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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특파원(평양) khkim@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8.02.27 00:5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7/2008022700085.html
'아리랑' 앙코르 연주에 일부 관람객 눈물 보여
"다음에 연주할 곡은 유명한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Gershwin)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입니다. 언젠가는 '평양의 아메리카인'이라는 곡도 나올지 모릅니다."
26일 북한 평양 대동강변의 동평양대극장. 뉴욕 필하모닉의 노 지휘자 로린 마젤(Maazel·78)이 공연 후반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연주하기 앞서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간단히 소개했다. 이어 마젤이 서툰 한국말로 "즐겁게, 즐겁게 감상하세요"라고 말하자, 그때까지 다소 굳어있던 평양 관객들도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뉴욕 필 단원들이 입장하기 전부터 공연장 왼쪽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오른쪽에는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걸렸다.
앉아서 연주할 수밖에 없는 첼로 단원들을 제외한 뉴욕 필 단원 대부분은 일어서서 북한 국가를 연주하며 북한에 최대한 예우를 보냈다.
▲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북한 여성들이 26일 뉴욕 필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의 동평양대극장에 도착하고 있다. 많은 북한 관람객이 공연 뒤“북한과 미국의 예술 교류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북한 음악 교사 김경철씨는 "외국 오케스트라의 애국가(북한 국가) 연주를 실제로 듣는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조선과 미국 간에 음악 교류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 관객들은 이어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도 자리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미국 국가에 북한 관객들은 다소 딱딱한 표정이었지만, 연주가 끝나자 박수를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양국 국가 연주에 이어, 공연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가운데 3막 전주곡으로 시작됐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등장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결혼 행진곡의 선율로 유명한 '혼례의 합창' 직전에 연주되는 곡이다. 오케스트라 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 화해 모드가 정착하기를 넌지시 바라는 뜻이 프로그램에도 반영돼 있었다.
마젤은 이날 지휘 외에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북한 관객들에게 곡을 소개했다. 또 공연과 앙코르가 시작되기 전마다 세 차례 한국어로 "좋은 시간 보내세요" "부탁합니다" "즐겁게, 즐겁게 감상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때마다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다.
전주곡에 이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과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연주했다. 두 작품 모두 뉴욕 필하모닉이 각각 1893년과 1928년에 직접 세계 초연했던 곡이다. 이날 소개된 미국 작곡가 거슈윈과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작품은 모두 미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곡들이다. 40대의 한 남자 관객은 "드보르자크가 전쟁과 침략이 없고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묘사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신세계(미국)가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했다.
마지막 앙코르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편곡한 '아리랑'을 연주하자 북한의 객석에서도 하나 둘씩 조용히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곳곳에서 흐느끼거나 눈물을 닦는 관람객도 있었다.
아리랑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난 평양 관객들이 한참이나 손을 흔드는 바람에, 무대에서 퇴장하려던 단원들도 5분 이상 자리에 멈춰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지휘자 마젤은 "미국 음악의 역동성과 뉴욕 필을 알려 줄 수 있는 작품을 택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