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확대기사 축소

우리의 역사가 안전하다고 여기십니까? (임광규 변호사)
 
다음은 광야의소리의 홈페이지 http://www.aware.co.kr 에 있는 임광규 변

호사(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부회장)의  글

"우리의 역사가 안전하다고 여기십니까?"임. 
----------------------------------------------------
임광규 변호사의 아래의 글에 다음과 같이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

 2007. 6. 에 한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제주도 해안지역에 대한민국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국가계획에 반대운동을 하기로 결의한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입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겠다면서,『동북아 군비증강과 군사적 긴장의 완충지대가 되어야할 평화의 섬 제주도에 대규모의 군사기지를 신설하므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누가 어떤 근거와 이치로 제주도가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영토를 완충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내 나라 해역을 남의 나라나 적대세력이 함부로 항행하도록 방치하겠다는 말인데, 그런 말을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는가요.
 
 대한민국 해군측에서 제주도 해안 12만평에 함정 20여척 계류 규모로 해군기지를 만들되 친환경적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운용하겠다는 등 계획을 자세히 내놓고 있는데, 이를 여기서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의 기술발전으로 대륙붕 암초가 영토가 되고 그 주변이 영해로 보존되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제주도 남서쪽 200km 위치의 한국영토 수중암초에 자기들 이름까지 함부로 부치고, 한국영토 이어도에 탐사활동을 거의 매년 벌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주도를 이른바『평화의 섬』으로 내세우고 해군기지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어도에서 실력방위가 필요하게 될 때에, 현장에 도착하려면, 중국 함선은 샹하이로부터 18시간, 일본 함선은 사세호로부터 21시간이 걸리고, 우리의 해군의 함정은 가장 가까운 진해 해군기지로부터 10노트로 직진하여도 25시간 걸립니다. 
 
 우리의 자유, 궁극적으로 신앙의 자유, 행복과 번영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허울 좋은『평화의 섬』꿈에서 깨어 나십시오.
 
 자유를 지키는 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역사를 통털어 읽어보세요. 호전적이거나 강대한 국가를 상대로 그런『평화』를 선언해놓고, 자유와 신앙을 지키겠다고 한, 그런 얼빠진 나라나 민족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Aware 편집위원 
  서울대 법대 졸업, 서울 지방검찰청 검사.
  한국필라화학주식회사 대표이사, 현 변호사
 
  ----------------------------------------------------

아래는 광야의소리 http://www.aware.co.kr 에 있는 임광규 변호사의 글입니다.
---------------------------------

우리의 역사가 안전하다고 여기십니까? 
 
 
 - 자유를 지키지 못한 백성들의 운명 - 
임광규 베네딕도 (신관동 본당) 
 
 
 
 한국 사람들이 요사이 터키와 그 인근 지역을 구경하고 다닙니다. 성직자가 동행하여 크리스천 유적지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터키 서부해안의 에페소는 바오로 성인이 서기 50년경 2년 이상 머물면서 전교하시던 곳입니다. 이 곳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첫 번째 서신을 썼고, 61년에는 로마에서 갇혀있는 바오로 성인이 에페소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역사로부터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상한 서신을 보내어 잊지 못하던 곳입니다.
 
 사도요한 성인도 이 곳에서 교회를 이끌었으며 요한묵시록에서도 에페소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거처하시던 집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서기 431년에 유명한 에페소 3차 공의회가 개최된 곳입니다.
 
 이곳과 그 주변의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 지역은 초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크리스천이 융성하던 곳입니다. 이곳은 그리스인, 프리지아인, 카파도키아인, 갈라티아인, 아르메니아인, 유태인을 포함한 사람들이 비교적 신앙의 자유속에 평화롭게 살던 곳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30년에 로마로부터 콘스탄티노플(현재의 터키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으나,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지방의 신앙심 깊은 크리스천들을 백성으로 가까이 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침략자에게 정복되어 신앙의 자유를 잃고 개종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에페소를 위시한 전체 아나톨리아에서 번성하던 크리스천들이 수세기동안에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역사를 자세히 보면, 아나톨리아의 크리스천들이 용감하게 지켰더라면 크리스천인 비잔틴제국이 유목민족들의 이슬람에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서기 1063년에는『피를 마시는 자』의 별명을 가진 셀죽 터키의 알프 아르슬란 추장이 크리스천들을 대거 학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 1071년에 이슬람 유목민인 셀죽 터키의 부대가 비잔틴군을 격파한 이래, 수시로 침공하여 수천명식 크리스천들을 살해하거나 포획하여 노예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실상 셀죽 터키의 군대가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셀죽군이 수시로 자기들보다 훨씬 많은 인구와 부와 기술을 가진 수백만이나 되는 크리스천들의 일부씩을 습격하고 잡아가고 약탈하고 추방하는 동안, 크리스천들이 쫓기고 있었다고 역사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후 4백년 가량에 걸처, 국토방위를 위한 투쟁을 하는 대신, 평화와 생존을 찾아 헤메던 아나톨리아 크리스천들은 결국 피해 다니고 몰리게 되었고, 그들을 보호하던 비잔틴제국도 투쟁력 약한 백성들을 거느리고 계속 약화되다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이 함락되었습니다.
 
