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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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대한민국을 위한 구국전선에 나서야
이승환
 (사립학교법)대한민국을 위한 구국전선에 구국전선에 나서야




1. 사립학교 법이 개정되었다.


줄기세포 진위논란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정부여당의 주 도 면밀한 계획하에 전격적으로 사립학교법이 날치기 통과되었다. 한국의 좌파세력들은 을유년의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자축의 술잔을 높이 들고 마지막으로 남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다짐하면서 새해를 기약하였을 것이다.
이 나라의 수구좌파세력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소위 ‘4대 개혁입법’의 추진을 선포하였다.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대폭수정, 언론법의 개정, 과거사진상규명법의 제정 그리고 사립학교법의 개정이 그것이다.

집권세력은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폐지에 가까운 개정만을 남겨두었을 뿐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여 대한민국을 영구적으로 사회주의, 그것도 역사의 쓰레기 같은 반인류적 범죄집단인 김일성, 김정일 세력에 단호한 거부의 선을 긋지 못하는 친북수구좌파의 지배하에 두는 그들의 역사적 소명의 9부 능선을 정복한 셈이다.

2. 개정사립학교법의 본질
개정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운영과 관련하여 초․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학교운영위원회, 대학의 경우에는 대학평의원회가 학교법인 이사의 1/4이상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여 온 좌파세력은 이를 소위 ‘개방형이사제’라고 칭하면서,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교원과 학생(학부모)가 주체적으로 학교운영에 참가하는 민주적 운영방식이라고 허위선전을 계속하여 왔고,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국민들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대표자를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이 크게 잘못 된 것인가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국가보안법과는 달리 개정사립학교법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은 개정사립학교법속에 은익된 수구좌파세력의 깊은 의도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역사적 해악을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헌법적 가치에 관한 쟁점을 국민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목을 매달고 있는 수구좌파세력들도 차마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한 정면돌파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김정일 반역세력에게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백지 위임하는 것에 다름없거나 그럴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법의 개정이 초래할 반역사적 헌법파괴적 결과에 관하여는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여기는 국민들도 그 심각성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수구좌파세력이 그들의 기도를 관철시킬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수법이 ‘부패’의 애드벌륜이다.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정체를 남이 알까봐 전전긍긍하고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본질을 남이 알아주지 못해서 괴로워한다는 말이 있다.
좌파세력은 언제나 ‘부패’의 문제를 침소봉대하거나 설사 근거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부패’와 논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엉뚱한 쟁점에 ‘부패’의 모자를 뒤집어 씌워 본말을 전도하여 대중의 눈을 가린다.

사학재단 중 일부가 부패하여 학교운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고 사법의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패와 비리가 있으면 문교당국이 감사를 하거나 검찰이 수사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기소하거나 행정적인 제재를 하면 그만이지 학교법인 이사구성에 개입하거나 학교운영권을 침해할 이유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의 이사추천(말은 추천이나 추천한 2배수의 대상자중에서 반드시 이사 선임을 해야 함으로 실제로는 이사 선임이나 다를 바 없다)의 숨은 의도가 전교조의 학원장악에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개정사학법의 목적은 오로지 자라나는 젊은 미래의 대한민국의 주인공들을 역사의 오물인 김정일 반역세력에 온정적이고 부화뇌동하는 국가관과 세계관으로 물들이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과거에 있었던 사학재단의 몇몇 부패사례를 애드벌륜으로 띄워서 좀벌레가 나무를 조금씩 갈가먹는 식으로 대중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개정사학법에 숨어 있는 의도가 이렇다 함에 관하여는 최근 개정사학법에 반대하여 신입생배정을 거부하겠다는 사학연합회의 결의를 실천에 옮긴 제주도와 경남의 일부 사립학교재단을 진압하고자 사립학교재단에 대한 전국적인 감사와 수사를 지시한 정부여당의 대응책이 그 명백한 증거가 된다.

