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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동분담금만 650억원…日 거부땐 더 늘어
6자회담의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회담이 폐막된 직후 악수를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번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 초기 이행조치’의 큰 틀은 북한 핵 문제를 반대급부를 주고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핵 폐기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 배경은 무엇인지,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왜 북의 핵무기는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또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얼마인지, 이번 합의가 과연 북핵 폐기로 이어질 것인지 등 궁금증도 적지 않다. 이를 문답식으로 살펴본다.
○ 북한의 비핵화 조치 절차와 배경
―이번 합의로 북핵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북한이 핵 시설뿐 아니라 과거에 개발한 핵무기와 북한이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고농축우라늄(HEU)까지 모두 폐기해야 핵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선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는 제외하고 핵 시설 등의 핵 프로그램 문제만 의제로 해야 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HEU 보유 의혹을 부인했다.”
―핵 프로그램에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나.
“북한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이 별도인 양 분리하려고 해 왔다.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이 ‘포기’할 대상으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구분해 명시한 것은 북한에 핵무기가 포기 대상임을 분명히 일깨우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의 신고 대상인 핵 프로그램엔 핵무기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합의문에 다음 회담에서 핵 폐기 조치를 끌어낼 수 있는 연결고리는 만들어 놓지 않았나.
“만들지 못했다. 이번 회담의 목표는 핵 폐기에 들어가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핵 폐기 조치를 위한 협상은 핵 불능화(disablement)와 핵 프로그램 신고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은 그보다 더 나중에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 합의한 비핵화 조치에 시한은 있나.
“핵시설 폐쇄(shutdown) 및 봉인(seal)엔 60일이란 시한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핵 불능화 조치와 핵 프로그램 신고엔 시한이 없다. 북한이 이를 이행하는 속도에 맞춰 대북 지원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북한으로선 빨리 하면 그만큼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만일 북한이 ‘시간 끌기’ 전술을 편다면 이를 제어할 다른 장치는 없다.”
―북한의 합의 이행이 늦어질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핵 프로그램 신고가 늦어지면 그 다음 단계인 핵 폐기 시점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시간을 끌면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핵 시설 및 핵 프로그램을 이용해 추가로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을 생산하고 이를 이용해 핵무기를 늘려 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이전이던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통해 핵 동결(freeze)을 하는 대가로 8년간 중유를 350여만 t이나 받았다. 지금은 핵실험까지 한 단계인데도 이번에 100만 t만 받기로 하고 합의한 것은 이상하지 않나.
“북한이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도 북한을 곤경에 빠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이번에 중유 100만 t을 받는 조건으로 핵시설 폐쇄에 합의했지만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의 신고 및 폐기 문제를 놓고 앞으로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 대북 지원 비용과 방식
―한국이 부담할 비용은 얼마나 되나.
“북한이 60일 내에 핵 시설을 폐쇄 및 봉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의 입북을 허용하게 되면 한국이 중유 5만 t에 해당하는 에너지 지원을 하게 된다. 비용은 국제시세 기준으로 160여억 원이다.”
―더 들어가는 비용은 없나.
“북한이 핵 불능화 조치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하게 되면 중유 95만 t에 해당하는 에너지 및 경제적 인도적 지원에 참여하게 된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균등 분담할 예정이다. 먼저 중유 5만 t분을 부담한 한국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몫은 490여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균등 분담이 보장돼 있나.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비용 분담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북한과 일본 간 갈등이 계속될 경우 한국의 부담이 늘어날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일본도 비용을 분담하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나.
“없다. 그러나 일본이 분담을 거부하는 것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한 9·19공동성명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 스스로가 결정하고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 모호한 비핵화 조치 개념
―핵 불능화가 이뤄지면 북한이 정말 핵 시설을 재가동하지 못하는 것인가.
“핵 불능화의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재가동을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핵 불능화는 핵 시설에서 주요 부품을 제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경우 부품만 다시 결합하면 재가동이 가능해진다. 시설의 주요 부위를 회복이 안 될 정도로 망가뜨리는 것도 핵 불능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회담 관계자는 핵 불능화에 대해 ‘모든 핵 시설이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핵 폐기나 다름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이 문제로 논란을 빚을 가능성은 없나.
“북한이 부품을 제거한 뒤 ‘핵 불능화 조치를 취했으니 에너지를 지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다른 회담 참가국들이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질 개연성이 있다. 핵 불능화 조치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北 핵시설 관련 용어
이번 6자회담에서는 북한 핵시설의 폐기를 위한 과정으로 ‘동결(freeze)’과 ‘폐쇄(shutdown)’, ‘불능화(disablement)’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
이 중 ‘동결’은 북한의 비핵화 1단계 조치로 평북 영변에 있는 5MW 원자로 등 핵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초기 이행 조치가 단순한 핵 시설 동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이 연간 중유 50만 t과 경수로 건설을 대가로 핵 시설 동결에 합의해 놓고 이를 재가동해 플루토늄을 추출했기 때문.
‘폐쇄’는 이런 점을 감안해 한미가 이번 회담에서 처음부터 북한에 강하게 요구한 개념이다. 북한이 언제든지 재가동을 할 수 있는 ‘동결’과는 달리 ‘폐쇄’는 핵 시설에 대한 북한 기술자들의 접근과 수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폐쇄’는 ‘동결’보다는 진전된 개념이지만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깨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던 것처럼 핵 폐기 약속을 다시 뒤집을 경우엔 결국 재가동을 막을 수 없다. 시설 자체는 그대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합의에서는 북한이 아예 핵시설을 재가동할 수 없도록 핵 시설을 해체(dismantling)하기 전에 ‘불능화’ 조치를 핵 폐기 전 단계에 취하도록 했다.
‘불능화’는 핵시설의 핵심 부품을 제거해 기술적으로 핵 시설의 재가동을 막는다는 개념이다. 이렇게 할 경우 북한이 제거된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자체 개발할 때까지 재가동을 막을 수 있는 것. 그러나 ‘불능화’의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부품을 다시 결합할 경우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