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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리의료법인은 허용되어야 한다. -- 조선규 변호사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
글쓴이 조선규변호사 등록일 2009-05-07
출처 헌변 조회수 5517

영리의료법인은 허용되어야 한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변호사 조선규


1. 의료구조의 현실

의료영리법인을 허용하는 의료민영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영리법인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논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질적 내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행위를 돈벌이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로 요약될 듯하다.

의료행위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사회적 기본권과 직접 관계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상업주의에 물든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가 나서서 적절하게 규제해야 한다, 영리병원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비가 올라가고, 때문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층, 빈곤층이 의료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타적이고 온정적이며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주장으로 들린다.

그래서 의료행위의 공급자인 의사들은 현행 의료법 제45조, 제50조,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 제42조, 제43조, 제50조 등 치밀하게 짜여진 제도적 장치 하에 수요자들인 국민(환자)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신청하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쳐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받아가고 있다.

약자배려, 공익추구라는 사회국가 원리의 대의에 기세가 눌려 시장원리는 감히 작동될 수 없는 영역이 의료영역인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를 헌법의 기본가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료영역에서 만큼은 사회주의 제도가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 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진 의료수가를 기준으로 공단으로부터 돈을 받는 계량화된 제도 하에서, 보다 많은 급여를 받고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환자를 보거나 여러 차례 나누어 진료를 하는 등 환자 치료횟수를 늘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의사들의 치료행위가 단순 계량화할 수 없는 고도의 지식기반 노동행위이고, 20년 경력의 성실하고 숙련된 의사의 치료행위가 갓 의대를 졸업한 의사의 치료행위와 질적 수준이 동일시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의료법인의 비영리화, 건강보험 재정의 일원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등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제도들을 보면서 꼭 집어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 “의료행위”의 본질과 시장왜곡의 결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현행 제도는 “의료”라는 재화?용역을 시장에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 “공공재”인 듯한 인식을 강하게 깔고 출발한다. 공공재는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따라서 정부의 개입을 전제로 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료”라는 서비스가 소비의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주된 요소로 하는 공공재에 가까운 것일까?

공공재의 전형적 예인 “치안”이나 “국방” 서비스를 보면, 국민들의 일부를 혜택에서 배제하기도 힘들고(비배제성), 또한 일부가 혜택을 본다고 하여 나머지 사람들에게 혜택이 덜 돌아가는 것(비경합성)도 아닌 서비스이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를 조금만 곰곰이 살펴보면, 공급자인 의사와 시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특정되고 가분될 수 있는 전형적인 사적재화의 영역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의료를 공공재로 인식하거나 부지불식간에 공공적 성격을 가진 서비스로 판단해 버렸다면, 의사를 교육하는 의과대학 등록금부터 국가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것이고 국립병원에서 의료용역을 계획하고 배분하는 제도가 정비되어야 그 논리가 일관될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공공재가 아님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약자보호, 사회국가원리라는 미명 하에 얼렁뚱땅 공공재화 시켜버리고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관료집단을 개입시켜 시장을 왜곡시키는데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불행히도 불길한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의사들은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의료행위를 회피하고 성형, 피부미용 등 비급여 의료행위의 전문가가 되고자 주경야독하고 있다. 젊고 유능한 의학도들이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등 이른바 비급여 인기진료과목으로 몰리고 있다. 전통적인 의료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는 기피 진료과목이 된지 오래다.

건강보험공단은 공룡처럼 비대화되고 있고, 중복된 연구용역비와 관리운영비의 급격한 지출증대로 스스로 관료화의 길을 걷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은 이미 적자상태다.

직장인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자신의 월급에서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소득을 과소 신고하거나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면서도 건강보험의 혜택은 받고 있다.

도덕적 해이와 무임승차가 속출하고 있다.
 
이 모든 부작용의 원인이 약자배려라는 사회국가원리에 짓눌려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3. 대안의 모색

인위적인 제도나 특정개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전지전능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가 개입해서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건강보험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 애꿎은 국민혈세가 또 투입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겸허하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의료 영역을 자유 시장 원리에 맡길 것을 주장한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법인을 영리법인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언제부턴가 “영리”라는 단어에 맹목적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뜻을 음미해보면, “경영을 하여 이득을 얻는다.”라는 지극히 중립적인 의미이다. 부당한 이익이나 독점이익이 문제되는 것이지 영리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영리는 추구해야 한다.

영리법인화하면 의료비용이 비싸진다고 막연히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쟁으로 인하여 의료비용이 저렴해질 수 있다. 국내환자가 외국으로 치료하러 나가는 현상을 감소시키고, 최고의 두뇌집단인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활용하여 해외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

고용이 창출되고, 의료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다. 의료인은 능력에 비례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고 진료를 하게 된다. 의료인은 의술의 질에 의하여 평가받게 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의사는 도태될 것이다.

둘째, 무리하게 통합된 건강보험재정을 원상 복구시켜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 의하여 각인된 “돈을 안내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달콤하지만 무책임한 선동과 허구에 속지 말아야 한다.

2000년 건강보험재정이 통합되기 전, 우리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료수요자들이 모여서 직장의료보험,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 지역의료보험조합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각 조합들은 서로 경쟁을 통하여 위험을 분산하고 비용을 절약해 왔으며, 이러한 일종의 분권화 시스템으로 인하여 나름대로 합리적인 보험 제도를 운영하여 왔다.

하지만, 좌파정권은 “아픈 사람을 치료도 못 받고 죽게 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동정심을 선동의 도구로 삼아 모든 의료보험 조합의 재정을 통합시켜 버렸다. 때문에 그나마 건전하던 직장 및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마저 통합과 함께 재정적자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 제2항 “공단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통합하여 운영한다.”라는 규정을 개정하여, 재정을 합리적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나아가 민간보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민간보험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영역이다. 각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파레토 최적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셋째, 의료급여법(구 의료보호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빈곤층에 대한 의료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국립의료원, 보건소, 보건진료소 등에 대한 지원과 진료를 확충하여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의료민영화 반대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정당성의 근거가 바로 사회적 약자 배려, 빈곤층의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이다. 그들은 약자보호라는 감성적 논리와 사회국가 원리를 내세워 본질적인 시장왜곡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경시하려 한다.

그들은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감성적 논리를 독점하고자 한다. 그래서, 의료민영화를 지지하는 자들을 마치 피도 눈물도 없이 경쟁에 몰두하는 사람들로 각인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의료민영화와 사회약자보호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의료영역을 시장에 맡기고 경쟁의 순기능에 따라 발생되는 수익을 세금으로 환원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는데 사용함이 빈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실효적 해결책이 될 것이다. 정부개입 때문에 의료시장이 왜곡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책임지지 못할 좋은 말을 반복하며 도덕적 위선에 빠지는 것보다 인위적 제도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자기성찰과 실천이 공공선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