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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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구상진(대한불교진흥원 이사, 헌변 회장) | 등록일 | 2022-01-27 |
출처 | 조회수 | 1490 |
1. 자유의 용어와 개념
오늘날 ‘자유(自由)’, ‘liberty’ 또는 ‘freedom(독일어 Freiheit)’이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근원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양에서의 자유 용어는 (자유)자재(自在), 자연(自然), 해탈(解脫) 등과 혼용되면서 “구속이나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 등 주로 개인의 인격적 심리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근세 이후 서구의 각종 정치사상의 중심개념인 liberty는 그리스 로마의 자유민의 지위에서, freedom은 기독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제도나 권력에 관련되는데, 이것은 동양에서 잘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서구의 ‘liberty’ 또는 ‘freedom’ 개념은 1603년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1872년 나카무라 마사나오의 자유지리(自由之理) 그리고 중국의 嚴復, 梁啓超, 康有爲 등에 의하여 동양에 소개되었고, 1810년 奧平昌高의 화란어사전 등에서 일본인들이 이를 ‘자유(自由)’로 번역하였다.
서구에서는 liberty 또는 freedom에 관하여, 자연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 선험적 천부인권적 자유와 실정법상 자유, 철학적 · 자기실현으로서의 자유와 인간존재의 조건으로서의 자유, 의사의 자유와 행위의 자유, 정념의 강제로부터의 자유와 선택 가능한 경우의 필연으로부터의 자유,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 정치적 자유와 사회경제적 자유, 자유평등주의(liberal-egallitarianism) 자유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자유 그리고 공화주의(Republicanism) 자유, 국가로부터의 자유와 국가에서의 자유 등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는데, 이들 중 어떤 견해를 취하는가에 따라 자유의 의미와 자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르게 될 수 있다.
여기서는 ‘비예속상태로서의 자유’라는 공화주의적 견해에서 자유의 개념을 정의해 본다. 그렇게 볼 때, 자유란 “개인의 판단과 행동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나 아량 또는 시혜(선의)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서 독립해서 살아가는 개인의 지위 또는 상태(자주독립의 상태)”이다.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별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 보면, ① 신체 구속, 법률적 금지 등과 같이 행위를 제약하는 외부의 방해여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거하는 것 ② 지식, 기술, 의지, 합리성, 절제,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덕성, 기본능력의 부족과 같이 개인의 내부적 결여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구비하는 것 ③ 탐욕, 도벽, 도박벽, 낭비벽, 컴퓨터게임 중독, 알콜중독, 비합리적 성향, 비도덕적 습관과 같이 개인의 내부적 제약요인이 있는 경우에 이를 제거하는 것 ④ 경제적 재화, 도구, 물질적 수단, 정보의 부족과 같이 외부적 소극적 요인이 있는 경우에 이를 구비하는 것 등 개인적-사회적, 소극적-적극적 여러 요소의 충족이 자유실현을 위하여 필요하게 될 것이다.
종래 자유담론에서는 위 ①의 경우를 중시하여 외부적이며 적극적인 정치적 제약요인으로부터의 자유가 최대한일 때 개인과 사회가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지만, 그러한 소극적 자유만으로서는 ② ③ ④의 조건에는 별 문제가 없는 사람만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되는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② ③ ④의 경우에는 국가나 사회가 개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제약요인이 제거되어야만 자유가 실현될 것인데, 본인이 스스로 그 제약요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국가 사회가 모종의 지원이나 조치를 해야만 자유가 보장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①의 자유가 침해되는 중대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어디까지나 ①의 자유를 대원칙으로 하되 ② ③ ④가 구비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러한 조건도 충족시켜 간다는 취지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서구의 자유 개념에도 사회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이 있게 되는 것이다.
2. 개인적 자유
‘개인적 자유’ 용어는 전통적인 소극적 자유권적 자유를 뜻하는 말로서 새로이 제기되고 있는 적극적 경제적 자유에 대비하여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불교와 관련하여 전국가적 천부인권적 자유 개념과 자유 제약의 요인이 개인적 사유인 경우도 포함시켜서 살펴본다.
