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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韓·日 강제병합 100年, 내일을 말하다]①김종필·나카소네 인터뷰(조선닷컴)
김민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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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단독] [韓·日 강제병합 100年, 내일을 말하다]

 

 ①김종필·나카소네 인터뷰

 

  • 입력 : 2010.08.28 03:10 / 수정 : 2010.08.28 11:52

"앞으로 한반도 통일에서 일본보다는 중국이 문제"
"日·中·韓도 유럽연합처럼아시아연방 목표로 나가자"

이후 인터뷰 게재 순서
②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 오카 모토유키 스미토모 회장
③일본대학 한국 유학생 · 한국대학 일본 유학생
④하영선 서울대 교수 ·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조선일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 내일을 말한다'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를 시작으로 양국의 경제인과 학자 및 유학생들이 말하는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를 30일, 31일, 9월 1일자 신문에 4회에 걸쳐 실을 예정입니다.


김종필 前 총리

'독도'는 건드릴 필요 없어 日도 현상유지에 만족해야

일본은 남의 것 가져다 자기 것 만드는 소질있어 우린 너무 완고해 뒤처져

재작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종필 전 총리는 '불편한 몸' 임에도 조선일보와 마이니치신문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앞으로 한반도 통일문제에 있어서 일본보다 중국이 문제"라고 했다. 김 전 총리는 25일 청구동 자택에서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일본은 속에서 그렇게 내키지 않더라도 협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중국은 국익이 상치된다고 해서 방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한국의 대통령이 해야할 것은 그런 양 옆의 나라들이 (통일을) 반대 안하는 나라들로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고 했다.

김종필 前 총리. 1926년 충남 부여 출생. 1948년 육사 8기로 임관, 중령 때인 1961년 5·16 주역으로 참여했다. 초대 중앙정보부장, 1971~75년 국무총리를 지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창당했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 총재,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DJP 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100년 전 조선왕조는 망하고,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로 가면서 서로 갈등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당시 상황을 진단해 주시지요.

"진단 간단해요. 일본사람들은 남의 것 갖다가 자기 것을 만드는 기막힌 소질들이 있어. 명치유신같은 것을 해서 타고 넘어갈 수 있는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있어, 그래서 해결하고 나갔어요. 우리는 외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완고성이 있어요. 그게 외부세력과 타협할 수 있는 길을 막았지. 우리는 일본보다 근 100년 늦게 알았지. 살아나가는 길을."

―한국민이 '잊어선 안될 교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36년간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한국민이 당한 박해와 고통은 필설로 표현할 수조차 없어요. 주권을 수호하고 국가경영을 하는 것은 세계질서 속에서 미래를 통찰하는 지도자의 혜안, 국민통합을 통한 국력의 증강이 필수예요."

―북한 급변사태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피크가 되지 않을까하는 견해가 있는데요.

"난 모두가 우려할 정도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봐요. 으르렁거리지만 그 정도지. 다만 중국이 북한편을 너무 들어, 그게 걱정이여."

―중국의 G2 부상 국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동북아 질서에 있어서 중국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중요 상수가 되었고,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적극 고려해야할 요소가 되었어요. 이제 한일관계는 한·일·중, 3각구도 속에서 파악해야해요. 3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자주 만나서 끌고가야 해. 미국은 사이드에서 도움을 주고…."

―다음 달 44년 만의 북한 당 대표자대회에서 권력세습의 단초가 열릴 것이라고들 합니다.

"북한이 어느 날 어떻게 할 수 없이 무너질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아. 그러나 가까운 시기안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나는 보지 않아. 아직 멀었어요. 후계자를 어떻게 정하든 미국도 사실 건드리기 쉽지않아요."

―일본하고는 독도문제를 꺼내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리는데요.

"독도문제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요.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한국이 그냥 현상유지 하도록 '미해결이 해결'이라고 그렇게 일본이 이해하면 세상 편할 겁니다."

―1962년 오히라 외상과의 협상 때 '독도폭파론'을 얘기했다는 말도 있던데.

"오히라 외상과 합의가 다 끝나고 커피 한 잔 더 달라고해서 마시며 얘기하는데, 그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해야겠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발끈했어. 그래서 이걸 당신 땅이라고 우기면 국제재판소에서 일본 거라고 판결나도 다 폭파해버리고 없애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네 손에 들어가게는 안하겠다고 했어. 그래서 폭파소리가 나온 겁니다."

―일본과 한국의 미래를 밝은 쪽으로 보십니까.

