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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만경대 몰래 방문했다가 들통
북한TV 보도…민노당에선 공개 안 해
국정원과 법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부가 부랴부랴 방북을 승인해 평양에 간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방북 첫날인 지난달 31일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만경대는 북한의 최고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민노당 대표단의 만경대 방문 사실은 민주노동당의 공식 발표에서는 빠져있던 것인데 북한의 조선중앙TV가 1일 보도하자 연합뉴스가 사진과 함께 이 기사를 받아 국내 언론사에 전달함으로써 밝혀진 것이여서 민노당이 의도적으로 이같은 사실을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연합뉴스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제휴해 북한 방송을 받아 한국 언론사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다.
북한 방송이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숨겨졌을 뻔했던 민노당의 만경대 방문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민노당이 취재기자의 동행을 불허한 것도 의도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통일부가 불허한 소위 북한의 성역까지 임의로 방문하고자 일부러 기자 동행을 거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민노당 대표단이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장면을 민노당 측은 감추고, 북한 방송은 공개한 셈이다. 조선중앙TV엔 문성현 대표와 권영길, 노회찬 의원의 모습 등이 잡혔다.
▲문성현 대표와 권영길·노회찬 의원(왼쪽 둘째부터)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방북단이 평양 도착 첫날인 지난달 31일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 촬영, 서울=연합뉴스]
민노당 대표단은 북한에서의 활동 상황을 팩시밀리 등을 통해 평양~베이징(연합뉴스)~서울(민노당 중앙당)의 복잡한 경로를 통해 하루가 지난 뒤 한국 언론에 소개하고 있다. 민노당의 평양에서의 활동 상황을 정리해 보내는 책임자는 방북단 일원으로 참가한 박용진 대변인이다.
31일 상황을 박 대변인에게서 전달받아 1일 오전 한국 언론에 소개한 정호진 부대변인은 "평양의 박 대변인에게서 받은 내용 가운데 만경대를 방문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긴지 모르겠다. 방북 전에 짠 공식 일정에는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북단이 31일 오후 평양에 도착해 고려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조선사회민주당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는 내용만 발표했었다.
정 부대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북단이 만경대 방문 사실을 빼고 활동 상황을 서울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따라 방북단이 일반 기자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활동 상황만 서울에 전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을 받고 지난달 30일 출국한 민노당 대표단은 31일 평양에 도착해 4일까지 4박5일간 북한에 머물 예정이다. 대표단은 문성현 대표를 비롯해 권영길 의원단 대표, 노회찬 의원 및 김은진, 홍승하 최고위원 박용진 대변인 등 13명으로 구성됐다. 민노당 지도부가 총 출동한 셈이다.
민노당의 방북에 대해 법무부와 국정원은 통일부에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으나 통일부가 '참고사항일 뿐'이다, '방북 허가는 통일부 장관의 재량권이다'라며 방북을 허가하고, 30일 오후 민노당이 출국 비행기 탑승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인천공항으로 방북허가증을 보냈었다.
민노당은 출발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실험으로 조성된 남북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방북한다"고 방북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민노당은 현재 전·현직 당 간부들이 소위 '일심회' 간첩 사건과 연류돼 공안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방북 전부터 주변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고, 시민단체들이 연일 당사 앞에서 '민노당 해체'를 외치며 집회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만경대 방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들의 항의는 더욱 격렬해 질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은 평양 도착 성명에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몹시 엄중한 상태이며,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서라면 한(조선)반도에서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켜 보겠다는 미국과 일본의 준동이 계속되고 있고 북측이 진행한 핵실험을 둘러싼 또 다른 긴장과 대립이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쪽에서 처럼 북에 가서도 미국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미국의 전쟁 위협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앙스를 풍기는 성명이다.
민노당 지도부의 방북은 지난 해 8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김혜경 대표는 평양에 있는 소위 애국열사릉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서명을 해 크게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만경대 방문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지난 2001년 광복절 행사 때 남측 대표단으로 방북한 일행 중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으로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서명을 남긴 사건이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쪽에서 좌우 격돌이 극심하게 일어난 바 있고 국민들의 기억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한편 민노당 대표단의 만경대 방문 사실이 알려지자 자유시민연대 류기남 공동대표는 '민노당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들어낸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비난했고,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도 "김혜경 전 대표도 그랬고 민노당의 정강으로 보아서도 이미 예상된 일 아니냐"며 "그래서 국정원 등이 민노당 방북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것인데 통일부가 무리하게 방북을 허가했다"며 민노당과 통일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konas)
정미란 기자 sori@konas.net
written by. 정미란
2006.11.02 09:5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