사학재단의 부패에 관한 증거나 단서가 있다면 바로 그 이유만으로 개정사학법에 대한 반대의 집단적인 의사표시와 무관하게 감사를 하거나 수사를 할 일이지, 소위 ‘개방형이사제’에 대한 반대의 취지로 신입생배정거부라는 읍참마속의 고육지책에 호소하는 사학재단을 부패조사의 이름으로 옥죄고 재갈을 물릴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사학재단의 부패를 발본색원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립학교의 부패를 문교당국이 감사하거나 사정당국이 수사하는 것은 기존의 법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학의 부패’와 개정사립학교법의 소위 '개방형이사제'는 논리적으로 전혀 무관한 점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이번의 정부여당의 대응책에서 자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3. 헌법소원


개정사립학교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일부사학재단이 청구인이 되어 제기된 헌법소원은 개정사립학교법 조항 중,
소위 ‘개방형이사제’, ‘이사장 및 친인척 겸직 및 임명제한’, ‘감사선임규정’, ‘임시이사 관련 규정’, ‘사립학교장의 임기연임 및 중임제한 규정’등이 헌법에 반하며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이 국회법의 절차규정에 위배된다는 취지이다.
이 자리에서 헌법소원청구서의 내용에 상세한 언급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나 그 요체를 약술한다면 사립학교란 재단의 일종으로서 학교법인 그 자체가 외부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건학이념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것이다.

사립학교란 교수도, 학생도, 교원도, 학부모도, 시민단체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학교법인 그 자체가 주체라는 것이다.
설립자가 출연한 학교 재산은 설립자나 상속인의 것도 아니고 교수내지 교원이나 학생 및 학부모의 것도 아닌 학교법인 그 자체가 소유자이며, 학교의 물적시설을 이용하여 학교를 운영하는 운영권은 학교법인 그 자체의 재산권인 것이다.

학교법인은 추상적인 존재로서 구체적인 ‘인’을 통하여 현실로 운영되는 것이므로 학교법인은 설립자가 선임한 이사진과 그 이사진이 새로 선출한 후임이사진을 통하여 ‘학교법인으로서의 동일성’을 가지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주체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사립학교의 이사진 선출권은 학교법인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고유성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현실적인 조건이며, 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법인자체의 고유성과 동일성은 침해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위헌론의 전제이다.
사용자와 피용자의 관계에서 피용자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피용자가 사용자가 되거나, 소비자가 생산자가 됨으로써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개정사학법은 마치 피용자가 사용자로 편입되거나 소비자가 생산자의 지위를 대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소비자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품의 하자나 부당한 가격결정, 공해의 발생 등에 대하여 이를 방지하거나 손해를 청구할 수 있는 법률적․사회적 매커니즘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지 소비자가 생산자 기업의 이사진의 일부가 된다고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닌 것과 같다.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저평가 된 임금체계에 관하여 노사협의나 노동쟁의라는 법률적 사회적 매커니즘으로 피용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기본 시스템이 아닌가?
이는 새삼 법률전문가의 진부한 설명조차 필요없는 자유민주주의의 상식이다.

이번에 제기된 헌법소원도 바로 위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전제된 상식과 믿음에서 논리가 진행되고 있다.

헌법소원 심판청구사건에서 마땅히 위헌결정이 내려져야 할 것이나, 최근의 몇몇 주요사건에서 보여준 헌법재판소의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헌법재판관들이 오로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만을 염두에 두고 다른 일체의 정치․사회적 요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4. 사태의 본질은 소비에트화에 있다.


1917년 제정 러시아에서 레닌의 블쉐비키혁명이 성공한 후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전 부분에 걸쳐 소위 ‘소비에트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소비에트화란 모든 개별 사회공동체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방식’이란 미명하에 주인을 없애버리는 전략이다.
인민대중 전체가 주인이 되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공동체, 그러나 실제로는 소수의 혁명의 전위대가 신격의 지도자가 누르는 손가락에 따라 모든 것을 장악하고 결과적으로 인민대중은 그 누구도 주인도 되지 못하는 시스템. 그래서 인민대중이 스스로는 물론 사회에서 영원히 소외되는 체제, 바로 그것이 소비에트체제라는 것은 지난 팔십년간의 공산주의 내지 과격한 국가독점 사회주의가 피고인이 된 역사의 법정에서 선고된 누적된 판례이다.


