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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인터뷰(2010.2.25)-李鍾舜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새 회장
김용삼편집장 
 
李鍾舜
⊙ 황해도 평산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 공군 법무관, 서울형사지법·민사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역임.


지난 2월 8일 이종순(李鍾舜) 변호사가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하 ‘헌변’으로 표기)의 새 회장에 취임했다. 김대중(金大中) 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4월 22일 출범한 헌변은 그동안 정기승(鄭起勝) 전 대법관, 임광규(林炚圭) 변호사가 모임을 이끌어 왔다.
 
  헌변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1997년 시사잡지 <한국논단>이 주최한 대선 후보 사상검증 토론회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김대중 대통령 측에게 고소를 당하자 오제도(吳制道), 정기승 변호사를 중심으로 무료 변호인단이 꾸려졌는데, 이것이 훗날 헌변의 모태가 됐다.
 
  이종순 회장은 헌변 설립 초기부터 운영위원을 맡아오다가 올해 초 대학 동문이자 2대 헌변 회장인 임광규 변호사가 건강이 악화되어 회장직 수행이 어려워지자 3대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 이 변호사는 “나이 70이 넘어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법조계의 대선배이신 정기승 명예회장과 임광규 회장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회장직을 맡게 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대 회장이신 정기승 회장과 2대 임광규 회장이 지난 12년간 헌변을 이끌어 오면서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 창달을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두 분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헌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회장은 “헌변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라고 말했다.
 
  “헌변 출범 초기엔 정말 절박했습니다. 좌파정권이 태동하면서 이 나라가 공산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원로 중심으로 118명의 법조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했죠. 현재는 200여 명의 법조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헌변 출범 직후부터 사회는 헌변의 변호사들이 예상한 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파탄 내려던 제주 4·3사건을 의거로 미화시키려는 움직임, 주한미군을 괴롭혀서 철군을 유도하려는 운동, 노동조합의 기업가 공격, 사학을 비리집단으로 몰아붙이기,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대한 집요한 공격 등이 연이어 벌어졌다.
 
 
 
다양한 활동 전개
 
  헌변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여러 애국단체와 연대하여 국가보안법 사수, 4·3사건 가담자에 대한 보상 반대, 노동 3법 개악(改惡) 반대, 사학을 탈취하려는 운동권 시민단체에 영합하는 여당을 규탄하는 국회 앞에서의 데모, 용산 일대에서 주한미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We love America’ 가두방송 및 전단 살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 북핵 반대운동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행위)으로 고발, 사학법 관련 소송 등을 진행하며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헌변은 또 언론기관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계좌 추적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 정보 공개 신청(200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신문고시(告示)로 신문산업에 개입·간섭하려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의 소지가 크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자유언론 수호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소추위원으로 김기춘 소추위원장과 함께 정기승, 임광규, 이진우 변호사 등 헌변 소속 변호사들이 상당수 참여했고, 2006년에는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사법독립과 헌법을 훼손했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헌변 활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자 “헌법의 기본이념과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활동목표로 이 회장은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변호사들조차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는 조항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감상적(感傷的) 통일 지상주의자들이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사상을 확산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헌법의 기본이념과 가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 때로는 법정에서, 때로는 여론전을 벌이는 등 싸워왔어요.”
 
  그러나 이 회장은 소수 변호사의 힘만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요즘 언론에서는 좌파 시민단체나 운동권에서 벌이는 사소한 퍼포먼스는 크게 보도하면서도 헌변에서 내는 성명서나 헌변의 입장은 거의 보도해 주지 않아요. 우리 목소리는 이제 점점 힘이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젊고 사회활동 능력이 뛰어난 젊은 변호사들과 힘을 합쳐 우리 목소리가 사회 구석구석에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할 참입니다.”
 
 
 
시국사건에 대한 이상한 판결들
 
  이 회장은 지금까지 해 온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은 것과 사학관련법 개악 반대로 전교조와 소송하여 승소한 것을 꼽았다. 사학법 개정운동 당시 헌변의 자매단체인 자유시민연대가 신문광고를 내는 과정에서 전교조를 인민위원회로 표기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헌변이 변론을 맡았다.
 