프랑스인권선언과 세계인권선언에는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고 선언되어 있고, 미국독립선언문에도 인간은 천부의 자유를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자유는 국가 사회 이전의 근원적인 것으로서, 국가 사회는 이러한 자유를 확보 증진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은 자유와 같은 세속적 고뇌 때문이 아니라 생노병사라고 하는 일체 존재의 근원적 불완전성을 문제로 삼아 출가하셨고, 마침내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해탈을 얻으신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불교에서는 세속적 실정법적 부자유뿐만 아니라, 일체 존재의 온갖 부자유가 다 과제로 되어 있다고 하겠다.
부자유의 원인, 즉 고(苦)의 원인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무명을 근본 원인으로 한 12연기를 말하고 있고, 그 해결 즉 해탈을 위하여 6바라밀 8정도 등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세상과 우주 모든 일의 원인과 해결책을 수행자 본인에게서 찾자는 것으로서, 체득하기 쉽지 않다.
좌파가 사회적 부조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자유를 개인의 책임인 것으로 보는 것은 노예도덕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개인 교화 등 종교적 교리를 비판하고 국가 사회의 제도개혁에 나서자고 선동하는 것이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하는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 현대의 정밀한 분석에 의하더라도, 부자유의 원인에는 ? 지식, 기술, 의지, 합리성, 절제,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덕성, 기본능력 등의 결여와 ? 탐욕, 도벽, 도박벽, 낭비벽, 컴퓨터게임 중독, 알콜중독, 비합리적 성향, 비도덕적 습관 등의 존재 등 개인적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이것은 개인적 인격상승 없이 제도개혁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므로,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자유는 개인적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서 사회적 자유 역시 제도를 개선하고 운영하는 것 모두 개인을 통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 헌법 개정 시에 연료도 운전도 필요없이 자동으로 이상향으로 운행하는 장치를 만든다고 선전하였지만 그러한 장치는 존재할 수 없고, 올바른 제도 개혁이나 제도 운영을 하는 데에는 이를 수행할 만한 인격을 갖춘 개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경험칙인 것이다.
3. 사회적 자유
‘사회적 자유’ 용어는 적극적 자유론자들이 새롭게 사용한 것으로서, 경제적 자유 나아가 결혼 성 등 사회영역에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불교와 관련하여 세속적 실정법적 자유 개념과 자유 제약의 요인이 외부적 사회적 사유인 경우도 포함하여 살펴본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한 한 사람의 자유는 크건 적건 그와 공존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양식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경제적 거래 뿐만 아니라 결혼과 성 등 상대방이 있기 마련인 사항에서는 왕왕 한 사람의 자유가 상대방의 부자유를 강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안에서 발생하는 자유의 문제는 한 쪽 개인만을 원인으로 하거나 기준으로 하여 처리할 수 없고, 쌍방 나아가 관련자 일반의 보편적 기준으로 제도화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의 문제를 세속법 등 사회적 합의와 분리하여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부처님과 같이 원만한 지혜와 복덕을 이룬 분이나, 기독교의 하느님과 같이 절대적 능력을 가진 분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참고로 성서의 자유는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만 하면 하느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자유롭게 해 주신다는 것에 귀착되는데, 신앙 차원이 아니고서는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의 구조와 운영을 자유가 보장되도록 하지 않고서는 자유문제는 대부분 해결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사회적 자유는 결국 이해관계자의 권익문제로 되는 것이고, 자유가 정치 사회적 중심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적 자유는 주로 정치적 규제의 혁파라는 소극적 자유의 형태로 일반화되었지만, 점차 경제적 재화, 도구, 물질적 수단, 정보 등의 부족과 같이 외부적 소극적 요인이 있는 경우에는 이것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자유의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데, 근자에는 국가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무리한 선동도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대책을 세우기만 하면 자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공산주의는 자유지상주의 체제에서 우위를 가지지 못한 무산대중 등에게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라고 선전되었지만 “이밥과 고깃국 먹는 자유”조차 해결하지 못한 것이 역사의 경험인 것이다. 자유를 보장한다는 구실로 함부로 고안한 어설픈 제도장치들이 이상향을 실현하기는 커녕 소극적 자유마저 침해하여, 해결하기 어려운 생지옥을 만들고 마는 사태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문제를 사람들과의 다수결로 정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합리성이 있지만, 인간이 근본적 으로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라는 대명제를 침해하는 사회적 자유개념이나, 인간의 숭고함에서 해법을 찾지 않는 자유공학은 유지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