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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부와 북한의 노리개인가"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정부와 북한 싸잡아 강력 비판
상봉하는데 1인당 9억5000만원 바쳤지만 생사 확인 못한 가족 대다수
2006-09-15 19:23:35
◇ ‘이산가족 생사확인 촉구대회’에 참석한 이산가족들이 정부와 북한를 강하게 비판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 데일리안 변윤재
“정략적 음모에 휘말려도 ‘고맙다’ 절까지 하면서 북한에 농락당하는 우리가 정부와 북한의 노리개인가!”
“지금과 같은 형식의 금강산 상봉은 단호히 거부한다!”
흩어진 가족과 재회의 정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산가족들이 정부와 북한을 향해 “반인륜적 이산가족 볼모잡기를 거부하겠다”고 격한 울분과 통한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7월 19일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거부로 56년을 기다린 가족과의 만남이 무산된 이산가족들은 “제한적 금강산 상봉마저 정치적 이유로 중단을 거듭하는 북한과 퍼주고도 정당한 요구조차 하지 못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며 “지금같은 형식의 상봉은 우리가 단호히 거부할 것이며 향후 변화가 없을 시 적십자의 어떤 제안도 보이콧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위원장 이재운)’는 1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이산가족 생사확인 촉구대회’를 열고 정부와 북한을 향한 강한 질타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참석한 400여명의 이산가족 및 단체 관계자들은 “애통하고 처절한 심정”이라는 말로 애끓는 속내의 일단을 내보이며 정부의 ‘평화대화’ 노선의 실효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북한의 일방적인 행동을 비판했다.
◇ 이재운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장이 “우리가 정부와 북한의 노리개냐, 이대로 앉아서 500년을 기다리란 말인가” 강도 높은 질타와 비판을 쏟아냈다 ⓒ 데일리안 변윤재
이재운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매우 처절한 마음이다. 우리가 정부와 북한의 노리개인가”라면서 “정략적 음모에 휘말려도 ‘고맙다’ 절까지 하면서 북한에 농락당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이젠 거부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 위원장은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혈육을 만나보겠다는 절박한 소망으로 신청해도 컴퓨터 추첨을 통해 1회에 100명씩, 1년에 겨우 2회로 1490명만이 가족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면서 “북한가족 상봉신청을 한 10만여명 중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인데 10년 안에 돌아가실 분들에게 앉아서 500년을 기다리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우리는 북측이 상봉가족들의 입을 통해 “장군의 은덕에 더없이 행복하게 산다” “장군의 결단으로 곧 통일이 될 텐데 무엇이 문제냐” 등 마음껏 정치선전장으로 활용하는 역겨움도 인내하고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참아왔다”면서 “심지어 민감한 정치 사안을 배제하고 북측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이나 행동은 자제하라는 교육까지 받으며 조심스럽게 응해왔는데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 위원장은 우리 정부에 대해 “6.15 선언 이후 지금까지 매년 비료 약 30만 톤, 식량 약 50만 톤 등 총 1조4600억원 상당의 지원을 해 남한 측 상봉자 1490명을 기준하면 한 가족당 9억5000만원 가량의 착취당했다”며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생사확인조차 못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대북 비료·식량지원이 전액 이산가족상봉의 대가라는 서류상 각서는 없으나 남북협상카드에서 인도적 사업이라는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의 식량난 해소가 대가성으로 시행된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기력없는 노인들이 부모, 자식을 고향에 두고 온 불효와 통한을 풀고 오는 것조차 막는 북한이 과연 나라인가, 저들과 대화를 해야하는가”라고 정부의 ‘대화, 평화’ 기조에 불신과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있는 참석자(좌) 고령의 불편한 몸으로 거리에 나선 이산가족이 피켓을 들고 있다(우) “지금같은 금강산 상봉은 단호히 거부한다!” 구호를 외치는 참석자들(아래) ⓒ 데일리안 변윤재
이어진 격려사에서 박상준 황해도민회장은 “제 자신이 이산가족 피해 당사자인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고 운을 떼면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노력하고 있다고 하나 신뢰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102세가 되신 아버님께서 북에 두고온 아들을 만나보시겠다고 증명 서류를 준비해 신청했으나 컴퓨터 추첨으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막대한 자비를 들여 불법 브로커를 통해 3차례에 걸쳐 수소문했으나 생사를 알 수 없었다”면서 “정부가 만약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북측에 근황과 생사확인을 할 수 있는데도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량 50만톤은 북한산만한 양이고 시멘트 10만톤이면 남산의 반만한 양이 필요한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차라리 이산가족들에게 5톤 트럭에 생필품, 식량 등을 싣고 고향으로 가라면 빚을 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박 회장은 “북한과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좀더 과감하게 맞서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큰 소리는 커녕 눈치만 보니 답답하다”고 질타한 뒤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정부의 ‘유화책’이 내포한 폐해와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강할 때만이 북한에 큰 소리도 칠 수 있고 가족을 만나 도와줄 수도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정도를 밟지 않는 한 이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채택하고 “향후 북한과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적십자를 통한 어떤 제안도 보이콧하겠다”며 금강산 상봉 신청을 하지 않을 것임을 단호히 밝혔다.
