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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나무 영웅' 현신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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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나무 영웅' 현신규

  • 한삼희 논설위원
  • 입력 : 2012.02.24 23:04 | 수정 : 2012.02.26 10:51

    한삼희 논설위원

    2003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
    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14명을 선정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에 참여한 김근배 교수(
    전북대 과학학과)는 "최무선 장영실 허준 등 고려·조선시대 일곱 분과 우장춘 이원철 이호왕 등 근·현대 일곱 분을 선정했는데 전엔 몰랐던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현신규 박사였다. 그런데 뒤져보니 업적 자료가 제일 풍부하더라는 것이다. 지난 21일 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현 박사는 한국인 1호 임학 박사로 세계적 육종(育種) 연구 업적들을 남겼다. 더 중요한 것은 헐벗었던 국토를 울창하게 바꿔놓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대표 업적 세 가지는 리기테다소나무 교배, 이태리포플러 보급, 은수원사시나무 개발이다. 식민 지배와 6·25전쟁으로 한국 산은 다 민둥산이 돼버렸다. 어떻게든 빨리 산에 나무를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현 박사가 육종하고 보급한 나무는 20년을 키우면 20~30m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들이다. 이런 나무 수억 그루가 1950~80년대에 심어졌다.

    리기테다소나무는
    수원 서울대 농대 임학과 교수로 있던 현 박사가 1951~53년 미국 연수 시절 리기다소나무 암꽃에 테다소나무의 꽃가루를 교배해 수백개 종자를 만든 후 국내로 들여와 개량한 나무다. 리기다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강하지만 생장 속도가 느리고 재질이 좋지 않다. 테다소나무는 정반대 성질을 가졌다. 리기테다소나무는 부모 나무에서 각각 좋은 점만 물려받았다.

    현 박사는 1954~62년
    이탈리아에서 이태리포플러 330종을 들여와 우리 풍토에 맞는 것을 골라 보급했다. 장기영씨가 사장으로 있던 한국일보가 1964년부터 '포플러 1억그루 심기 운동'을 펴 뒷받침했다. 현 박사가 1986년 74세로 타계할 때까지 2억9000만그루가 심어졌다고 한다.

    이태리포플러는 하천가에서 주로 자란다. 현 박사는 산에서도 자라는 포플러 수종(樹種) 개발에 애를 썼다. 그 결과가 은백양에 수원사시나무를 교잡한 잡종 포플러인 은수원사시나무다. 은수원사시는 빨리 자라는 데다 짙은 그늘을 만들고 오염에 견디는 힘이 강해 가로수로 많이 보급됐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치산(治山) 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울 때 리기테다소나무·이태리포플러·은수원사시는 모두 10대 권장 수종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지프차도 사줄 정도로 현 박사를 챙겼다. 박 대통령은 1978년 은수원사시나무 개발 공로로 현 박사에게 5·16민족상을 수여하면서 나무 이름을 현 박사 성(姓)을 따 부르도록 했다. 그 후로 은수원사시는 '현(玄)사시나무'가 됐다.

    산림청은 2001년 식목일에 현신규 박사, 박정희 대통령, 김이만 나무할아버지, 조림왕 임종국의 네 명을 광릉 국립수목원에 마련한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경준 명예교수는 "현 박사님은 세미나에선 항상 앞자리에 앉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제자의 발표 때는 꼬박꼬박 노트에 적으면서 질문했던 분"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과학자 영웅(英雄)'이 있었던가. 현 박사처럼 탁월한 학문 성과를 남겼고, 후학들 존경을 받고, 국가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라면 국가 영웅으로 기억돼야 한다. 현 박사는 평안도 태생이지만 거의 평생을 수원에서 활동하고 살았다. 지자체가 '나무 영웅'의 발자취를 어딘가에 절대 지워지지 않게 새겨넣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2012-02-28, 19:45 ] 조회수 : 1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