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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12-07 오후 12:49:55
"한민족의 두가지 恨을 풀어준 박정희 대통령"
written by. 김필재
[강연]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경제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
박진환 박사(前 대통령 경제특보)는 7일 오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경제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을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유양수)가 주최한 이날 조찬강연에서 박진환 교수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수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것은 근면, 자조, 협동을 기반으로한 새마을 운동의 건전한 자본주의 정신이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날 강연의 요약이다.<편집자주>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경제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을 주제로 강연중인 박진환 박사(前 청와대 경제특보)/@konas.net
지난 반세기 동안에 한국은 가난한 농업국으로부터 벗어나 세계적인 수출국으로 탈바꿈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도의 67달러에서 2003년도에는 12,600달러에 달하였으며 한국은 후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에 불의의 시해사건으로 서거하셨다. 박대통령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많은 것을 이룩해 놓고 세상을 떠나셨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았으면 하는 우리 겨레의 가난의 恨을 풀어놓고 돌아가셨다.
또한 그분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무력으로 남한을 적화통일 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한의 국력을 신장시켜 놓고서 돌아가셨다.
그분은 그의 새마을노래 제 4절처럼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들어 놓고서 돌아가셨다. 그가 이룩한 한국경제의 발전 덕분에 오늘의 우리는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업도 하고 문견도 넓히고 있다.
그분은 우리 겨레의 가난의 恨과 6.25 전쟁의 恨을 풀기 위해 1970년대에 들어와 유신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권위주의 정부로 되면서 자유민주 정치를 일시 중단시키면서 경제개발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 당시 우리 나라가 처해있는 여건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1960년대 말기에 와서 북한의 김일성은 또 다시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기 위해 베트남에서와 같은 게릴라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는 국가 안보적 요인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달러 수준의 남한경제로서는 기름값이 급작스럽게 4배로 높아진 석유파동을 극복하면서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하고, 자유민주 정치도 발전시키기에는 국력이 너무 모자랐다는 요인이 있었다.
여기에서 한정된 국력으로 국가안보, 경제 근대화, 그리고 자유민주정치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는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우선 북한의 침략부터 막아내고, 경제적 도약을 이룩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기로 작정하고서, 자유민주 정치의 발전을 일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곧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부(Authoritarian government)이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에게 물질적인 유산과 정신적인 유산을 남겼다. 물질적인 유산은 한국의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해 놓았다는 것이고, 정신적인 유산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투철한 애국심과 근면, 자립, 협동의 생활신조를 솔선 수범했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 통해 민족의 저력 재확인
근면, 자조, 협동의 생활신조를 생활화하자는 새마을운동은 외국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민들이 지니고 있었던 農心을 되찾은 운동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의 여건들은 우리 농민들이 農心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질 못했기 때문에, 農心이 잠재해 버렸으며 농민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박정희 대통령의 농촌 근대화를 위한 강한 의지와 집념이 있었기에 그 동안 잠재해 버린 우리 농민들의 農心이 되살아났으며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비행기는 오랜 세월 동안 활주로에서 맴돌기만 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활주로에서 벗어나는 이륙(take off)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륙한 한국호의 비행기는 거의 수직으로 하늘 높이 단숨에 날아올랐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두 가지 과제
한국이 이륙하는 것을 본 지구촌의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이 이륙하는데 성공한 것에 큰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왜냐 하면 지구촌에는 개발도상국들의 수가 백 수십 개나 되지만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활주로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고 이륙(take off)을 한 나라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며 이들을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들이라고 부른다.
이들 가운데 한국은 가난한 농업국이었으며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적화통일을 위한 한국전쟁(1950-1953)으로 남한경제는 폐허처럼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용들과도 달랐다. 그러한 한국이 짧은 기간에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 세계적인 수출국의 하나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구촌의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가난에서 벗어난 한국경제가 선진국경제의 문턱에 들어서려고 하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두 가지의 새로운 과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하나는 중국이 세계의 수출대국으로 등장하면서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어 남한경제가 치러야 할 통일비용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경제적 파탄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어려움 들을 이겨내는 길은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함으로써 선진화되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쉽게 풀린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국제경쟁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야만 한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과학기술 수준이 선진화되어야 하고, 한국인들의 생활신조가 선진화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대처 수상, 근면-자조-의무 지도이념으로 삼아
영국은 근대 자본주의 경제를 가장 먼저 발전시켰으며, 근대적 의회민주정치도 가장 먼저 실시하였다. 지구촌의 여러 곳에 영국의 식민지들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大英帝國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라고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식민지들이 독립국가로 되어 영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에 따라, 영국은 섬나라인 본토만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산업사회로 발전한 영국의 정치제도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체제로 되어 있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구라파의 선진국들에 번진 사회주의의 물결을 타고 사회복지를 늘리기 위한 법안들이 노동당의 지지를 얻어 무난히 통과되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조찬 강연에는 전직 정관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konas.net
그러나 노동당은 노동자들의 복지를 높이려다가 실업자의 수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국경제는 정체상태를 계속하다가 1970년대 중반기에 와서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에서 보수당의 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대처 수상이 등장함으로써 그녀는 영국 병을 치유하기 위해 근면(Diligence), 자조(Self-reliance), 의무(Duty)를 그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고 국민 각자의 忍耐와 自制를 요구하는 정치를 함으로써, 불이 꺼져가던 영국의 공장들에서 다시 연기가 나게 한 것을 우리는 상기하게 된다.
