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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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회 2010년 2월 8일 총회 - 배 진 영 박사 Guest Speech(來賓)
글쓴이 배진영박사 등록일 2010-02-13
출처 조회수 4828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은 자유와 창의를 창달하는 사회라야 비로소 번영한다고 믿으며, 자유와 창의를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지성인들의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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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2. 13.
수 신    변호사님께
참 조

제 목    시장가격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와 가격정책의 폐해 -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에서

배  진  영    박사


< 배 진 영 박사 Guest Speech(來賓)>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은 2010년 2월 8일(월) 오후 6시부터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아이리스 룸(2층)에서 2010년 총회 및 신년 교례회를 개최했으며

총회에서 배 진 영 박사가 <시장가격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와 가격정책의 폐해 >라는 주제로
Guest Speech(來賓) 를 하였다.
[ 배진영(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독일 Freiburg University, 경제학 박사 ]


시장가격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와 가격정책의 폐해

배 진 영 박사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 2010년 정기총회에 guest speech를 하게 된 것은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이 자리에 초대해주신 임광규 회장님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헌변(憲辯) 회원 여러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지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자유와 시장경제의 수호와 창달을 위해 많은 것을 기대하였고 그 희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균형과 형평이라는 이름으로 좌로 편향되었던 지난 10년간의 여러 정책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대와는 달리 곳곳에서 서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유와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그리고 복지정책과 국토개발정책 등 여러 정책 분야에서 이를 읽을 수 있으며, 정권 초기에 그토록 요란했던 작은 정부의 구현과 규제 완화 내지 축소 구호는 이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지난 모든 정권이 그러하였듯이 정권의 속성은 결코 작은 정부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개인의 자유와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질서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수호하고 창달하는 데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항상 정부가 커지는 것을 우려합니다.

정부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것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이 가격을 통제하고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입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투후트펠트(Tuchtfeldt, E.)는 정책은 경제질서와 조화로워야 한다면서 가격정책이야말로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정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경쟁질서는 시장가격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존경하는 헌변의 회원님들에게 시장 가격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수행하고 있으며 가격을 통제하고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가격 간여 정책들과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시장가격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격은 개인이 세우는 경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계산자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곧 선택 행위입니다. 여러 대안(代案)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교를 위해서 우리는 선택 대안 각각이 갖고 있는 물리적, 화학적 가치를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것이 저것보다 더 좋고 나쁘다는 선호의 우선순위만 부여하면 됩니다. 그 우선순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개별 대안에 관한 계산자를 필요로 합니다. 계산자의 도움으로 특정 대안을 위한 투입과 그로부터 기대되는 산출을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에서 계산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격입니다. 가격이 계산자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의 척도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시장경제를 이론적으로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위대한 경제학자인 미제스(Ludwig v. Mises)는 저명한 경제학자들조차 가격을 가치척도로 이해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시장가격은 단지 교환의 과정에서 형성된 화폐가격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재화나 서비스의 속성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의사를 반영하고 그들의 협상 결과를 나타낼 뿐입니다. 그래서 시장가격에는 과거의 인간 행위들의 결과가 녹여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교환 참여자들의 예측이 함께 투영되어 있습니다. 가격에 예측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그 가격을 잣대로 평가한 나의 행동이 잘못된 결과로 이끌 수도 있음을 함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예측은 시장가격을 참조하지 않은 개인 혼자만의 예측보다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행위는 미래 지향적입니다. 미래 지향적이지 않는 행위는 동물의 몸짓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행위는 현재 시점에서 행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불확실한 미래와 관련되어 있어서, 어떤 행위도 투기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미래를 잘 예측한다는 것은 바로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입니다. 성공을 꿈꾸며,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최선의 예측을 하여 협상에 임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예상은 시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조정되는, 즉 잘못된 예측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시장가격은 그렇게 해서 형성된 화폐 가격입니다. 그래서 시장가격이라는 계산자는 나 혼자만의 미래 예측보다 우월한 것입니다.