  “당시 전교조의 설립취지문이 한겨레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변호인단이 찾아내 증거자료로 제출했는데, 취지문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거의 비슷했어요. 궁지에 몰린 전교조에서는 ‘설립취지문이 언론에 잘못 나간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러나 이 내용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는 ‘전교조는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면서 자유시민연대 손을 들어줬고, 전교조로부터 소송비까지 받아냈어요.”
 
  이 회장은 최근 들어 법조계 일각에서 〈PD수첩〉의 광우병 방송에 대한 무죄 판결, 전교조 교사가 지리산 빨치산에 대한 추모제에 초등학교 학생을 인솔하여 참관시킨 사실에 대한 무죄 판결, 강기갑 의원의 공무집행방해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 등 사회의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상식을 가진 법관의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조사를 시작한 우리법연구회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대법원장은 마땅히 사조직에 대한 해체 명령을 내려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우리법연구회 초대회장인 박 모 대법관은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항명파동에서 ‘4·19와 6월 항쟁은 규정과 절차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혁명을 하자는 것으로 대법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 법관으로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현 회장인 오 모 판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어도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형사사건을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과 아닌 사건으로 양분하여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사건은 무죄가 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과 반(反)정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우리법연구회의 명칭에 대해서도 의심이 갑니다. 우리 법을 연구한다니,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는 집단인지 잘 모르겠어요.”
 
 
 
양심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 개념
 
  이 회장은 “일본 사법부 내에서도 1970년대에 청년법률가협회(청법회)라는 좌경 법관들의 모임이 있어 공안, 노동 사건에서 잇달아 무죄 판결을 내리고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제기되자 일본의 최고재판소 수장(首長)은 ‘판사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는 인정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법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고 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청법회 소속 판사를 탈락시켰어요. 그러자 진보 성향 언론들이 판사 재임용 탈락에 대해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으나 원칙을 밀고 나감으로써 청법회를 자연스럽게 해산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도 일본의 사례처럼 문제가 된 판사들을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시키면 우리법연구회는 자연스럽게 해체될 것입니다.”
 
  이 회장은 사법부가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에 대해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일련의 시국사건에서 법원이 일반 국민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확산되자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을 주장하면서 국민감정이 폭발했어요. 헌법이 정한 사법권 독립이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것이지 법관이 독단적 소신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결해도 좋다는 면죄부(免罪符)를 준 것이 아닙니다. 법관의 양심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하며, 법관 개개인의 편향적 이념을 법관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도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양심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 개념으로서 법관의 재판은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일부 판사들의 경우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봐요.”
 
  이 회장은 또 “행정부는 대민(對民)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됐으나 사법부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방패 뒤에서 안주하다 보니 일부 판사들의 독선이 도를 지나쳐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에 참여하다 보면 변호사인 저도 일부 판사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 때가 있어요. 대한변협에서 법관을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사법부도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민주화를 해야 합니다.”
 
 
 
20대 판사 때 판결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끼쳐
 
  이 회장은 사법부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현행 법관 임용제도를 고쳐 적어도 10년 정도 변호사나 검사로 경력을 쌓은 40세 이상 인물을 대상으로 법관을 임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법관이 되면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엉뚱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시를 합격한 30대 전후의 미혼 판사들이 이혼재판을 담당한다면 합리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저도 과거를 회상해 보면 20대 판사 시절 얼마나 위험한 판결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나아가 법조 경력자를 판사로 임명할 경우 판사 임기가 끝난 후 다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임용제도 개선은 법률을 바꿀 필요도 없이 대법원장의 의지만 있으면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제대로 된 나라 같으면 헌변 같은 단체가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명천지에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면 구태의연하게 들릴지 몰라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지금도 엄연히 친북좌파들이 존재합니다. 친북좌파를 가르는 기준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찬성 여부입니다. 저는 나이 들어 변호사 생활을 접고 온누리교회 장로로서 북한에 선교사로 가서 북한의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꿈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북한 땅에는 들어갈 수 없어 제 여생을 우리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달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데 헌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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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22, 07:30 ] 조회수 : 2242
출처 :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