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효전] 바이마르 헌법 10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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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4-08 | 조회수 | 14767 |
1919년에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헌법으로 소문 나 있다. 이 헌법은 제정 직후부터 동구권의 여러 헌법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헌정제도와 이론에 많은 자극과 모범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일 각 란트의 헌법을 비롯하여 동독, 이탈리아 등에도 여전히 모델로서 위력을 과시한 바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1948년의 대한민국헌법을 제정할 때에 유진오 박사는 1949년에 발간한 그의 『憲法解義』에서 외국의 입법례를 제시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독일 와이말 헌법」으로 표기하면서 도처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다. 유 박사의 영향 때문인지 제헌 헌법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정의의 원칙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생존권에 관한 규정,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할 의무 외에도 경제질서에 관하여 많은 규정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전만을 보아서는 바이마르 헌법의 어떤 조항을 어떻게 모범으로 해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며 두 조문을 함께 대조해야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있다. 더구나 교과서에서도 이처럼 자주 언급하는 바이마르 헌법의 제정배경이나 그 참모습에 대한 기술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바로 바이마르 헌법을 인용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생소하고 먼 나라의 헌법조문은 더욱 신비스럽고 실제보다 더 이상적인 헌법으로 마음속에 그려지게 마련이다.
우선 바이마르 헌법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에 군주제가 무너지고 연합국에 의해서 요구된 최초의 민주적인 헌법이라는 사실을 간단히 넘겨버려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군사적인 패배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은 물론 전국토가 황폐하게 되었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 마디로 총체적인 파국(Katastrophe)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국가 내지 강력한 군국주의를 자랑하던 독일을 패전국이란 열등국가 내지 열등민족으로 떨어지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되고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또 지금까지의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지만 여전히 군주제를 지지하는 사람과 이를 반대하는 민주주의자, 그 밖에 공산주의나 파시즘을 신봉하는 자, 기타 기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의 난무 등 독일의 정치상황이나 사회적 현실은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만든 헌법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제151조)든가 ‘노동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필요한 생활비를 지급한다’(제163조)는 규정 등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가는 국민에게 받은 것 없이는 돌려줄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표현을 한 조문일지라도 국가의 경제적·재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공허한 문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에 바이마르 헌법의 해석자들은 ‘프로그램 규정’이란 말을 들고 나와서 이러한 규정들은 강령적이며 선언적인 것이며 결코 직접 효력을 가지는 규정은 아니라고 둘러 대었다.
통치구조의 면에서 바이마르 헌법은 미국식 대통령 직선제, 영국식 의원내각제 그리고 스위스식의 직접민주제를 함께 혼합한 이른바 혼합정부형태 내지는 이원적 집정부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잦은 내각의 불신임으로 정정이 불안하고 대통령과 수상의 대립이 문제가 되었으나,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는 노인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고 자신이 권력을 한손에 장악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48조의 국가긴급권에 규정은 히틀러의 집권과 통치를 가능케 해 주는 교량 역할을 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다.
독일에서의 최초의 ‘민주주의 실험’이라고 불리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처럼 허무하게 붕괴되고, 적나라한 파시스트 국가로 치닫고, 마침내 독일의 비극, 유럽의 비극에서 세계의 비극으로 확대된 것이다.
앞으로 5년 후면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 지 꼭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정치적인 후진국 독일이 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독재로 결말을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직도 민족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빈부의 대립을 겪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100년 전의 독일이 여전히 연구와 참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그 헌법이 반면교사니 타산지석이니 하는 말이 진부하게 들리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2014.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