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확대기사 축소

[도올고함(孤喊)]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한 사회 그 최고선의 목적은 무엇일까 ?
중앙일보   
 다음은 중앙일보 http://www.joins.com 에 있는 글임.

----------------------------------------------------
기사 입력시간 : 2007-10-06 오전 4:15:54


[도올고함(孤喊)]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한 사회 그 최고선의 목적은 무엇일까 ?

3일 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안숙선 명창과 함께. 그들은 아리랑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고 부른다. 서장, 아리랑민족, 선군아리랑, 행복의 아리랑, 통일아리랑, 강성부흥아리랑의 6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자극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배경은 카드섹션. 15만 명이 같이 참관했다. 사진은 동행한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찍었다.


둘째 날, 3일 저녁 대부분의 특별수행원들은 지쳐 있었다. 안숙선 명창은 떠날 때부터 감기 기운이 심했는데 빡빡한 일정으로 몸살이 심해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게다가 재수 없게도 비는 죽죽 내리고 있었다.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는데 기대한 것처럼 감동적인 음식은 아니었다. 과연 서울 을지면옥의 냉면보다 옥류관 냉면을 더 맛있는 음식이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을 일시에 대접해야 하는 서빙 방식의 한계도 있겠지만 조미(調味)에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정세현 의장이 목이 칼칼하다면서 식초를 많이 치는 바람에 나도 흉내를 냈다가 잇몸이 다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식초를 치는 것도 법도가 있다. 면을 먼저 젓가락으로 꺼내 올려 면에다 직접 식초를 부은 다음, 다시 주전자에 담긴 국물을 부어 먹어야 한다. 나는 실수를 자인하고 한 그릇을 다시 시켜 먹어 보았으나 기본 맛의 느낌은 대차가 없었다.

맛있는 것은 냉면이 아니라 '에스키모'였다. 에스키모란 '얼음보숭이'를 보다 컨템퍼러리하게 고친 이름이다. 에스키모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외래어이지만 쓸 수 있단다. 그것은 아이스크림의 북한 통용어이다.

옥류관 냉면을 먹은 후에 우리는 바로 보통강호텔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요번 여행에서 가장 활달하게 말을 많이 한 문정인 교수가 갑자기 을밀대(乙密臺)라도 한번 들러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냈다. 통전부의 담당관리는 예정에 없는 일정은 소화하기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여러 사람이 재청을 하자 가주겠다고 은혜를 베풀었다. 안 명창은 호텔로 돌아가 쉬어야 한다고 안절부절못했는데, 결국 호텔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팀의 차도 우리 버스를 따라왔다. 을밀대에서 바라본 평양시내는 비구름에 깔려 음산했다. 난 걱정을 했다. 비 오는데 무리하게 아리랑공연을 강행했다가 공연자가 미끄러지는 불상사라도 나면 어쩌나!

을밀대를 들른 덕분에 우리는 쉴 시간이 없었다. 바로 만수대창작사(화가들의 작업실)로 직행했고, 또 3대혁명전시관 중공업관을 참관했다.

저녁 7시반쯤, 여의도처럼 대동강을 양안에 끼고 있는 능라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5.1경기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우선 경기장의 규모에 놀랐고 주변 난간에서 최후 일순간까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 학생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입장 통로에 비치는 카드섹션의 모습이 너무도 현란했고 순간적으로 귀를 때리는 막대한 출연진의 제창 함성이 뼛속까지 울려퍼졌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전율! 8시쯤 대망의 '아리랑'은 막이 올랐다.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말한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폴리테이아'인데, 그것은 스파르타를 모델 중의 하나로 삼은,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구현하기 위하여 엄격히 통제된 정체(政體)를 말한다. 인간의 출생부터 우생학적 고려를 거쳐 집체적으로 교육되는데,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실은 사유재산의 부정을 위해 가족까지도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상국가에는 '엄마' '아버지'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북한 사회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가 처음 쓴 말인데 그것은 우(ou)라는 부정사와 토포스(topos)가 합쳐진 희랍어로서 "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사실 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어려운 정체를 가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아리랑에 출연하는 5만여 명의 동작이 변검(變)의 탈처럼 순식간에 변하여 일초일촌의 오차도 있을 수 없다. 거대한 경기장을 안방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교예사들의 아슬아슬 곡예는 간담을 서늘케 하지만 그 절제 있는 동작의 미학은 찬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쇼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 유토피아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이다. 이러한 집체적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교육을 받고 의식화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과목은 용맹스러운 음악과 집체적인 체조였다.

"보지 않으면 몰라. 좌우지간 보고 말해야겠구먼." 민노당 천영세 의원의 소감이다. 해석은 자유다. 남한 사람들의 해석을 북한 사람들이 강요할 수는 없다. 단지 우선 보아야 하고, 우선 정확히 그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성과의 조목도 매우 구체적이다. 전일한 목적을 위해 집체적으로 통합된 사회! 과연 그 최고선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불변의 고정적 목적일 수는 없다. 변증법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기대는 이러하다. 집체적으로 통합된 에너지를 과연 그들은 '경제강국'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은 물질적으로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안내한 조평통의 여성 동지가 말한다 : "잘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이 목표입네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탐욕이 배제된 지성(nous)이 실현되는 나라였다.

도올 김용옥 기자


[ 2007-10-10, 12:49 ] 조회수 : 4519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