 6세기 중반 동로마제국(비잔틴)의 유스티니안 치세에 건설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 성당인 소피아성당은 900여년간의 아름답고 경건한 크리스천 성사를 잃어버리고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 아나톨리아 크리스천들은 소멸로 가는 운명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아나톨리아(현재의 터기)의 동쪽에 있는 아르메니아에는 아라라트산이 있는데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내려온 곳이라는 전설의 산입니다.
 아르메니아는 서기 300년경 군주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므로써 국가로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세계 최초의 나라입니다.
 
 서기 1064년에『피를 마시는 자』알프 아르슬란이 거느란 셀죽 터키의 부대가 아르메니아 수도 아니(현재의 아르파케이)를 공격하였을 때에, 셀죽의 역사 기록자는 그곳에 500개의 성당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프 아르슬란의 부대는 수도 아니에 입성하여 크리스천 주민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약탈과 방화로 모든 성당과 수도원들을 폐허로 되게 하였습니다. 학살되지 않은 크리스천 주민 30,000명은 모조리 잡아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하도 죽은 사람이 많아서 침략군 병사들이 수도 아니에 들어섰을때 시체들 때문에 성내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시체들을 딛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정복의 소식이 박다드의 칼리프(모슬렘의 수장) 궁성에 도달하자 성전의 승리(聖戰의 勝利)를 축하하였고, 칼리프는 알프 아르슬란을 찬양하고 축복하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기세 등등해진 알프 아르슬란 등의 셀죽 터키 부대들은 가파도키아의 성 바실성당을 위시한 성당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1070년에 대천사의 성당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호나에를 함락하여 대천사의 성당을 마구간으로 삼았습니다.
 
  16세기 이래 아르메니아 크리스천들은 오토만 터키족에게 차별당하고, 종교박해를 당하고, 과도한 세금을 지고 살면서, 총칼로 살해를 당하다가, 1894.과 1896.에는 한꺼번에 수천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차 대전중 1915. 4월에 아르메니아 크리스천들은 터키군에 의하여 시리아, 메소포타미아로 강제 이송하는 과정에서 60만 내지 150만이 살해되고 굶어죽게 되는 20세기 최초의 인종학살을 당하였습니다.
 
 안티오크(현재의 시리아지방)는 베드로 사도가 주교로 교회를 세운 곳이고,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활약하던 곳입니다. 안티오크 근처에서 마론 성인을 따르는 크리스천들이 5세기 초에 레바논산으로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기 635년과 637년 사이에 다마스커스 일대가 아랍 침략자에게 함락되자 크리스천들이 레바논산으로 피해 들어갔습니다.
 1017년에 드루즈파 무슬렘이 레바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크리스천들을 탄압하여, 말을 타지 못하게 하고, 검은 옷을 입도록 강제명령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 무덤 성당을 파괴하였습니다. 
 
 1099년 십자군이 레바논에 도착하자, 마로니트 크리스천들이 십자군을 도와주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십자군과 함께 무슬림 군대와 싸우던 마로니트 크리스천 군인들이 50,000명이나 전사하였습니다.
 13세기 후반부터 맘룩 이슬람의 보복이 시작되어 성당들을 불태우고 마을마다 약탈당했습니다. 
 
 1307년에는 맘룩군 5만명이 크리스천을 포함한 케스루안 군대 1만명을 전멸시키고, 남녀 어린이 가리지 않고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습니다. 1367년에 가브리엘 총대주교를 트리폴리로 끌고 가서 불태워 살해하였습니다.
 