또 다른 위대한 시장경제 이론가인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 Hayek)는 이를 지식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이에크는 가격이야말로 개인의 의사결정을 위해 알아야 하는 지식을 이처럼 값싸게 전달해주는 것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가격에는 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식조차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자루의 연필을 만드는 데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연필을 구입하기 위하여 이들이 어떻게 협동하여 연필을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예견되는 사람들 간의 충돌과 그 협상의 과정에 대해 전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연필 가격에는 이에 관한 지식들이 모두 녹여 있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 가격만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시장의 가격을 계산자로 하여 행동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그 자체에는 전혀 나라와 사회를 배려하려는 흔적은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그러한 각자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행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 가격은 자원배분과 그 결과로서의 분배에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장이라는 시스템에 절대 복종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냉엄하고 차가운 일면을 보여줍니다만,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간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부정부패와 비리도 자원의 배분과 분배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진정으로 남을 봉사하는 것이 나에게 봉사하는 길임을 알려 줍니다. 시장 참여자는 아무리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입하여 생산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에 의해서 평가받지 못하면 낮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서 평가받는다는 것은 경쟁자에 비해 사람들을 더 많이 만족시키는 것으로 그것이 곧 사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더 없이 훌륭하고 고귀한 행위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하는 것이 기업의 일차적 소명이며,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빌 게이츠를 평가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비로운 기부 행위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내 이웃으로 만들었고 정보를 누구나 값싸게 공유하도록 한 그의 기업 활동에 있습니다.

가격의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시장에서 순전히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교환 행위에 의해서만 형성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어떤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격에 잡음을 끼게 하여 시장의 정보를 온전히 담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을 계산자로 하는 개인은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경우 고장 난 나침반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 그래서 가격이 우리가 기대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무엇보다 보장되어야 합니다. 가격 형성에 간여하는 어떠한 정책도 자유와 경쟁을 위협하는 것이고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나오는 호소입니다.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간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개별 상품에 간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 수준과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쇠고기 파동과 세계적 금융위기로 한 때 이 정권은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불쑥 50개 생필품의 가격상승을 억제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정부는 이 지시에 따라 공공요금의 동결, 생필품의 유통체계 개선, 원재료의 할당관세 인하, 수입원가 공개, 부가세 면제 추진, 시민단체로 하여금 가격 인상 업체의 감시 등의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품목들 중 상당수의 가격은 소비자물가보다 더 높게 상승하였습니다. 정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의 가격 관리 정책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는 여러 생산 공정이 관련되어 있어서 그것이 생산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 관리해야만 정부가 원하는 제품의 가격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도 우유를 충분히 먹여야 한다는 취지로, 우유 가격을 인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에서 우유가 사라졌고 우유는 귀족층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민의 삶을 위한다는 정치적인 그러나 아주 아둔한 가격 정책이 결국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복지정책과 부동산 정책 그리고 교육정책에도 이러한 현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대학교 등록금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고 여기에 100개가 넘는 대학교들이 등록금 동결에 동참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교육서비스 가격의 통제로 시장경제 질서에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시장경제질서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강렬히 비판합니다. 정당하고 올바른 비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가격이 시장경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가격 형성에 정부의 어떤 개입도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대학교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은 거의 8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18%에 비하면 우리 대학교가 재정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등록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교들이 등록금 동결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영향력이 대학 재정과 경영에 얼마나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여러 형태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학과나 대학 증설, 학생 수의 증원, 신입생 선발, 대학 지원 등 정부는 규제와 지원으로 사실 대학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등록금은 대학교육 서비스의 가격입니다. 등록금 수준에 의해 대학교가 퇴출되기도 하고 융성하기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대학교 운명의 상당 부분은 교육 당국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등록금 자율화도 중요하지만 사교육 전반에 걸친 자율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교육 자율화가 없이 마냥 등록금 자율화만을 외치는 것은 특정 집단만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제 또 다른 형태의 정부에 의한 가격 관리의 폐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물가 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자본 축적에 영향을 미쳐 국민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입니다. 그것은 통화 정책입니다. 통화정책은 금리정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해 하반기부터 금리인상 가능성을 계속 내비치었으나 아직 1년 전의금리 수준인 2.0%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재는 낮은 저금리 정책이 가지고 올 부작용을 여전히 우려만 하고 있습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리 인하로 우리의 본원통화는 급속히 증가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2006까지 매년 5% 전후였던 본원통화의 증가율이 2007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경기부양책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8년 말부터 매달 전년 동기 대비 거의 20% 전후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또 다른 통화지표인 M2 역시 2007년 이후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이것이 조만간 물가 상승 압박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물가는 통화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파생상품의 확산과 국가 간 장단기 자금의 이동 등으로 물가와 통화량 간의 실제 관계가 예전에 비해 덜 분명해진 측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는 몰라도 2년이 넘는 중장기에는 통화량의 증감이 물가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적 사실을 경제학자들과 경제 기관들은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통화량의 변동을 물가 예측의 핵심 정보로 활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통화량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물가상승률이 문제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은 민간 부문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화폐 수요, 즉 현금 보유 비중을 증대시켰기 때문입니다. 화폐의 교환가치, 즉 물가는 화폐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화폐 공급이 증가하더라도 화폐수요가 함께 증가한다면 화폐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화폐수요는 투기적인 성격이 강하여 시장에서 빨리 교정되어 화폐수요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화폐 시장에 남는 것은 통화 공급의 증대뿐이며 이것이 물가 상승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민간 부문이 현금 보유 비중을 낮추기 시작하면 조만간 물가가 움틀 거릴 것이고 이것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민간부문의 현금비중 축소 조짐이 벌써 감지되고 있습니다. 화폐의 유통속도와 통화승수 지표의 추이가 그것입니다. 이 두 지표는 돈이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화폐유통속도는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늘 0.8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2010년 1월 21일)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금융통계 자료에 의하면,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한 2008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여 2009년 1/4분기에는 0.687까지 하락하였습니다. 돈은 많이 풀렸지만 잘 돌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용 경색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경제주체들이 가장 먼저 취하는 반응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마당에 소비와 투자를 마냥 전과 같이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현금 잔고를 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던 것이 2009년 2/4분기부터 돈의 회전이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풀렸던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에 반가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민간 부문이 현금 보유 비중을 줄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으로 금융위기 때 증가한 화폐 수요가 감소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국 물가 상승에 압박을 가할 것입니다. 화폐유통속도가 조만간 금융위기 직전의 수준까지 이른다면, 경제위기 동안 크게 팽창한 통화량 증가율과 실질 경제성장률 간의 간극은 물가 상승의 우려를 현실로 바꿀 것입니다. 통화승수 역시 화폐유통속도의 지표와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개인이 현금보유 비중을 줄이기 시작하였음을 시사합니다. 금리인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금리 인상이 필요한 이유는 정책 당국에 의한 의도적인 낮은 금리가 교묘하게 경제 전반에 걸쳐 자원과 부의 배분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재정정책보다 더 고약합니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은 단순히 한 쪽 것을 뺏어서 다른 쪽에 주는 것에 따른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손실이지만, 인위적인 낮은 금리는 어떤 면에서 시장경제 자체를 파괴하는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시장경제의 핵심은 가격 기능이며, 금리는 자본시장에서 가격의 신호 기능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이 고조되는 경제위기에는 개인의 시간선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중은행의 이자율도 함께 인상되는 것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위기 치유 과정입니다.

