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선닷컴 http://www.chosun.cccom 에 있는 기사임.
“보름걸려 서울 진입, 건물 하나 없었는데…”
인천상륙작전 56주년 老해병 그때 그자리 서다
당시 美해병 5연대 소속 노만 스폰시
고향 애리조나서 주민들에 한국戰 강의 맥아더동상 철거 주장 너무 당황스러워
▲ 스무 살 청년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노만 스폰시씨가 백발의 노인이 돼 5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는 놀랍게 발전한 한국을 둘러보며“멋지다”“믿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미 해병 5연대 소속 노만 스폰시 상병은 소총을 꼭 쥐었다. 1950년 9월 15일 오후 5시30분 그가 탄 상륙정은 인천 북부해안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무섭다. 무섭다.” 20살 젊은이는 두려웠다. 4m 높이의 방파제 너머 북한군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상륙정에 탄 분대원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상륙정이 해안에 다다르자 분대원들은 일제히 2.5m 길이의 사다리를 방파제에 댔다. 파도가 사다리를 밀어 올리는 순간 그는 방파제 위로 뛰어 올랐다. “꼭 살아야한다. 살아서 서울까지 가야한다.”
56년 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노병(老兵)이 반세기 만에 다시 인천을 찾았다. 15일 오전 그는 미국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및 가족 220여명과 함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했다. 76살. 스폰시씨의 머리카락은 희어졌고 귀에 보청기를 했지만 그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비행기 폭격에 부서진 초가집 잔해가 해안까지 흩어져 있었습니다. 큰 저항 없이 그대로 인천 쪽으로 밀고 들어갔죠.”
인천에 상륙한 뒤로 그는 한국전의 중요한 고비고비를 몸으로 지켜봤다. 1950년 겨울 유엔군 2만 명과 중공군 12만 명이 맞붙은 장진호 전투에도 참가했다.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 중공군의 포위를 뚫으며 흥남 부두까지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4만여 명, 유엔군 2500여 명이 전사했다. “고지를 지키고 있던 우리 부대원 250명 가운데 저를 포함해 22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흥남 부두 철수 장면까지 볼 수 있었죠.” 당시 그는 중공군과 싸우다가 대검에 배를 찔리기도 했다.
1951년 그는 13개월의 한국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1972년 상사로 제대할 때까지, 아니 5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인천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다섯 자녀를 군인으로 키웠고 손자 8명을 해병대에 보낸 그는 몇 년 전까지도 인천상륙작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분명 자랑스러운 기억이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좀 여유로워졌죠.” 얼마 전부터 그는 고향 애리조나에서 후배 해병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에서의 경험을 강의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 한국 소식을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한국의 변화는 놀라웠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물은 하나도 없었죠.” 달라진 서울의 모습을 보고 송도 국제도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놀랍다” “멋지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인천에 상륙한 우리 부대는 시가전을 벌이며 보름 만에 서울에 들어갔습니다. 가이드 말이 이제는 그 길을 1시간 반이면 간다니….” 그는 이런 놀람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인천에 상륙하던 날 본 인천 시가지와 이미 폭파된 한강대교가 너무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말고도 그를 놀라게 한 소식이 있었다. 바로 56년 전 그를 인천에 상륙하도록 지시했던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시민단체들이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자고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놀랍고 당황스러웠죠.” 그는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대신 한 가지 부탁을 전해달라고 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은 분명 영웅입니다. 56년 전 저도 그를 믿고 상륙정에 올랐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을 수 있게 한 수많은 사람 가운데 맥아더 장군과 수많은 참전군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잊지 말아주세요.”
박수찬기자 soochan@chosun.com
입력 : 2006.09.16 01:13 11' / 수정 : 2006.09.16 01:18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