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한미동맹과 주둔군지위협정 세미나 2000.06.09

이달은 6.25 침략 50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요사이 상식을 저버린 학자연(學者然)하는 현학논리(衒學論理)가 상당히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1825년에 챨스C 컬턴이 말한 현학자(衒學者)는 자기 논리로 「잘못가고 있는 것」을 자랑삼지만, 상식인(常識人)은 그따위 없이도 「반듯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Pedantry prides herself on being wrong by rules, while common sense is contented to be right without them)고한 말이 지금 그렇게 들어맞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느 「공청회」라는 곳에 가본일이 있습니다.
그 토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교수라는 사람은 1992. 10. 28. 동두천 윤금이노파를 살인한 미군병사 등.... 미군병사들이 술을 마신 뒤 한국인에게 강도, 강간, 폭행, 살인까지 하는 일을 보면서 우리는 한미간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문제를 제기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교회에 속하는지 신부라는 사람이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의 직함으로 「우리민족이 왜 분단되었는지? 바로 미제국주의 에 의한 분단이었다. 이러한 분단은 한국정부에 전시 작전권이 없는 한미방 위조약으로 구체화되었고 SOFA에 의해 미군과 미군들에게 부여된 특권적인 위치와 특혜는 국민들에게 아직도 미제국주의의 속국임이 실감케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익산시(당시 이리)에서 당시 26세 주부가 남편을 학살당하면서 겪었던 박순애씨의 한 대목을 Common sense로 상기해 보십시다.
「앞을 쳐다보니 내복 바람에 머리는 길고 얼굴은 창백해 보이는 40대 가량의 한 남자가 비슬거리며 오솔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전주 형무소에서 갓 나오는 사람 같아 보였다. 가까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오늘 새벽 형무소 문이 열려서 막 나오는 길인데 아직 못 나온 사람도 있다고 전해주었다.... 9.28 수복 3∼4일 전부터 밤이 되면 형무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내어다가 몽둥이로 두들겨 패곤 했는데 너무 아파 부르짖는 애절한 소리에 감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몸의 피가 마를 정도였고 바로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고 했다.

불려나가 맞아 죽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고 했다.... 이런 끔찍하고 잔인한 소식을 듣게 되자 혹시 남편이 형무소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마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형무소에 들어서자 이미 광장에는 무수한 시신(屍身)이 널려 있었다. 이를 찾으러 온 가족들이 경악과 슬픔속에서 묵묵히 시체를 찾고 있었다. 큰 운동장에는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시체를 한 구씩 한 구씩 눕혀 놓았던 것 이다. 손을 뒤로 결박하여 철사나 단단한 끈으로 묶고 몽둥이로 패서 죽게 된 屍身들이어서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그래서 입고 있는 옷을 보면서 찾아가고 있었다. 아비규환. 지옥 그대로였다.

나도 남편 을 찾으려고 수백 구의 屍身을 찾아다녔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거기 에 없었다. 없기를 바라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일 죽었다면 屍身이라도 찾아서 양지바른 곳에 고이 잠들게 해야지』하고 마음 먹었지만 떨리고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재차 현장을 돌면서 행여나 빠지지 않았을까 하여 찾아보았다. 그러나 남편의 屍身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행여나 어디엔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야산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자수하면 무조건 용서한다는 공산당들의 감언이설을 믿고 3개월간을 숨어서 고생하다가 9.28 수복전날 가족들의 권유로 자수하러 갔다가 간악한 저들의 마수에 이곳으로 끌려와 참혹하게 맞아 죽은 시체들 이었다.

신사복 차림 그대로 몽둥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여섯 구의 시체였다. 근처에 부러진 몽둥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차라리 총살을 했다면 이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고 죽었을텐데 하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짐승도 아닌 사람으로서 이런 끔찍한 만행을 할 수 있을까? 벌레도 죽이지 못했던 나 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전주에서만 일어난 일이었습니까.
대전에서도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함흥에서도 청진에서도 어느 도시에서도 어느 마을에서도 일제히 조직적으로 일어났던 일이었음을 우리민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보는 견해는 바로 자기 인격의 고백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People seem not to see that their opinion of the world is also a confession of character. Emerson 1860)」

이런 학자나 이런 신부나 또 「공청회」의 이름을 빌려 이런 말을 시키는 주최자가 상당한 지식인으로 행세하는게 요사이 일부 현상이기는 합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공산주의의 선동선전영향에서 발견하고 우리의 휴전 직후시기 무렵에 「공산주의자들이 제공하는 값지고 숙명적(宿命的)인 이익(利益)이 있다. 그들은 죄악감(罪惡感)을 제거해준다.(The communists offers one precious fatal boon, they take away the sense of sin. M Kempton 1955)」고 깊이 관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개하는 짓이 다시는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명심하는 역사의 교훈을 간직하고 양식인(良識人) 의 용기를 갖도록 올바른 메세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자 합니다.

6.25 침략을 상기(想起)하고자하는 이유와 한미방위조약이 얼마나 값진 체 제인가를 재확인(再確認)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0. 06. 09

憲法을 생각하는 辯護士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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