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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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헌변총회 강연 (2012년 2월 20일)-김효전 교수(헌변 상임고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글쓴이 헌변 등록일 2012-03-10
출처 조회수 1598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김    효    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Ⅰ. 문제의 제기

   지난 해 9월 교육과학부는 역사교과서 개발지침에서 종래의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표현을 둘러싸고 일부 인사가 논란을 벌이는 것은 바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인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뿌리 째 뒤흔드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기에 우리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르며 왜 문제인가를 간단히 살펴본다.

Ⅱ. 민주주의

   다 알다시피 민주주의(Democracy)란 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에서 민중(demos)의 지배(kratos)에서 유래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제, 귀족제의 개념과 대립시키고 있다. 민중이 자기 자신의 지배자라 함은 민중이 정치적 권위의 원천이며, 모든 지배의 정당성이 궁극적으로는 국민에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저절로 자명한 원리가 된 것이 아니라 몇 세기에 걸친 민중의 투쟁이 승리한 결과로서 비로소 전통적인 군주주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원래 ‘항의적’인 성격을 가진 국가형태이며 군주제에 대한 반대개념이다.

1. 민주주의의 왜곡

   그러나 군주제가 사라진 오늘날 백성이 주인이라는 주권재민의 원칙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물론이려니와 공산 독재국가와 심지어는 저개발독재국가까지도 저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나머지 진부한 용어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또 ‘치자와 피치자의 자동성’(C. Schmitt)이니, ‘지도자가 없다는 것’(H. Kelsen) 등을 민주주의의 징표로서 내세우지만 지금까지 백성이 직접 나서서 통치한 예는 한 번도 없었다.
   ‘민주주의’가 하나의 심벌로서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 대통령 W. Wilson이 사용하면서부터 연합국 사이에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양차 대전은 바로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깃발을 내걸고 치른 전쟁이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 후에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는 ‘인민민주주의’, 중국에서는 ‘신민주주의’ 그 밖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들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교도민주주의’, 파키스탄의 ‘기본민주주의’를 비롯하여 저마다 민주주의에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여기에는 1972년 10월의 이른바 유신헌법에서의 ‘한국적 민주주의’도 이들과 같은 대열에 서게 되었다.

2. 자유민주주의

   이처럼 민주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가지 정신적 사조와 결합하면서 그 독자적인 특색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주의’(Liberalism)와의 결합이다. 민주주의는 당시 일관된 사상적 체계도 없고 통일적인 강령도 없었으며 19세기 이래 일부는 세계관, 일부는 국가관, 일부는 경제이론으로서 나타났다.
정치적 자유주의로서의 민주주의는 개인주의, 인격의 자유, 개인의 법치국가적보장의 승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결합은 이미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Rousseau의 인민주권론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선언의 목록화에서 민주화가 선포되었으며 19세기의 헌법 속에 용해되었다. 이에 더하여 민주주의의 국가형태는 Montesquieu의 권력분립의 원리와 결합하여 미합중국과 19세기의 여러 국가들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국가에는 개인과 여러 세력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긴장관계에 놓이게 되고 국법학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Staatslexikon).
   그밖에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도 결합하여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게 되는데 이것은 자유보다는 평등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다. 여하튼 서구의 전통적인 민주주의는 이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자신을 ‘서구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주의는 서구를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소련과 동구권을 중심으로 한 인민민주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신생 국가들이 저마다 지향하는 후진국의 민주주의라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란 말은 저마다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선전하는 나머지 이제 진부한 용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민주주의에 온갖 수식어를 붙여서 진짜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그 의미와 내용은 변질된 것이 우리가 대전 이후 지금까지 보아 온 역사적 사실이다.

Ⅲ. 대한민국 헌법의 결단

   우리들 대한국민은 제헌 이래 여러 가지의 민주주의 중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정신으로서 결단을 내렸다. 헌법 전문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하였다. 제2공화국 헌법(1960)에서 처음으로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규정되었고, 제3공화국헌법(1962)에서는 서독 기본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undordnung)를 모범으로 하여 명백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또 현행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8조 4항에서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차이에 관하여 대체로 이 두 개념은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에 있으나, 이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유력한 견해(김철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 헌법은 명명백백하게 ‘자유민주주의’를 기본가치로서 확고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인사는 이를 ‘민주주의’라는 일반적이고 불명확한 말로 바꾸어 우리의 국기(國基)를 변질 내지 왜곡하려고 시도한다. 여기에 이른바 진보 내지 좌파 인사들이 동조하고 가세하고 나서서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그냥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억지를 쓰는 사람들은 위에서 본 민주주의 개념의 역사적 발전과정이나 해체 또는 혼돈의 소용돌이를 보지 못하거나 이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그냥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기식의 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진짜 민주주의의 의미와 본질적 요소를 변질시키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근본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의 무덤을 파려는 무리들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자유를 부여할 수는 없다. 요컨대,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는 것이다’(Keine Freiheit fur die Feinde der Freiheit).

Ⅳ. 헌법실제와 헌법해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일찍부터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임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는 동시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를 여러 차례 강조해오고 있다.

1. 대법원 판결

   일찍이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가보안법은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아직도 북한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협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본다 해서 우리 헌법의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과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1990.6.8)고 판시하였다.

2. 헌법재판소 결정

   한편, 헌법재판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개념임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즉「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유주의’와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귀속되고, 국민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내용적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결합된 개념인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질서의 최고의 기본가치로 파악하고, 이러한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가치를 ‘기본질서’로 선언한 것이다」(2001.9.27).

   또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호를 그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고, 그 내용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을 의미한다」(1990.4.2; 1994.4.28)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1952년 서독에서 사회주의국가당을, 1956년에는 독일공산당을 위헌이라고 판시한 판결문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설명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설은 이를 찬성하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위 질서들에 수반되는 모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근본이념을 가지고 있다’(1998. 5. 28)고 판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통일 관련 규정들은 통일의 달성이 우리의 국민적 · 국가적 과제요 사명임을 밝힘과 동시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서 지향하는 통일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바탕을 둔 통일인 것이다’(2000. 7. 20)고 하였다.

Ⅴ. 결 론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개념이 아니며 협상의 대상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교과서의 지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헌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자유민주적인 법치국가의 초석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헌법파괴 행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가짜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배척한다. 끝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들에게는 ‘전투적 민주주의’(streitbare Demokratie) 또는 ‘방어적 민주주의’(abwehrbereite Demokratie)의 논리로 무장하여 단호하게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