 서기 750년 무렵 스페인을 지키지 못한 크리스천들은 처음에 무슬림 지배자에 굴종하는 것이 스페인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무슬림지역 세계에서 장사하고 무역하는데 이롭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이슬람이나 이슬람 예언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에울레기우스 성인이 850년에 코르도바의 40명 크리스천 순교자들을 칭송하였더니, 이슬람당국은 알라신을 섬기고 알라의 법을 따르는 이슬람에게 처형당한 자를 순교자로 칭찬했다는 이유로 에울레기우스 성인을 처형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스페인 크리스천들의 수세기에 걸친 처절한 투쟁끝에 스페인 각처의 이슬람들이 밀려나가게 되었고, 스페인 지역내 카스틸 여왕 이사벨라와 아라곤 왕 페르디난드의 지휘를 받는 가톨릭 교도들의 군대가 10년간의 전투끝에 무슬림의 마지막 거점 그라나다를 포위하여 항복을 받은 것이 1492. 1. 2.입니다. 스페인 지역을 정복하고 크리스천을 탄압하던 무슬림은 750년만에야 겨우 추방되었던 것입니다.
 그사이 무슬림이 문서까지 태워버려 크리스천들이 겪었던 박해와 신앙훼손에 관하여는 기록상 공백으로 된 기간이 많습니다.
 
 이슬람의 오토만 군대는 1571년 10월 7일 주일(主日)에, 222척의 군선(軍船)과 56척의 쾌속군선을 위시한 수많은 선박에 13,000명의 수병과 34,000명의 육전대를 싣고 레판토로부터 그리스 서해안으로 진출하여 로마쪽을 향하여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대적한 크리스천 함대는 베네치아공화국부대, 비오6세의 교황령부대, 스페인부대, 제노바부대, 사보이공국부대 등으로 이루어진 206척의 군선, 6척의 함포선박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돈후앙이 지휘하는 12,920명의 수병과 28,000명의 전투병이 함선에 승선하여 싸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역사의 분수령이 된 레판토 해전입니다.
 
 이곳에서 크리스천 병사들이 성모님께 기구하면서 싸웠다고 합니다. 13,00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이슬람 해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하였기 때문에, 로마를 지킬 수 있었고, 그리스도교 문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 특히 신앙의 자유를 지키느라고 피를 흘려온 역사는 너무 처절합니다.
 그러나 그 후손이 하느님을 자유롭게 찾고, 성모께 마음껏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백년 전, 천여년 전에 자유를 지키지 못한 지역에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후손 크리스천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년 전에 침략당하고 유린당한 크리스천들의 본거지 아니톨리아(현재의 터키)에서는 인구 7,000만명 중 크리스천은 1%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2007. 4. 18.에 말라티아시 중심가의 성서출판소 직원 3명을 밤중에 손과 발을 묶은채 목을 찔러 암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서출판사 직원이 터키 사람들을 크리스천으로 개종시키려 한다는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터키군에 의한 아르메니아 크리스천의 대량 강제이송 중에 대량 사망사태를 놓고 국제사회가 학살이라고 규탄하자, 터키정부는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논박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에서는 2007. 9.에 그 일주일 후 대통령선거에 참여할 마로니트 가톨릭신자들인 국회의원 안토안 가엠을 위시한 9명을 암살해 버렸습니다. 마로니트 가톨릭인 비블로스의 베카라 라이 주교는 이슬람 테러단체 헤즈블라에 반대하면 이렇게 암살당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라이 주교는 레바논이 사회해체를 겪고 국민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락에서는 2007. 5.에 칼데아 천주교의 성심수녀원에, 수녀 2분의 출타 중,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침입하여 가구를 약탈하였는데, 이 정도는 사람을 다치지 않은 것이니 다행입니다. 크리스천을 몰아내겠다고 이슬람 무장그룹이 공언하는 가운데, 2007. 3. 26.에는 이락 칼데아 천주교회의 키르쿡 수녀원에서 수녀 2분이 수녀원에 침입한 괴한에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바그다드의 도라 지구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크리스천들을 협박하면서, 크리스천 부인들에게 베일을 쓰라, 목에 십자가 걸지 말라고 명하고, 피신한 크리스천 가족재산을 몰수해도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락은 예수님 승천하신지 얼마 안 되는 1세기 당시에 복음을 받아들인 곳입니다. 2천년의 신앙전통을 이어 오는 곳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는 때때로 크리스천 누이나 딸들이 이슬람 성전의 전사(聖戰의 戰士)에게 강제로 시집가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비무슬림이라는 이유로 1년에 몇만 달러를 바치라는 부담하기 어려운 이스람 극단주의자의 명령을 받기도 합니다.
 
