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칼럼

제목 [정기승] 立賢無方
등록일 2013-01-17 조회수 13946

춘추시대 제(齊)나라 명재상인 안영(晏嬰)이 남긴 명언 중에 삼불상(三不詳)이라는 말이 있다(國有三不祥). 어진 인물이 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 것(有賢而不知)이 제1의 불상이고, 알고도 등용하지 않는 것(知而不用)이 제2의 불상이며, 등용하고서도 그로 하여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를 신임하지 않는 일(用而不任)이 제3의 불상이라고 하였다. 즉 인물은 찾아야하고, 찾았으면 등용해야하고, 등용했으면 그를 믿고 일과 권한을 맡겨야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에는 탕(湯)임금은 중용을 지키고 어진 이를 등용해 쓰는데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湯執中 立賢無方)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탕 임금이 현명한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즉 그 사람의 친소나 귀천 또는 출신지역이나 파당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진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어떻게 찾아서 기용하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까? 18대 대통령선거도 끝나고, 국민들의 관심이 차기정권의 인수위원회 조직과 인선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요즈음에 특히 생각해 보아야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말은 정권이 존속하는 한, 정권담당자로서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귀중한 말인 것이다. 


  “입현무방”의 예를 몇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춘추좌전(春秋左傳)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진(晉) 나라 중군(中軍)의 장수인 기해(祁奚)가 은퇴를 청하자 임금이 그에게 최적의 후임자를 추천하라고 하였다. 기해는 해호(解狐)라는 자를 추천하였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은 세상이 다 아는 원수지간이었다. 임금이 괴이하여 까닭을 묻자 기해는 “임금께서는 적임자를 추천하라 하셨습니다.” 라고 간단하게 답하였다. 즉 원수라는 사실은 공무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 뜻을 받아들인 임금이 해호를 임명하려 하였는데 해호가 급사(急死)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시 임금이 적임자를 물으니 기해는 “오(午)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오(午)는 바로 기해의 아들이었다. 누가 봐도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기해는 주저하지 않고 아들을 추천한 것이다. 설상가상이랄까 마침 이때 기해의 부관인 양설직(羊舌職)이 죽었다. 임금이 다시 기해에게 후임자를 물었더니 “양설직의 아들인 양설적(羊舌赤)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임금은 기오를 중군(中軍)의 장수로 삼고, 양설적을 부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에서 “기해거자(祁奚擧子)”라는 사자성어도 생겼지만, 이에 대해서 군자(君子)는, 기해는 능히 좋은 사람을 천거할 수 있었다. 그의 원수를 칭찬했으나 아첨한 것이 아니고, 그 아들을 내세웠으나 두둔한 것이 아니었으며, 부하의 아들을 천거했으나 편을 든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② 공화당원이었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1861-65)의 양상이 북부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던 초기(1862)에, 유능한 변호사이며 정치인이자 자기의 개인적인 적이며 민주당원 이었던 Edwin M. Stanton을, 그의 유능함을 보고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하였다. Stanton은 어떤 소송사건의 법정에서 상대측 변호사였던 링컨을 원숭이라고 모욕한 일도 있었다. Stanton은 링컨이 암살된 후, 다음 대통령때 까지도 얼마동안 계속 국방장관을 지냈다.

③ 조선시대에 들어 “입현무방”의 두드러진 예를 하나 든다면, 세종대왕께서 장영실(蔣英實)의 재주와 공적을 인정하여, 면천(免賤)하고 종3품의 벼슬까지 내린 것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장영실은 아비가 원(元)나라 사람이고 어미가 기생이어서 본인은 관노(官奴), 즉 노비였는데, 세종대왕께서는 뛰어난 그의 재주를 아끼는 한편, 세계최초로 측우기를 만들고, 조선최초로 자격루를 만드는 등 헤아릴 수 없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면천을 하고 높은 벼슬에까지 오르게 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상당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입현무방”은 정권담당자가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친소나 귀천, 출신지역, 파당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넓게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각 계층 사이의 소통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