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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12.04 00:53 / 수정 : 2007.12.04 00:5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2/04/2007120400072.html
혐의 확인보다 해명 들었을 가능성
‘BBK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를 서면조사했다는 사실은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서면조사라는 조사의 방식과 시기를 통해 어느 정도 사건 수사 결과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면조사에 담긴 뜻은
이 후보는 BBK 전 대표 김경준(구속)씨의 주가조작에 공모했다는 혐의와, 자신의 형·처남이 대주주인 ㈜다스를 실제로 소유하고도 공직자재산신고 때 누락했다는 혐의로 각각 고발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이 서면조사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이 후보의 뚜렷한 범죄 혐의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검찰 관계자는 “만약 수사팀이 이 후보를 소환조사하겠다고 나섰다면 명백한 범죄 혐의를 찾았다는 뜻이지만, 서면조사를 했다는 건 그 반대의 의미”라고 말했다. 혐의 확인보다는 주로 해명을 듣기 위한 차원의 조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면조사를 한 시기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검찰은 늦어도 김경준씨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오는 5일까지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주말 두 차례에 걸쳐 이 후보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답변을 받고 나서 발표 때까지 추가로 조사를 하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이 서면조사로 수사를 끝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굳이 검찰이 서면조사를 한 데는 어떤 형태로든 이 후보를 조사하지 않고 수사를 끝낼 경우 제기될 부담을 덜어보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후보를 조사하지 않고 관련 의혹에 대해 대부분 ‘문제 없음’으로 결론 낼 경우 수사 내내 이 후보 소환조사를 주장해온 대통합민주신당으로부터 “이 후보 눈치를 봤다”는 거센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BBK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임채진 검찰총장(맨 앞)이 간부회의를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가고 있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검찰 막판까지 BBK 사건에 올인
월요일인 3일에는 “수사정보가 정치권으로 흘러나간 정황이 있다”는 설이 검찰 안팎을 떠돌면서 발표 시기가 마지막 시한인 5일보다 앞당겨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수사팀 관계자들은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막판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큰 틀의 수사는 끝났지만, 추가 수사를 최대한 해보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수사팀은 극도로 몸조심을 하는 분위기였다. 수사팀의 한쪽에서는 수사결과 발표문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사실이 언론에 확인됐는데도, 수사팀은 여전히 “수사가 한창 진행 중”(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워낙 민감한 사건인 만큼 ‘끝까지 수사했다’는 인식을 남기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였다.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도 지난달 26일 취임한 이후 이 사건 지휘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는 “검사장이 이 사건에 ‘올인’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 지검장은 취임 이후 긴급한 사건을 제외한 다른 사건은 보고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경준씨는…
면회한 어머니 “엄청 원통해 해”… 수사에 좌절감 느낀듯
지난 16일 국내로 송환돼 활짝 웃으면서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섰던 BBK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41·구속)씨가 검찰 수사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으로 3일 전해졌다.
이날 오후 김씨를 검찰 조사실에서 면회하고 나온 그의 어머니 김영애씨는 본지 기자에게 “경준이가 엄청 원통해하고 분해한다”며, 아들의 현재 심경을 전했다. 김씨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연루 의혹을 입증해 보이겠다며 갖고 있던 자료 일체를 들고 들어왔으나, 검찰의 막바지 수사가 자기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자 ‘좌절감’을 느꼈다는 얘기인 것으로 보였다. 김씨의 어머니는 “한국 가서 조사 받겠다고 했을 때, 내가 ‘한국은 미국처럼 공정한 나라가 아직 아니니 가지 말라’고 말렸다”면서 “그런데도 ‘한국도 많이 달라졌다’며 가더니 지금은 실망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다른 입증자료를 가지고 입국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니다. 거기도 원통하고 분해서…”라고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또 “왜 이명박씨는 조사도 안 하고 경준이만 불러서 그러느냐”며 검찰을 비난했으며, “몇몇 언론만 빼고 대부분이 이씨가 대통령이 될까 봐 벌벌 떠는데 대통령 되면 잡아 가기라도 하느냐”라며, 언론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김씨 주변인사에 따르면, 국내 송환 이후 이날까지 18일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오는 5일 기소를 앞두고 심신이 몹시 지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의 매일 진행돼 온 조사 대부분이 다음날 새벽 3~4시쯤 끝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개 조사는 당일 밤 11시 무렵이면 끝나지만, 김씨가 서명·날인하기 전에 자신의 진술조서를 읽어 보는데 보통 4~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이 발견되면 입회한 변호인의 자문을 받은 뒤 고쳐달라고 요구하고, 수정한 조서를 받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김씨를 상대로 민감한 내용을 조사할 때는 조사 장면을 모두 녹화해 동영상 파일로 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여 김씨가 기소 이후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