대처 수상이 근면, 자조, 의무를 그녀의 통치이념으로 내 세운 것은 영국이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영국 국민들이 너무 잘 살게 되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의 복지시책에 의존하려고 하다보니 英國病이 생겼으며, 그것을 고치려고 하니까 국민 개개인의 인내와 자제하는 생활신조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대처 수상의 지도이념인 근면, 자조, 의무는 본시 영국의 국력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던 시대의 Victoria 여왕의 통치이념이었으며, 그것을 오늘에 되살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영국에서 Victoria 여왕이 근면, 자조, 의무를 통치이념으로 하였다는 것, 그리고 영국인들이 너무 잘 살게 되어 사회복지정책에만 의존하려고 하다가 생긴 英國病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대쳐 수상이 근면, 자조, 의무를 통치이념으로 다시 내세우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도 한국 국민들의 생활신조는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지에 소중한 교훈을 받게 된다.
새마을 정신은 '청교도적 자본주의 정신'
알프스의 산기슭의 비탈진 곳에 정착한 스위스 농민들은 감자, 포도, 축 산 등의 영농을 해왔으며 물질적인 생활은 가난한 편이었다. 그러나 알프스의 설봉과 맑고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의 마음만은 풍부하였다. 그들은 근면, 성실, 검소함을 생활신조로 해 왔었다. 이것이 칼빈으로 하여금 스위스를 청교도의 선교지로 선택하게 하였을 것이다.
스위스 국민들의 청교도적 생활신조는 지하자원이 없는 알프스의 산 속에서도 자본을 축적하고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시계 제작의 왕국으로 만들었으며, 정밀기계의 공업국이 되게 하였고, 국제사회로부터의 신용을 밑천으로 국제적인 금융산업의 나라로 발전되게 하였다.
필자는 1960년에 미국 시카고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때 이 대학의 Freedman 교수의 경제원론 책 속에 청교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청교도들은 이 세상에서 인내와 희생의 삶을 살아야 영생(salvation)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인내와 희생의 삶을 경제학적으로 풀이하면 인내는 근면이 되고, 희생은 저축이 된다. 왜냐 하면 우리 인간은 근면하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저축을 하려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즐기려는 생각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건전한 자본주의가 되려면 국민들이 淸敎徒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당시만 해도 한국 농촌에는 교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농민들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청교도로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농사를 짓다보면 청교도가 되게 마련이다. 왜냐 하면 農心이 바로 청교도 정신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마을정신의 생활화를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한국에 알맞은 자본주의 정신을 가꾸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으로 자본주의 정신이 뿌리내릴 수 있으려면, 이 운동이 장기간에 걸쳐 전개되어야 한다.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푼푼이 저축하여 부자가 되어야만 부자가 존경을 받게 되고, 자본주의사회의 정당성이 생긴다.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은 부정하게 쓰여짐으로써 자본주의사회의 정당성이 구축되지 않게 되고, 사회의 안정이 흔들리게 된다.
경제성장·고용기회 증가 바라는 한국인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경제는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성장을 하게 되어 일터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평등한 분배를 중요시하는 정부와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05년 현재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평등한 분배보다는 취업할 고용기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2000년대의 한국의 과제는 한국인들의 국제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잘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고 하는 정치풍토보다는 국민들이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겨내는 생활신조를 생활화하는 정치풍토가 조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국난을 극복하는 국민들의 정신자세이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국난극복의 생활신조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정신(청교도정신)은 지난날 가난할 때만의 낡은 정신이라고 경시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겨레는 지난날 끊임없는 국난들을 극복하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한반도의 국난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마을정신(청교도 정신)은 우리가 생활화해야 하는 생활신조라고 본다. 한국보다 훨씬 앞선 선진 강대국들도 나라가 어려워지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의 애국심과 근면, 자조, 의무의 생활신조를 되살리게 된다는 사례를 들어보았다.
경제적 지평선 먼 거리에 두어야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게 되니까 국민들 중에는 놀기 좋아하고 분에 넘칠 정도로 쓰기 좋아하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근면과 저축의 새마을정신은 가난했을 때만의 생활신조인양 퇴색해 가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한국인들은 경제적 지평선(economic horizon)을 너무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제적 지평선을 가까운 곳에 두게 되면 조금만 살기가 나아지면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만하면서 이제는 놀기나 하고 쓰기나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가 미국의 대학에서 후진국 경제발전에 관한 과목을 들었을 때 구라파나 미국 등 선진국들의 국민들은 경제적 지평선을 먼 곳에 두고 있지만, 후진국 사람들은 경제적 지평선을 바로 가까운 곳에 두기 때문에 생산이 늘어나면 곧 소비해 버리고 국내자본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한국도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으므로 우리 국민들도 경제적 지평선을 먼 곳에 두는 국민이 되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리하여 잘살게 되더라도 근면과 저축을 생활신조로 하는 국민으로 되어야 한국도 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konas)
취재·정리: 김필재 코나스 기자 climb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