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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특파원 (워싱턴) May2@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7.11.02 23:43 / 수정 : 2007.11.03 21: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02/2007110201117.html
[Why] 때린 나라도 맞은 나라도 말이 없다
지난 9월 6일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소위 ‘핵 시설’을 공격했다. 시리아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데이르 에즈 조르’ 지방의 ‘티브나’ 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사막에 있는 시설이었다.
이스라엘의 주변국 핵 시설에 대한 선제폭격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스라엘은 1981년 6월 27일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25㎞에 위치한 오시락(Osiraq) 원자로에 대해 총 14대의 전투기를 동원, 폭격을 감행했다.
뉴욕타임스는 6일 후인 12일 이를 보도하면서 “이 ‘핵 시설’은 북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해 온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 관리들이 익명으로 “북한이 시리아에 핵 물질을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도 활자화됐다. 이와 동시에 다른 관리들이 “그런 의혹은 있지만 근거가 약하다”고 말한 것도 함께 기사화됐다.
한가지 사안을 놓고 “맞다”, “아니다”라고 대립하는 기본구조는 이스라엘의 시리아 폭격 후 두 달이 다 되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정보를 입수했으나 이를 먼저 기사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폭격을 한 당사자와 피해자 모두 침묵하고 있는 것도 미스터리다. 처음엔 공습 자체가 과연 있었느냐는 논란이 일 정도였다. 이스라엘측에선 야당 지도자인 베냐민 네타냐후(Netanyahu) 전 총리가 나서서 시리아를 공격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시리아 정부의 입장은 혼란스럽다. 시리아는 원래 이스라엘군이 공습하기 전에 격퇴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al-Assad) 시리아 대통령이 최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전투기가 텅 빈 군 건물을 겨냥했다”고 말해 폭격은 사실임을 확인했다. 시리아는 지난 9월 폭격을 당한 이후 마치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깨끗이 그 잔해를 치워버렸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 이후 워싱턴에서는 좀처럼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 문제에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매달려 있다. 북한과 시리아의 ‘핵 커넥션 의혹’으로 명명된 이 사안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협상에 가속도가 붙는 것에 비례해서 점점 커지고 있다.
논란을 더욱 가열시킨 것은 인공위성 사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4일 이스라엘의 폭격 한달 전인 8월의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했다. 그 결과 시리아의 핵 의혹시설이 북한 영변의 5MW 원자로와 흡사하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원자로는 가로 47.8m 세로 49.9m 규모다. 시리아의 핵 의혹 시설 역시 가로 세로 각각 46.9m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 내 최고의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Albright)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이를 근거로 “시리아가 핵 시설을 만들려 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시리아가 매년 핵무기 1개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20~25㎿의 흑연 감속로를 건설하려 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이틀 뒤인 26일 이미 4년 전인 2003년 이 시설에 대한 공사가 상당히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인공위성 사진을 입수, 보도했다. 2003년 9월 16일 민간 기관인 ‘지오아이(GeoEye)’가 찍은 이 사진은 이 공사가 2000년쯤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설령 북한이 시리아에 대한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다고 해도 이는 2003년 8월 북핵 6자 회담이 시작되기 이전의 것으로 현재의 문제는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시리아와 북한 모두 미국에 의해서 불량국가로 낙인 찍힌 나라다.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는 것도 똑같다. 이런 두 국가의 무기거래는 상당한 역사가 있다. 지난달 1일엔 미국의 군사전문지인 ‘디펜스뉴스’를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미사일 생산공장을 건설해 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우지 루빈(Rubin) 전 이스라엘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장의 폭로다. “북한이 시리아에 스커드C, 스커드 D 미사일 공장을 만들었으며, 북한 기술자들이 시리아에 상주하며 미사일의 성능 개선 및 발사 실험을 돕고 있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시리아의 ‘핵 시설’이 과연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선 워싱턴에서 극소수의 최고위인사들만이 알고 있다.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 딕 체니(Cheney) 부통령, 마이클 헤이든(Hayden) 중앙정보국(CIA) 국장, 콘돌리자 라이스(Rice)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Gates) 국방장관을 포함, 10여 명만이 이를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이렇게 철저하게 정보가 통제된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심지어 대북 협상을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Hill) 국무부 차관보도 정확한 내용을 모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사건의 파장 중의 하나는 북한 핵 문제에 이스라엘이 개입됨으로써 북한변수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지난해 핵 실험을 한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시리아와 핵 협력을 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뚜렷한 물증이 없는데도 미국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비롯한 미국 내 이스라엘계 단체들이 막강한 로비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는 최근 워싱턴을 방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스라엘 로비 때문에 일어났는데, 이번에도 이스라엘이 깊숙이 개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과 시리아간의 핵 커넥션을 시한폭탄에 비교하고 있다.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불능화에 이어 핵 폐기 절차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이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확인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WMD)를 그 이유로 내세웠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가장 경계하고 있는 ‘핵 확산’이 확인될 경우 이를 묵인하고 갈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무력으로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유엔과 모든 우방국을 동원해 압박정책으로 다시 선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