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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북한 인민은 무엇을 꿈 꿀까 (중앙일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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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력시간 : 2007-10-10 오전 5:29:08


[도올고함(孤喊)] 북한 인민은 무엇을 꿈 꿀까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언덕에 풀빛 짙은데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울먹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별루년년첨녹파(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의 눈물 보태는 것을


남포 영남리로부터 서해갑문에 이르는 7km의 방조제를 배경으로. 국립박물관 김홍남 관장 촬영.

당나라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에 비유되는 이 절세의 절구(絶句)는 뭇남녀의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건만 제4행에 이르면 신운(神韻)이 감돈다 할 것이다. 천년에 이르도록 사랑받고 있는 이 시의 작자, 고려 인종 때의 문신 정지상(鄭知常, ?~1135)은 서경(西京:현 평양) 사람으로 묘청의 난에 가담했다가 김부식의 토벌군에 의하여 개경에서 참수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혁명시도의 좌절이야말로 조선 5천년 역사의 가장 애석한 사건이라고 통분을 토로하였다. 국제적 혼란의 호기에 북벌의 대업을 포기한 것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속좁은 유생들의 말폐에 지나지 않는다고 개탄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바른 뜻을 새기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동일한 개탄의 심정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3일 밤 인민문화궁전에서, 12시 넘도록 거나하게 취하며 고담준론을 즐겼던 작가동맹위원장 안동춘과 도올. 그는 멋쟁이였고 말은 선어와 같았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 촬영.

그런데 바로 이 정지상의 시 속에, 남포로 뻗쳐 있는 평양 대동강 나루터의 정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이 남포에 서해갑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4일 아침 우리는 평양을 떠나 남포로 갔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통전부 참사가 빨리 올라오라고 호통을 친다. 사실 나는 새벽 6시 반부터 일어나 마지막 짐을 꾸리면서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나오라는 시간에 정확하게 나왔다. 결코 늦지 않았다(7시 58분 승차). 버스간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의 도올을 야단치는 사람도 다 있네.”

 남포로 가는 길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거대한 길이었다. 왕복 10차선으로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평양시내를 통과하는데 연변의 사람들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 사진을 찍으려니까 참사가 막는다. 오히려 나는 그와 대화나 나누기로 했다.


평양과 남포 간 왕복 10차선으로 곧게 뚫린 고속도로. 재미있는 것은 우리 차가 중앙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양에서 남포사이로 모든 차량이 통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평상시도 거의 운행 차량이 없을 것 같다.

― 이 길 이름이 무엇입니까?

 “거저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지요.”

 ― 언제 만들었습니까?

 “얼마 안됐습네다. 5년 전 완공됐는데 그때가 정말 어려울 때였지요. 배도 고팠고 물자도 부족할 때 청년들이 산을 까부수고 자갈을 날라다 만들었지요. 거저 2년도 안 넘기고 완성했습네다. 그래서 이 길을 ‘청년영웅고속도로’라고 합네다.”

 북한사회가 기아에 허덕일 때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는 것이 참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난관을 극복해가는 그러한 존재방식이 경이로웠다.

 “나도 이 현장에 있었습네다. 감회가 새롭지요. 장군께서 결심하시면 우리는 한다, 장군께서 이런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런 충성심과 사명감, 그리고 이런 뱃심으로 우리는 뭉친다 이겁니다. 이 길에는 청년들의 눈물이 깔려 있습니다. 그때 청년들은 어깨에 마전 메고 힘이 부치면,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대야 어서가자! 장군님께 가는 길이 늦어진다!’ 공화국에는 농촌에도 청년이 꽉 차 있습니다. 농촌도 희망이 있다는 거지요.”

 ― 도대체 선군(先軍)정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군사를 앞세워서 사회주의 건설 전체를 해나가는 영도방식입네다. 노동자계급 중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조직화된 것이 군이며 군이야말로 약육강식의 현실적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군사는 국사 중에서 가장 선차적인 문제이며 또 실리적 문제라는 것이죠. 군대가 있어야 제 나라, 제 인민을 바르게 지킬 것 아닙니까? 길에 보시면 ‘조국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라는 구호가 있을 겁니다. 군은 싸움만 하는 게 아니고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합니다. 지금 가 보실 서해갑문도 군이 건설한 것입니다.”