아울러 ▲비료·식량지원을 대가로 1회에 100명씩 상봉하는 지금과 같은 금강산 상봉은 거부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등 근본적인 해결방안 먼저 성사 ▲금강산면회소 완공 및 남북한 이산가족 간 서신왕래·수시 자유상봉의 제도화 ▲80세 이상 고령자 상봉 우선권 부여 및 고향성묘 실현 등 4개항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금강산 상봉 철폐하라!” “서신교환 허용하라!” “생사확인 보장하라!” 구호를 외친 뒤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중앙청사까지 가두시위를 했다.
“정부 말만 믿다 여기까지 와...매우 처절한 마음이다”
지난 7월 19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로 중단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산가족들의 정부와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
이재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장은 “정부는 그저 북한에 거스르는 얘기는 하지 말고 우리가 하는대로 수긍해 달라고 요구만 하고 있다”며 “정부의 말만 믿다 언제 상봉 재개가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까지 일어나고 보니 매우 처절한 마음”이라고 무겁게 입을 뗐다.
이 위원장은 “35년동안 남북적십자 회담이 이뤄졌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뤄진 것은 없다”면서 “6.25 사변의 일으킨 주범인 북한은 방자한 수작을 부릴 뿐 근본적인 해결없이 우리를 식량·비료를 챙기는 협상카드로 이용할 뿐 인도주의적 배려는 1%도 없다”고 북한의 변화없는 고압적 태도를 맹비난했다.
그는 “정부도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해 정당한 요구를 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하면서 “인도주의적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적 도움이 대가의 성격을 갖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실제로 실향민 중에서는 ‘어차피 북핵 제조비용으로 들어가는 거, 10원 한 장도 쓰지 말라’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하며 “정치와 인도주의적 사업을 분리했다면서 실제는 다르다”고 일갈했다.
그에 따르면 2006.7.19에 장재언 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이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남북 사이에 상부상조 원칙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으로 진행해 오던 쌀과 비료제공까지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나섰으므로 북측에서도 8월에 예정된 두 차례의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물론 금후 금강산 상봉과 면회소 공사까지도 중단한다’는 서신을 보내고 면회소 공사 남측 노동자들마저 추방한 사례가 이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는 것.
이 위원장은 “지난 2001년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우리정부의 비상경계 강화조치를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1년 2개월 동안 중단시켰고, 2004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60주기 조문불허를 트집 잡아 1년 넘게 중단시킨 바 있다”면서 “이처럼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중단카드로 남측을 압박해 왔다”고 문제삼았다.
그는 “25년 전 황해도민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이 단체를 발족시킨 뒤 항상 이산가족의 날 기념행사에는 통일부 장관이 참석해서 격려와 포상을 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오늘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부르지 않았다”며 “정부와 통일부의 정책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난 데 대해 우리가 이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천명하기 위해 부르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어제 통일부에서 전화 연락이 와서 왜 부르지 않느냐며 매우 섭섭하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도 잘못했단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 전하며 “이 문제에 대한 지금 당장의 결과를 보려는 게 아니다. 다만 노력과 성의를 다하겠다는 정부의 결의, 무조건적인 원조가 아니라 지원의 목적을 알고 그를 실행하려는 능력, 그것을 원하는 것 뿐”이라고 결연히 말했다.
이 위원장은 “10년전만 해도 휴전선 근처에 가보면 철조망 주변에 허옇게 뼛가루가 널려 있었다. 살아서 못 가니 죽어서 넋이라도 가보려고 화장해서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고 해서 그런 것”이라며 “이렇게 처참한 이산가족을 위해 3일이면 알 수 있는 생사확인을 위한 협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는데 한편으로 외롭고 또 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이다”이라고 착잡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오죽하면 이산가족들이 불법인 것을 알고도 막대한 사비를 들여 브로커를 고용해 잠입을 시도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왕 대북지원이 끊어졌으니 이것을 계기로 개선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일단 통일부에서 차후에 면담일정을 잡아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고 했으니 정부의 반응을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변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