 2007. 6.에 북부이락의 성당에서 나오는 간니 신부와 3명의 부제가 암살당하였습니다. 바그다드의 S. 와르두니 보좌주교는 교황께서만 위로의 전보를 보내셨으며 서방세계가 방관하고만 있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어느 이슬람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무슬림 대중이 거리로 나와 항의할 것이고, 이슬람 존중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얼마 전 풍자 희극을 가지고 일어났던 일을 보라. 그런 반면에, 여기에 크리스천이 죽어가고, 납치되어 가고, 이슬람 개종을 강요받고, 보호받기 위해 돈을 내고, 보복을 피하려고 딸을 바치고, 도피하고, 일생의 직업을 버리는데도, 크리스천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와르두니 주교가 비판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파이살라바드의 요셉 카우츠 주교가 가톨릭과 무슬림 사이 관계개선 노력을 했다고 무슬림 과격분자들로부터 2006. 12.부터 여러 차례 살해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1억 5천만 인구중에 가톨릭은 1%인 150만명 밖에 안됩니다. 5명의 크리스천이 모하메드에 대한 불경죄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 1명은 11살입니다. 
 
 파키스탄 북서변방 차르사다 마을의 500명 크리스천들은‘5월 15일까지 교회를 폐쇄하고 개종하라 아니면 폭탄의 목표다’라는 위협을 받고나서 2007년 5월 중에 파키스탄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2007. 9. 21.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신의 이름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생명 멸시의 용서받지 못할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규탄하였던 것은 이런 사태를 직시하고 계신 까닭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947년부터 진행되어온 북한 전체주의자들에 의한 크리스천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들에 대한 연행, 투옥, 학살, 납치, 교회파괴는 너무나 방대하여 아직까지 그 사실을 정확히 집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까운 중국은 공산체제로 된 후, 최근에 개방과 외부교류를 한다면서도, 하북성 용니안교구의 한 딩샨주교가 로마 가톨릭을 지킨다는 오로지 한가지 죄목으로 통산 35년간이나 형무소에 복역하게 하다가 끝내 2007. 9.에 갑자기 사망하게 하였습니다.
 
 공산 베트남도 역시 개혁과 외부교류를 한다면서, 2007. 3. 30.에 60세의 구엔 반 리 신부에게 8년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구엔 반 리 신부는 지금까지 10년 이상 옥중에 있어왔는데 그의 죄는 베트남 국회의원 선거투표 거절, 반정부 문서배포, 해외 민주주의 활동가들과의 통신이라고 합니다.
 
 반크리스천 종교나 반크리스천 이데오로기로 무장한 세력에 대하여, 신앙의 자유가 있는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박해와 살해와 성당허물기와 크리스천 신앙의 금지가 닥쳐오게 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2007. 6. 에 한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제주도 해안지역에 대한민국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국가계획에 반대운동을 하기로 결의한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입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겠다면서,『동북아 군비증강과 군사적 긴장의 완충지대가 되어야할 평화의 섬 제주도에 대규모의 군사기지를 신설하므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누가 어떤 근거와 이치로 제주도가 완충지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영토를 완충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내 나라 해역을 남의 나라나 적대세력이 함부로 항행하도록 방치하겠다는 말인데, 그런 말을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는가요.
 
 대한민국 해군측에서 제주도 해안 12만평에 함정 20여척 계류 규모로 해군기지를 만들되 친환경적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운용하겠다는 등 계획을 자세히 내놓고 있는데, 이를 여기서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의 기술발전으로 대륙붕 암초가 영토가 되고 그 주변이 영해로 보존되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제주도 남서쪽 200km 위치의 한국영토 수중암초에 자기들 이름까지 함부로 부치고, 한국영토 이어도에 탐사활동을 거의 매년 벌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주도를 이른바『평화의 섬』으로 내세우고 해군기지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어도에서 실력방위가 필요하게 될 때에, 현장에 도착하려면, 중국 함선은 샹하이로부터 18시간, 일본 함선은 사세호로부터 21시간이 걸리고, 우리의 해군의 함정은 가장 가까운 진해 해군기지로부터 10노트로 직진하여도 25시간 걸립니다. 
 
 우리의 자유, 궁극적으로 신앙의 자유, 행복과 번영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허울 좋은『평화의 섬』꿈에서 깨어 나십시오.
 
 자유를 지키는 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역사를 통털어 읽어보세요. 호전적이거나 강대한 국가를 상대로 그런『평화』를 선언해놓고, 자유와 신앙을 지키겠다고 한, 그런 얼빠진 나라나 민족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Aware 편집위원 
  서울대 법대 졸업, 서울 지방검찰청 검사.
  한국필라화학주식회사 대표이사, 현 변호사
  
[ 2008-10-22, 22:15 ] 조회수 : 4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