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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입력 : 2007.04.05 00:37 / 수정 : 2007.04.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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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익 1300억 회사 노조가 임금동결
독일계 다국적 그룹 바스프(BASF) 가 투자해 운영 중인 한국바스프㈜ 여수공장 노조가 4일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고 임금동결을 결의했다. 이 공장 노조는 과거 9일간 파업을 강행했던 민노총 산하 강성(强性) 노조다. 게다가 지난해 회사가 13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최근 몇 년간 사상 초유의 흑자 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임금동결을 결의해 주목을 끌고 있다.
김현열(40) 여수공장 노조위원장은 대의원 대회를 마친 후 “바스프 본사가 군산공장을 최근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작년 중국에 여수공장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임금동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바스프는 1954년 한국에 진출, 현재 울산(2곳)·여수·안산·군산에 5개 공장을 가동 중이며, 지난해 총 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강성노조의 결단
“만장일치로 2007년 임금동결이 통과됐습니다.”
이날 오후 전남 여수시 한국바스프㈜ 여수공장 대회의실. 김현열(40) 노조위원장이 대의원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일제히 박수를 치고 서로 악수를 나눴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김 위원장은 “이제 노조만의 이익만 바라보는 노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자유치까지 나서 회사를 살리는 노조가 되자”고 외쳤다. 폴리우레탄 원료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지난해 매출 9300억원에 순이익만 1300억원을 달성한 초우량 공장이다. 노조 입장에선 “임금을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스스로 포기하고 임금동결을 택했다.
한때 10%가 넘는 임금인상을 끌어냈던 여수공장 노조의 결단은 화학업계에선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과 3년 전인 2004년 9일간의 전면 파업을 벌여 노사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한국 바스프 여수공장 노조는 2004년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9일간 파업을 강행했다.
◆중국의 위협에 충격받은 노조
강경했던 노조가 이처럼 태도를 180도 바꾼 이유는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바스프 본사는 지난해 7월 중국 상하이 인근 카오징에 여수공장과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가동시켰다. 카오징공장(연산 40만?)은 여수공장(37만?)보다 생산량도 많다. 이후 여수공장의 생산시설마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바스프 본사가 지난달 30일 라이신(사료용 단백질)을 만드는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해 190명의 노조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위르겐 함브레히트 본사 회장이 방한해 “외국투자기업은 사슴과 같은 존재다. 풀이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며 한마디를 던진 이후 나온 조치였다. 홍원식(43) 노조 부위원장은 “설마 했는데 정말로 (바스프 본사가) 발을 빼버렸다”며 “노조만의 이익을 위해 근시안적으로 싸우다가는 밥그릇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 이 노조는 외자유치를 위해 4일 임시 대의원 회의를 열고 임금동결을 결의했다. /한국바스프제공
◆노조위원장이 소주 마시며 설득
노조 내부의 진통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달 김 위원장이 어렵사리 임금동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노조원들은 “호황일 때 동결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후 노조간부들이 1시간 일찍 출근해 노조원들을 설득했고, 퇴근 후엔 소주잔을 기울였다.
현재 바스프는 10억 유로(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해 아시아에 폴리우레탄 원료 생산공장을 2010년쯤까지 증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수와 카오징 가운데 어느 곳에 투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 신규투자를 끌어오는 게 결국 고용안정을 가져오는 길”이라며 “본사에서 여수공장을 보는 시선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현 공장장(부사장)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선물을 노조로부터 받았다”며 “회사의 비전을 사측이 보여줘야 하는데 노조가 먼저 보여줬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