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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고함(孤喊)]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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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고함(孤喊)] 성자립 김일성대학 총장에 도발적인 질문을 하다


2007-10-8 (월) 8:46 | 추천(0)




김일성종합대학 성자립 총장(左)의 사진은 대화가 이루어진 당일에는 찍을 수 없었다. 검색대에서 주머니 속의 사진기를 뺏겼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그 다음날(3일) 노무현 대통령의 인민문화궁전 만찬 때 찍은 것이다. 다행히도 성 총장이 참석했다. 촬영은 정세현 민화협 의장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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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고함(孤喊)




나는 평양이 초행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북한엘 자주 왕래한 것으로 알지만 나에게는 격 있는 초청이 아니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삶의 원칙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요번에는 워낙 중요한 역사적 길목의 현장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조건 없이 따라갔다.

예비간담회 때부터 내가 통일부에 요청했던 것은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평양시내를 자유롭게 걸어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북한인민들의 평범한 삶의 실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제안은 북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렇다면 좀 구체적인 대상을 만나게 해달라, 예를 들면 김일성대학의 젊은 교수와 사상논쟁이라도 할 기회를 달라! 그래야 내가 남한의 동포들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전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나의 요청도 모두 거절당했다. 그냥 공식 스케줄만 따라다니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내가 처음 본 북한 사회! 참으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다원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인간성의 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종교를 포함한 모든 도그마와 투쟁해 왔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개성시내를 통과할 때, 이미 나는 번민에 사로잡혔다. 내 눈에 비친 모든 인민들의 모습이 완벽하게 연출된 동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곱게 차린 옷을 입고 발맞춰 사뿐싸뿐, 웃는 얼굴을 하고 두 손으로 책을 받쳐든 채 읽으며 걸어간다. 과연 이런 모습이 우리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연변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겠는가? 태양의 빛깔마저 연출해내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결코 북한 사회를 부정적으로 쳐다보려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시골길의 흙냄새로 이랑 파인 촌부의 모습이라도 자랑스럽게 내보일 줄 아는 진정한 주체적 자신감을 목도하고 싶었을 뿐이다.

첫날 저녁 나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베푼 목란관 만찬에 참석했다. 좀 삼엄한 검색을 거쳐 7번 테이블에 착석했다. 우리 테이블에는 두 분의 북측 인사가 같이했지만 나는 그분들에 관한 일체 사전정보가 없었다. 용케도 내 자리는 바로 북측 인사 옆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분께 말을 걸게 되었다.

-어디서 뭐 하시는 분입니까?

다짜고짜 파고드는 내 첫 질문을 가소롭게 여기는 듯, 내가 누군지도 모르느냐는 듯이 날 쳐다보더니 말문을 연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성자립입니다."

이게 도대체 웬 떡인가? 공식일정 외에 아무런 대화의 기회가 있을 수 없다는 체념에 빠져 있던 나로서는 순간 호기심과 함께 지적 욕구가 솟구쳤다.

-뭘 전공하셨습니까?

"경제학을 공부했소."

-사회주의 경제학만 하셨습니까?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학도 합니다."

-프리드만도 공부했습니까?

"케인즈, 프리드만의 흐름이야 다 기초가 아닙니까?"

-외국서 공부하셨습니까?

"난 국내에서만 공부했습니다. 한데 열심히 질문하는 당신은 뭘 공부했소?"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철학도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뭔 철학을 공부했소?"

-동.서양의 고전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을 아시면 너무 엘리티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실 것 같습니다만.

"우린 엘리티즘을 거부하지 않아요. 단지 모든 지적 추구가 사회적 현실을 주체적으로 개조하는 목적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도 포이에르바하, 칼 마르크스를 열심히 읽었어요."

-주체철학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주체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르크시즘은 사회발전의 일반적 합법성을 유물론적 변증법에 의하여 규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도무지 자연과 사회의 지배자, 개조자로서의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밝힐 수 없습니다. 묻겠는데 사회발전의 동력이 무엇입니까?"

-마르크스의 견지에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겠지요.

"잘 아는구만. 그 모순을 운동 계기로 삼아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해결치 못한단 말이오. 바로 그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한 것이 주체철학이오."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유물론은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 있어서 그 선차성을 물질에 부여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수동적이 되고 말아요. 주체철학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하는 관점과 입장을 밝혔지요."

-물질에 대하여 인간 의식의 주동성을 강조한다면 주체철학은 유심철학이나 관념론이 되고 마는 것 아닙니까?

"허허! 주체철학은 유물론을 부정하지 않아요! 포용합니다! 인간의 의식자체가 물질로부터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 가운데서 가장 발전한 사람이 덜 발전된 주위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해 나간다는 것이에요.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위대한 사상무기를 근로인민대중에게 안겨준 것이죠."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민의 주체성을 강조한다면, 근로대중 개인의 주체적 창발성도 인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왜 그 주체가 대중의 집단적 주체가 되어야 하며, 왜 꼭 당의 지배를 받아야만 합니까?

"당신이 철학을 한다고 말장난을 하지 마시오. 조국을 위한 철학을 해야할 것 아니오?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인정하시오?"

-혼자 살 순 없다는 얘기겠죠.

"인간은 자연의 횡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의 힘으로 살아왔소. 단결과 협력은 인간의 본질적 존재방식이란 말이오. 그 협력을 조직하고 이끄는 주체가 당이란 말입니다. 당이 없으면 사회적 인간도 존재하지 않소."

-그러나 당의 리더십의 정당성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수령이 계시지 않소!"

-수령의 리더십의 정당성은 누가 체크합니까?

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

"이 사람 개똥철학 하는 사람 아닌가? 당신은 사이비야!"

-당신이 날 사이비라고 규정한다면 나 또한 당신을 사이비로 규정할 수 있는 논리가 천 개, 만 개 준비되어 있소.

"도대체 당신이 누구요? 이름 뭐요?"

-남조선 사상가 도올 김용옥이외다.

이 순간, 그의 표정은 확 변했다. 그는 분명하게 도올 김용옥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와 나는 동갑인데 아마 나를 자기보다 새카맣게 어린 학도로만 생각한 듯했다.

"당신이 도올 선생이란 말이오? 그럼 내 말은 죄다 알아듣겠구만. 수령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국민대중의 의사를 체현하는 존재란 말이오. 동유럽 사회주의가 멸망한 것은 바로 당만 있고 최고영도자인 수령이 없었기 때문이오. 그래서 인민대중이 당을 이반했소. 우리 주체사상은 개인의 개성적 자유와 창의성을 배척하지 않소. 그래서 오늘까지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이오. 당의 관료화는 당의 죽음이오."

-오늘 목란관에 오는데 내가 좀 늦게 나왔다가 날 안내하는 통전부 사람이 다시 늦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협박조로 핏대를 올립디다. 도무지 인민에게 복무하려는 자세가 부족해요.

"특정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마시오."

-남측의 생각 있는 지성인들은 60, 70년대까지만 해도 북측의 당과 인민이 창조적 결합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유럽이 무너진 후로 북측의 당은 관료화되어 인민의 진정한 주체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 같은 사상가가 주체철학을 남측의 대중에게 설득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입니다.

"악선전이지만 일리가 있는 견해라 생각하오. 우리도 반성해야겠지요. 도올 선생! 좀 자주 놀러오시오."

-김일성대학에 한 학기 강좌를 하게 해주시오.

"고려해 봅시다. 나도 남쪽에 가서 김 선생과 같이 주체철학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알아들을까요?"

-인기만점일 것입니다. 이렇게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도올 김용옥 기자




[ 2007-10-10, 12:59 ] 조회수 : 4425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