우리는 금융위기가 왜 초래되었는지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국의 의도적인 낮은 금리는 기업가나 소비자로 하여금 미래를 낙관하게 만들어 투자와 소비의 과오(過誤)를 초래합니다. 이것은 신용팽창에 의한 물가상승과 함께 자산 가치를 부풀려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합니다. 더욱이 낮은 금리는 저축의욕을 약화시켜 자본축적의 기반을 허약하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저축은 자본축적의 기반을 마련해줌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품이 꺼지게 되면, 미래의 낙관은 갑자기 비관으로 바뀌게 되고 모든 경제주체는 현금 보유의 비중을 급속히 증가시킴에 따라 위기는 다시 재현됩니다.

거의 1년 동안 기준금리가 2%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금리 정책의 지속은 자본축적의 기반을 부실하게 하고 자산버블의 가능성을 초래하며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에 의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즉 장기적으로 경제기반을 허약하게 한다는 점을 이제 정책의 전면에 내세울 때입니다. 단기적인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축소하기 위한 저금리의 유지는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돈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일 때, 통화 당국은 이제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해야 합니다. 금리 인상을 서두를 때입니다. 병 주고 약 주는 일이 만성적으로 되풀이 돼서는 안 됩니다.

존경하는 헌변 회원님, 한국 경제는 짧은 50년 동안 자유와 시장경제를 발판으로 하여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유의 수호와 창달을 위하여 애쓰시는 여러분의 노력과 희생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년 2월 8일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 총회에서
 - 이 치 호 변호사, 회장 이 종 순 변호사, 배 진 영 박사, 김 한 응 자유시민연대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