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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특별회견 발언 분석…前정부서도 작전권 환수 추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계획을 세웠다고 했으나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사진은 2003년 경기 포천시 소재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훈련장에서 실시된 미군 신속배치 여단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KBS 회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규정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서 시작해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을 거치며 세워진 전시작전권 환수 계획을 이제 실현하려고 하는데,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당시에는 찬성했다가 이제 와서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본보는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검증하기 위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각각 작전권 환수 논의의 중심에 있었던 김종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정종욱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천용택 전 국방장관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려는 계획을 세운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또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과거 한나라당 정부에서 추진한 전시작전권 환수를 이제 와서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발언한 점을 지적하며 “노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준비 등 급박한 안보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태우정부 시절 김종휘씨 “평시 작전권만 논의 대상”▼
노태우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종휘(사진) 씨는 “당시 입안한 것은 평시작전통제권 환수이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단연코 단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전 수석은 1일 “노무현 대통령이 자꾸 ‘노태우 정부 시절에 전시작전권 환수 계획을 세웠다’고 말해 당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에게 확인까지 해 봤지만 모두들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노태우 대통령의 5년 임기 내내 외교안보보좌관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냈는데 이 사안과 관련된 내용을 모를 수가 있겠느냐”며 “노무현 대통령이 정확하지 못한 보고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작전권 문제에 관한 대미 협상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1992년 9월경 청와대에서 로버트 리스카시 한미연합사령관,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평시작전권 환수에 대한 사실상 마지막 협상을 하고 자신이 직접 문안을 작성했지만 그게 전부로 전시작전권은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1992년 10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평시작전권 환수에 최종 합의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12월에 실제 환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한미동맹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북핵 문제와 미사일 위협 등에 대한 한미 간의 인식과 평가가 판이하고 전략도 다른데 어떻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영삼정부 시절 정종욱씨 “긴장해소 전제 충족 안돼”▼
“군사적 긴장 해소와 평화 정착이 이뤄지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키로 했던 것이다. 아직 그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1993∼94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정종욱(사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1일 1994년 평시작전권을 환수하며 전시작전권 환수 논의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 ‘2000년경까지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것’이라는 명백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 것은 당시의 상황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한 것으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한다는 김영삼 정부의 기본 입장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당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의 일부로 적당한 시기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키로 했던 것”이라며 “‘2000년경’이라는 시기가 구체적으로 논의됐는지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장 급한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현 남북관계에서 군사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금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이 대단히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안보의 가장 중요한 축인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시점에 전시작전권 환수가 이뤄진다면 국민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전시작전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논리나 시각이 잘못돼 있다”며 “안보를 책임지는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김대중정부 천용택씨 “자주-민족 내세울때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 국방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천용택(사진)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추진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현역 군인으로서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실무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던 천 전 장관은 현재 열린우리당 고문을 맡고 있다.
천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시절 전시작전권을 환수하자는 얘기가 있긴 했으나 소수 의견에 불과해 평시작전권만 거론됐다”며 “한미 간 불필요한 마찰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로 인한 미군의 지휘 책임 약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전시작전권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평시작전권 환수만으로도 미군이 한국의 동의 없이 작전 수행을 할 수 없는 데다 미 대통령의 동의만 있으면 한국군이 미군도 통수할 수 있는 등 사실상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싶은 미국에 전시작전권 환수를 요구하는 것은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이라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있더라도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면 미 의회가 결의를 해야 미군이 투입되기 때문에 전쟁 초기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 전시작전권을 거론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며 “자주나 민족을 내세우며 정치적 목적으로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북한은 특수전 부대와 장사정포 등 수도권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