 서해갑문은 대동강하구 남포 영남리와 은율군 송관리를 연결하는 8㎞에 이르는 방조제와 갑문이다. 우리 버스는 피도까지 뻗쳐 있는 7㎞의 방조제를 달렸다. 4차선 도로가 나있고 옆으로는 철도가 부설되어 있었다. 서해갑문 대기념비에 도착하자 우리는 제방의 대역사(役事)를 알리는 비디오를 보았다. 한강과는 달리 대동강은 평양까지 해수가 밀려 들어와 강물을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활용하기에 부적합했던 것이다. 공사 규모가 너무도 방대했고,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 이 지역을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술을 개발하여 역사를 진행해 나간 고심 찬 과정을 잘 보여주는 비디오였다. 마지막으로 제방이 연결되고 참여한 모든 인민들의 눈물과 함성이 터지는 그 순간, 옆에 계시던 조정래 선생이 핑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조정래 선생이 눈물 흘리시는 것을 보니깐, 덩달아 눈물이 나왔다. 조 선생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길거리에서도 내가 김일성동상을 찍으니까 위를 찍지 말고 밑엘 찍으라고 하신다. 그 밑에는 몇 송이 꽃이 놓여 있었다.

 “우리가 체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꽃송이에 담긴 인민의 순결한 마음 그 자체야 왜곡할 건덕지가 없지요.”

 3일 아리랑을 관람하고 뒤늦게 인민문화궁전에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주최하는 답례만찬이 열렸다. 내 ‘탁번호’는 16이었는데 우리측 답례만찬이었기 때문에 한 탁자마다 많은 북한인사가 착석했다. 내 탁자에는 김책공대의 IT부문 학장님 한 분, 조평통의 사람들, 그리고 내 곁에는 안동춘(安東春) 작가동맹위원장이 앉았다. 안위원장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의 인물이었다. 그는 남측 술을 매우 정중하게 음미했다. 그는 고창 복분자 술이 좋다고 하면서 한 잔을 들이켰다. 문배주를 거쳐 안동소주로 옮아가며 계속 잔을 들이켰다.

 안 위원장은 나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나를 내가 소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행히 옆에 특별수행원 최연소자인 경남대 김근식 교수가 동석하여 추임새를 넣었다.

 ― 난 희랍의 고전철학, 인도철학과 불교철학, 중국의 고전철학 등 모든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동양과 서양사상이 머릿속에 다 들어있겠구만. 그 장단점을 비교해서 요약할 수 있소?”

 ― 비교는 안 해요. 동양은 동양대로, 서양은 서양대로 좋으니까, 그냥 양쪽 다 깊게 파지.

 “그 중에서도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철학이 뭐요? 누가 제일 좋아?”

 ― 닥치는 대로 다 공부하고 주석을 내니까 특별히 한 사람 내세우긴 곤란하지. 그래도 기본은 있는데 말하면 위원장 동지가 싫어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보소.”

 ― 노자(老子)!

 “역시 내가 기대했던 대로구만. 당신 체취가 공맹의 도덕주의를 좋아할 리 없고. 노자래야 대해(大海)처럼 망망(茫茫)하지.”

 ― 노자는 아나키스틱해서 주체사상과 잘 안 맞을 텐데.

 “어허! 주체란 인간중심주의일 뿐이야. 노자 같은 큰 틀도 알아야지. 불교도 했소?”

 ― 금강경을 주석했지. 해인사 8만대장경판과 산스크리트판본을 대조하면서 엄밀한 주석을 냈지.

 “노자와 불교는 통하지 않는가? 금강경을 주석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해탈의 자격이 있어! 그런데 해탈을 하지 않고 문자세계 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더 즐기고 있는 것 같군. 당신의 무명두루마기는 일품이야! 우리민족의 역사가 느껴진단 말이야.”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한 구절 한 구절, 취한 듯하면서도 인간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예리하게 파악하는 선어(禪語)와도 같았다. 그와의 담론을 여기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의 사람들이 자유로운 사고 그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는 것이다. 내가 목도한 북한의 인민들은 난관을 극복해나갈 저력이 있었고, 지식인들은 정신의 비상(飛翔)을 갈망하고 있었다.



도올 김용옥 기자

[ 2007-10-10, 13:15 ] 조회수 : 4281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