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데일리엔케이 http://www.dailynk.com 에 있는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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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BBC기자 아리랑 참관기…"20년전 중국 모습"
“감시원과 관광객은 ‘고양이와 쥐’의 관계”
[ 2007-04-20 18:01 ]
▲ 평양에서 중계하는 BBC 스캔런 기자 ⓒBBC뉴스 화면 캡쳐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15일부터 사흘간 북한을 방문한 영국 BBC 방송의 찰스 스캔런(Charles Scanlon. 서울 주재 특파원) 기자는 방송 웹사이트(www.bbc.co.uk)를 통해 취재 후일담을 공개했다.
스캔런 기자는 김일성의 생일인 15일 BBC를 통해 평양 현지 중계 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아리랑 공연 관람 후 이틀 동안 북한 당국이 지정한 평양의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평양은 거대한 선전의 도시이자 철저한 통제 사회였다. 어디를 가든 감시원이 따라붙었고,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으며, 일반 주민들과의 대화는 철저히 통제됐다.
그는 특히 감시원과의 관계를 ‘고양이와 쥐’에 비유하며, 여행 내내 감시를 받아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풍자했다.
최고층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수시로 멈춰 서고, 논에서는 아직도 소가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곳의 주민들은 고장난 녹음기처럼 체제 찬양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쳐댔다.
스캔런 기자는 북한의 황폐한 모습을 보며 ‘단 몇 킬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한의 발전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진다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스캔런 기자의 방북기를 요약, 게재한다.
◆ 여행 첫째 날
“베이징을 떠난 고려항공은 (북한에) 연민과 호기심을 품은 외국인들을 싣고 북한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입국 심사대에서 몰수 당했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북한정부는 나와 다른 영국 기자들에게 통역자 겸 감시원을 할당해줬다.
한 명은 영어로 말을 했으나 분홍색의 풍성한 한복을 입은 한 젊은 여성은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 외국어도 못했으나 이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울 계획이었다.
고양이와 쥐
이런 배려는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와 쥐의 불가피한 싸움은 북한 방문의 특징이다.
그들의 일은 어디를 가든 우리와 동행 하며 우리가 허락되지 않는 곳을 사진 찍으려 할 때 차단하는 것이었다. 사실 도시 전체가 그러했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평양의 넓은 대로를 따라 피어난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여성들은 밝은 원색의 의상을 입고 위대한 지도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 댄스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는(김일성) 거대한 벽화에서 이들을 근엄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값 싼 좌석
우리는 아리랑 공연 취재를 위해 공식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아리랑은 북한 정부가 필요로 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기획한 집단체조다.
우리 가이드 중 한명은 티켓 한 장이 암시장 환율로는 그들의 일년 치 월급을 훨씬 웃도는 200유로라는 말을 하고는 웃음을 참으며 얼굴을 돌렸다. 우리는 50유로짜리 값싼 좌석을 택했다.
공연은 물론 굉장했다. ‘매스게임’은 북한의 특수 분야였다. 예전에 체육교사였다던 사람이 “이 행사는 당신들 나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며, 우리 국민들을 결집 시키는 의지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흰 옷을 입은 천여명의 여성들이 북한의 완벽한 지도를 만들어냈다. 섬세한 표현도 아낌없이 해냈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안내원을 따돌렸고, 평양에 거주하는 해외 근무 경력자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미얀마에서 일했던 한 사람은 자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한다고 설명해줬다.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기 위해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외국인들은 지방에 있는 아는 사람의 가정을 방문할 수도 없다.
◆ 여행 둘째 날
우리는 ‘강제의 도시’인 평양 여행에 빠져들고 있었다. 첫 코스는 위대한 지도자가 태어난 곳인 한 아름다운 언덕의 공원이었다. 일종의 성지순례 장소다.
여학생들 몇 무리들이 함께 도착했다. 그들은 갈색의 군복을 입고 완벽하게 발을 맞춰 행진했다. 그들은 북한의 엘리트 집안인 혁명가 가족의 자녀들이라고 들었다. 정렬한 소녀들이 재잘 거리며 지나가자 안도감을 느껴졌다.
다음은 주체사상탑이다. 북한의 공식 사상을 기념하기 위한 거대한 석조 기념탑이다.
정글의 법칙
외관상으로는 75회 생일이 될 때까지 위대한 지도자의 하루 하루를 기념해 석조 벽돌로 채우고 있었다.
나는 주체사상을 주제로 끌어냈다. 최 씨라는 여성 가이드는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주체사상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녀는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은 이 국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또한 주체사상의 기본적인 원칙은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것과 인민 대중이 혁명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인데, 그 다음부터는 좀 헷갈려서 이해할 수 없었다.
최씨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 할 때 더욱 단호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매우 강하며 다른 나라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쳐부술 수 있는 무력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악한 제국주의자들
최 씨는 최근에 첫아이를 낳았다. 3개월 된 딸이었다. 그녀는 지적이며 품위가 있었다. 영어도 놀랄 만큼 잘 했다. 만약 그 사람이 남한에 살았다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는 학자나 선생님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안내원 일행은 우리가 일반 시민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철저히 차단했다.
노동당 기념관에서 안내원은 김일성과 그의 아들은 이 나라의 아버지이며, 어머니라고 기품있게 설명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그럼 둘 중 누가 어머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내원은 “김정일은 조선 노동당과 인민의 어머니다”고 기쁨에 찬 얼굴로 설명했다. 전통적 유교의 풍토에서 나온 아주 복잡한 가족관계임에 틀림이 없었다.
◆ 여행 셋째 날
우리는 오늘 비무장지대로 간다. 하지만 호텔로비에서 첫 번째 도전에 부딪치게 됐다.
우리는 평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호텔의 42층에 묵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잘 올라오지 않았다. 또 한번에 올라오지 못하고 내려가면서도 여러 번 멈춰 섰다.
아주 멀고도 느린 여행이었다. 우리가 지나쳐 간 층들은 어두웠고 투숙객도 없어 보였다.
거기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일년에도 여러 차례 호텔은 문을 닫는다고 말해주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생일 축하를 위해 초청되거나 참석하는 외국인들을 위해서 먼지를 털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외로 빠져나가며 남쪽으로 향했다. 봄이 시작되고 있어서 들판은 녹색을 띄고 있었다.
소들은 쟁기질을 하거나 짐수레로 이용되고 있었다. 여성들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삶의 모습은 20년 전 중국을 떠올리게 했다.
보이지 않는 위원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나라인 남한에서 단 몇 킬로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국경지역의 감시병은 아주 수다스러웠다. 그는 핵 협상을 깨트린 미국을 욕하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아주 쾌활했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남한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남한의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액수의 통일 비용을 부담하느니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우리의 가이드이자 감시자이며 통역자인 세 명과는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그들은 젊었고 경험도 풍부했다. 밤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위원회’와 우리의 방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전화로 논의했다.
그들은 차에서 사진을 못 찍게 했다. 또 한밤중에 우리를 찾으러 오곤 했다. 그들은 친절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이 젊은 가이드들은 그들의 처한 현실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이 왕국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은 결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양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