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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입력 : 2007.03.22 19:14 / 수정 : 2007.03.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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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휴회결정 "차기회담 가장 이른 기회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지난 19일부터 열린 제6차 6자회담이 동결해제된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측 자금 송금문제로 파행을 겪은 끝에 22일 오후 휴회 형식으로 종료됐다.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6자회담 나흘째인 이날 오후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전체 수석대표 회의에서 차기 회담의 구체적 일정을 잡지 못한 채 휴회를 결정, 회담 결과를 담은 의장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또 ‘가능한 가장 빠른 기회’(at the earlist opportunity)에 차기 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의장성명은 “참가국들은 6자회담의 과정을 계속 진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며 “각측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상의 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각측은 5개 실무그룹의 보고를 받았고 초기조치의 이행 및 다음 단계의 행동계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며 “참가국들은 휴회에 합의했으며 다음 단계 행동계획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도출해 나가기 위해 ‘가능한 가장 빠른 기회’에 회담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어제 밤부터 오늘까지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틀의 해결책이 마련됐으나 송금과 관련한 기술적.절차적 문제해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돼 휴회를 했다”며 “빠른 시일내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 본부장은 이어 “마지막 수석대표 회담에서 북한은 BDA 문제가 해결되는대로 다음 회담이 열리기 전이라도 2.13 합의를 다 이행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면서 “이번에 실질적 토의는 미진했어도 북측이 2.13합의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기 회담 시기에 대해 “언제 열린다는 것은 합의되지 않았으나 다음 회담이 언제 열리더라도 초기조치는 합의된 대로 이행된다는데 다 공감했다”며 “북한은 이에 대해 발언권을 요청해가며 강조를 했다”고 전했다.
천 본부장은 “초기단계 조치 이행 전이라도 중국이 편한 날짜를 다시 잡으면 회의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BDA문제 해결은 시간의 문제이자 기술적 절차적 문제이며 정치적 의지의 문제가 아니어서 해결이 안될 이유가 없다”면서 “BDA 문제의 해결은 ‘수 일’의 문제이지 ‘수 주’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은 북측이 BDA에 동결됐던 자금 2천500만달러를 송금받기 전에는 비핵화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가운데 송금작업이 기술적인 문제로 지연되면서 이렇다할 성과없이 마무리됐다.
미 재무부는 이번 회담 개막일인 지난 19일 BDA의 북측 자금 전액의 동결을 해제한 뒤 베이징 소재 중국은행의 조선무역은행 계좌로 송금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북측은 회기 내내 송금확인이 되어야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참가국들은 당초 이번 회담에서 ‘2.13 합의’에 명시된 비핵화 초기조치 및 후속조치 이행 문제를 협의하고 초기단계조치 이행 후 빠른 시일내에 6자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정을 잡으려 했으나 무산됐다.
각국은 또 ‘2.13 합의’에 따라 북한과 나머지 참가국들이 각각 이행키로 한 초기단계 조치와 상응조치의 세부 계획을 협의하고 초기조치 시한인 60일 이후 진행할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의 로드맵을 협의하려 했다.
이날 북한은 막판까지 BDA에 동결됐던 자국 계좌주들로부터 계좌이체 신청서를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고 중국은 북한 측 자금 입금을 거부하고 있는 중국은행측과 합의점 모색을 시도했지만 모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날 오후 수석대표 회의 전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전체 회의에는 김성기 주중 공사가 김 부상을 대신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