5. 혁명의 영원한 진지; 학원


1989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이 나라의 좌파들 소위 ‘진보진영’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동독이 백기를 들고, 사회주의의 영원한 모국인 ‘소비에트러시아’가 함몰하는 현실을 목전에서 지켜보던 그들을 그들의 신념의 유지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몰라서 전전긍긍하였다.
수구좌파들은 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그람시’의 해묵은 테제를 화두로서 내세웠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지론이 길이다.’
그들은 진지론에 의거하여 정치, 법조, 언론, 교육 등 개별사회공동체에 각개약진하여 혁명의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회주의 이론자체의 비현실성과 후진성은 ‘민족자주’로서 보강하였다.
‘자주!’ 바로 이 슬로건으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장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반미’로 내몰았다.
80년대 이후 이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있는 죽음을 부르는 주술이 바로 ‘반미자주화’ 이다.
반미자주화는 김일성 주체사상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대학을 이미 엔엘(NL)파가 장악하였고 그나마 소박한 초기 사회주의의 이념(PD)는 소수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들은 「반미자주화」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하나둘씩 새로 얻어 탄 개별시민사회의 때묻지 않은 신진 양심세력이라는 허상의 이미지로 파죽지세로 국민들을 현혹하였다.
사실 그들의 성공이 ‘반미자주화’라는 슬로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재로 효험있는 약방문은 과거의 부패를 청산하자는 데에 있었다.
“부패를 청산하자, 지나간 구린데를 파헤쳐 부패의 진상을 공개하자, 부패는 친일․친미 세력에 많다. 특히 친일세력이 부패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관참시를 해서라도 지난일을 낱낱이 파헤쳐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친일민족반역자를 색출하고, 이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기존의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나아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이 나라를 ‘반미자주화’의 깃발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수구좌파세력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해방과 6․25라는 거대한 민족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별자의 차원에서 보면 불행하게도 역사의 희생자가 된 삶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민족사’와 ‘가족사’를 구별하지 못한 채로 어줍잖은 지식과 한이 어루어진 상태에서 소위 ‘지식인’의 대열에 선 자들도 상당하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대한민국을 증오하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선물받은 삶의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사회적 공론의 장에 서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대한민국을 증오하거나 폄하하는 목소리에 동조하는 부류들이다.
수구좌파들의 오래된 씨앗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모판에 식재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보호와 양육으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한 수구좌파의 모는 노무현정부에 들어와서 드디어 대한민국의 문전 옥답으로 이앙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관문은 과거사진상규명.
두 번째 관문은 언론법
네 번째의 최종관문은 잠시 보류하였다.
어쩌면 김정일의 서울방문을 위하여 진상품으로 아껴두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세 번째 관문인 사학법개정을 을유년 저무는 해를 앞두고 달성한 것이다. 최후의 그 날을 위하여 그리고 승리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이념으로 무장된 차세대를 육성 배출하기 위하여 사학부패제거라는 미명으로 사학을 찬탈하는 결정적인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6. 역사의 신을 믿을 수 밖에


이제는 마지막 관문만이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이다.
한나라당에서 사립학교법의 재개정을 주장하면서 국회의 동원을 거부하고 가투에 나서고 있으나, 수구좌파들은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다.
보궐선거의 대패, 여론조사지지율의 하락. 그들은 전혀 괘념치 않고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선거라는 도박판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이겨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법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사학까지 손에 쥐었으니 새롭게 투표권을 갖고 일년에 수십만 명씩 배출되는 선거의 신참자는 전부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지 않은가!
이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서두를 이유도 없다
무리하게 국가보안법폐지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으면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그들이 악의 원죄로 단정하고 있는 ‘수구보수세력’들은 이리저리 갖고 놀다가 말려죽이면 그만인 것이다.
이미 다죽어가는 사람에게 사망선고를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의 강이 흐르는 길에도 물줄기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유와 번영의 확대’라는 역사의 만유인력이 예외없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나 우리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거나 산사태가 나서 물줄기가 아래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일은 두고 하늘만을 탓할 수는 없다. 물은 변함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설마하는 마음으로 게을리 한 탓이다.
자유와 번영의 확대
바로 대한민국의 헌법의 가치이다.
다시 한번 어금니를 꽉 다물고 신들메를 고쳐서 대한민국을 위한 구국전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한국논단에 게재되었던 것임.)
[ 2006-09-06, 12:21 ] 조회수 : 6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