"일본 속담에 '내일 이야기를 하면 도깨비가 웃는다'는 말이 있어. 그러나 일본의 내일이나 한국의 내일을 얘기하면 희망이 화제가 되지. 일본은 정부 부채가 있다고 하지만 그거 다 누르고 일어날 수 있는 힘도 지혜도 의지도 있는 나라야. 우리도 이제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도 방법도 알고 있고…."

―한국 문화재의 반환문제가 한일 간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것 참 어려운 문제여. 이집트나 그리스 등이 프랑스, 영국이 가져간 거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지 않아요.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하게 돌려받고, 돌려주기는 어렵다고 봐요."


나카소네 前日총리

日, 과거반성 염두에 두고 겸허한 자세로 외교해야

재일한국인 지방참정권 10년 이상 거주자에는 부여해도 좋다고 생각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여름 한 철을 보내는 별장은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 시간여 거리인 나가노(長野)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 있다. 김현희씨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묵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지난 23일 마이니치(每日)신문 취재팀과 함께 그의 별장을 찾았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918년 5월생으로 만 92세가 넘었지만 비교적 건강해보였다. 인터뷰 때 보청기를 끼고 듣는 정도였다. 그는 한 시간여 진행된 조선·마이니치 합동 인터뷰에서 과거보다는 미래로 시선을 돌리기를 줄곧 주문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대해서도 '제한적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나카소네 前 日총리 . 일본이 최전성기를 달리던 1980년대 만 5년간(1982년 11월~1987년 11월) 총리를 지냈다. 워낙 막강해‘대통령급 총리’로 불렸다. 1918년 군마(群馬)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941년 도쿄대 법대를 졸업했다. 28세에 국회의원 첫 당선, 40세 입각 등 자민당의 요직은 모두 거쳤다. 한·일 우호관계 증진에 노력했으나 총리 시절인 1985년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참배, 한국과 중국의 큰 반발을 샀다. 일본 보수정치의 최고 원로다. 중의원 20선을 지낸 뒤 2003년 은퇴했다. /마이니치 신문 제공

―간 나오토 담화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적절한 시기에 나온 적절한 내용의 담화였다고 생각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시기를 맞아, 반성과 유감의 뜻을 솔직하게 표명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우호·협력을 심화시켜나가자는 생각도 표명한 것이다."

―담화가 나오기 전 간 총리로부터 연락이 있었나.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해왔다. '당신 생각에 따라 겸허한 반성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장래의 100년을 향해 제휴를 강화해가자는 내용이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앞으로의 양국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세계적 조류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등, 국가연합 관계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한, 일·중·한이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아시아 연방 또는 아시아국가기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일관계에서 대중예술이나 스포츠, 사람과 사람의 교류는 계속 확대되고 있으나 정치가 가장 뒤처진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의 정치가들에게는 주의·주장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쌍방이 국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가는 사교외교에 그치는 성격이 강하다."

―일본 정치인들은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과거의 행위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항상 머릿속에 두고 외교관계를 맺어 나아가야 한다. 겸허함이 일본의 총리에게 없으면 외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총리라는 자리는 일본의 과거를 등에 지고 있는 자리다."

―독도문제는 어떻게 푸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당분간 건드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 서로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한국의 실효지배가 계속되면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 아니냐는 반박이 일본 내에 있다.

"일본은 일본측의 주권 아래 있다고 반복해서 주장해가지 않겠느냐. 일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상대측(한국)도 이해하고, 상대측도 자기 주권 아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이쪽(일본)도 이해해야 한다."

―민주당 정권 들어 재일한국인 등 영주외국인들에 대해 지방참정권을 부여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일정한 제약과 조건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전(戰前)부터 일본에 살아온 한국인, 중국인, 브라질인 등 장기간에 걸쳐, 적어도 10년 이상 일본에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한국 방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천황도 황태자 시절 방한 의사가 있었다. 황태자비의 몸이 좋지 않아 이뤄지지 못했다. 이것은 현안으로서 취급될 수 있으나 양국 관계를 볼 때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로 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과 한국이 황해(서해)와 일본해(동해)에서 군사훈련을 벌였다. 군사훈련이라는 것은 강한 의지가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북한 같은 국가의 성격을 생각하면, 유약한 방법으로 대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기억에 남는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은.

"김종필, 전두환, 박태준씨 등이 기억에 남는다. 김대중씨나 김영삼씨도 친구였지만 김종필씨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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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30, 10:18 ] 조회수 : 2379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