;한용호 ;김영관
취재팀이 윤희씨를 만난 곳은 중국 투먼(圖們) 근처 두만강변, 보름을 사흘 앞둔 새벽이었다. 갈대밭이 비명을 질렀다. 강은 바람과 달빛으로 일렁였다. 쏟아지는 달빛에도 강 건너 마을은 어둠에 잠겨 있다. 중국·북한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해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지 네 시간. 희끄무레한 물체 두 개가 강 너머 갈대밭을 뚫고 강물에 들어섰다. 하나는 앞에 서고 다른 하나는 뒤에 섰다. 벌거벗은 사람이다.
적외선 렌즈 녹색 화면 속으로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랫도리를 모두 벗은 한 남자와 팬티만 입은 여자. 벌거벗은 남녀가 강을 건너고 있다. 야윈 다리가 출렁이는 강물을 힘겹게 헤쳤다. 남자는 뒤따르는 여자 손목을 이끌고 앞장서 걷는다. 어느새 강물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강물을 바라보던 여자가 갑자기 제자리에 섰다. 현기증이 난 모양이다. 남자가 주위를 잽싸게 둘러봤다. 손에 힘을 주고 여자를 세차게 당겼다. 불과 40m의 강을 건너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남자는 북한의 인신매매 브로커, 여자는 그의 '상품'이다. 국경을 넘은 그들은 온몸을 떨었다. 서둘러 손에 들고 온 옷을 입었다. 왜 옷을 벗고 왔을까. "물에 젖으면 안 되니까." 브로커는 곧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 옷이 젖으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여자도 옷이 젖으면 당장 중국에서 갈아입을 옷이 없다. 그들이 벌거벗은 이유다. "이름이 뭐예요?" "문윤흽니다, 문윤희." 여자가 덜덜 떨며 말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이다.
◆"군대도 보위부도 다 알아"
"스물다섯인데 5000원은 줘야지." 중국 돈 5000위안은 한국 돈으로 약 68만원이다. 가격을 흥정하려 하자 그가 버럭 화를 냈다. "스무 살부터 스물넷까지는 7000원, 서른이 넘으면 3000원이야. 깎을 거면 다른 데로 가란 말이오." 그는 정액제를 강조했다.
윤희씨가 보자기를 끌러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동안 누군가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다. 국내 탈북지원단체 두리하나선교회에서 온 사람이다. 이 단체는 여자를 사려는 중국인들 대신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여자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브로커가 돈다발을 셌다. 5000위안. 굶주림을 피한 대신, 스물다섯 살 처녀가 씨받이와 품앗이로 평생을 보내야 할 대가가 한국 돈으로 68만원이다. 북한 한 달 월급의 30배. 이 가운데 윤희씨네 곡식 빚의 절반, 4만6000원을 빼고 전액이 브로커에게 돌아간다. 브로커가 흡족하게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잘 돌봐주오." 지켜보던 취재팀 누군가가 내뱉었다. "뭐, 잘 돌봐달라고?"
다음날 은신처에서 윤희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탈북을 한 번, 강제북송을 한 번 경험한 여자였다. "내가 직접 브로커한테 가서 팔아달라고 했어요. 빌린 곡식이 300㎏인데, 갚을 방법이 없었어요. 브로커가 빚 절반을 갚아준대서리…. 그 남자는 같은 동네 사람이요. 집도 중국 집처럼 부자고, 밭도 있고 소파랑 TV, 냉장고도 있어요. 군대도, 보위부도 그 사람이 여자 파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왜? "돈이 있는데, 왜 처벌 받겠습니까?"
그날 아침, 윤희씨는 브로커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강변 야산에 들어가 둘이서 숨어 있었다. 새벽이 되자 "산 아래 북한쪽 군대에서 불빛 신호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달빛에 의지해, 옷을 벗고, 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이번이 두번째다.
◆탈북자들 옷 모두 벗기고 검사
"이천공육(2006)년도에 처음 팔렸습니다. 산둥성에 서른넷 먹은 한족(漢族) 남자한테 팔려갔는데 6개월 지나니까 어느 날 밤 12시에 공안이 왔습디다. 어떻게 나를 잡아가나 하고 물으니까, 동네 사람이 꼬장질(신고)해서 그리했다는 겁니다." 윤희씨는 곧바로 중국 단둥 교도소에 갇힌 뒤 두 사람씩 수갑에 엮여 신의주로 압송됐다. 북한 보위부에서 보낸 한 달, 그녀는 몸을 떨며 이렇게 증언했다.
"성병을 검사한다면서 피를 한 바가지 뽑았다. 여자들은 옷을 모두 벗기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성기 속까지 조사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20번 정도 반복하면 안에 있는 게 모두 나온다. 임산부도 있었는데 중국 놈 아이를 가졌다고 강제 유산시켰다. 사람 먹으라고 강냉이 밥이랑 찬 하나가 나왔는데, 한 번 먹고선 중국 감옥에서 먹던 밥이 그리워지더라."
윤희씨는 함북 청진에 있는 탈북자 집단수용소로 끌려가 하루 17시간씩 강제노동을 하다가 풀려났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윤희씨는 또다시 브로커에게 몸을 맡겼다.
◆"北 노모 때문에 한국에 못가"
두리하나선교회 사람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신을 한족에게 팔아먹으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한국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나 맨 처음에 사 간 한족 남자한테 돌아갈랍니다. 한족이랑 배불리 살면서 돈도 모아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한테 보낼랍니다." 그녀는 한국행을 거부했다. 고향에 남은 눈먼 노모(老母)와 남동생을 위해, 그녀는 중국에 남기로 했다. 두리하나선교회는 그녀에게 겨울 옷가지 몇 점을 사주고, 안녕을 빌고, 그녀와 작별했다. 문윤희. 그녀는 지난 10개월 동안 취재팀이 만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두만강변에서 얼어 죽은 시신
2008년 1월, 취재팀은 중국 투먼(圖們)의 두만강변에서 얼어 죽은 북한 여성 시신 하나를 발견했다. 신발도 없이 발싸개로 발을 싸매고, 얼어붙은 두만강 한가운데에 엎드려 죽어 있었다. 3월 2일 현재까지 두 달이 지나도록 그녀는 아무도 거두는 사람 없이 외롭게 강에 엎드려 있다. 현지 조선족은 "북한 식량난 이후 10년 만에 처음 보는 시신"이라며 "형색을 볼 때 혼자서 탈북하려다 돌부리에 걸려 죽은 여자가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2008년 중국-북한 국경지대. 살아 있는 여자의 인신매매 시장이 수시로 열리고 죽은 여자의 시신은 아무도 거두지 않는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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