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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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3대 원칙의 허실
헌변
 김대중대통령의 평양방문일자가 다가오고 있다. 이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우리나라의 언론과 여론은 남.북한의 진로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급한 낙관론자들은 이 번의 회담으로 한반도의 통일이 목전에 이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적어도 정신적으로 "우리 모두 평양으로"라는 장미빛 열기로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신중론 또는 부정론을 펴고 있는 사람들은 긍정론자들의 희망론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실체와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민족의 화합과 교류.협력은 물론 이산가족상면까지도 그리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북한의 특수라는 것도 북한의 경제상황을 살펴볼 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중론자들은 무엇보다도 북한이 종래의 무력통일 방침을 철회하고 핵무기를 위시한 대량살상무기의 생산중단과 폐기가 남.북회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나의 소견을 피력할 생각은 없다. 김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시의 7.4공동선언,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의 남북기본합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합의 등 남.북 정부원수의 회담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회담자체는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이 2000년 4월 11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상회담합의 소식을 듣고) 뜨거운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도 이번 회담의 역사적 의의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김대통령의 3월 "베를린 선언" 직후에 그 결실이 이루어졌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번 회담이 이토록 감격스러운 만큼 우리의 자세는 냉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같은 말을 다른 뜻으로 쓴다.

  어휘 그 중에도 명사는 개념이 생명이다. 그래서 개념을 중시하는 독일어는 모든 명사를 대문자로 시작한다. 독일사람들이 특히 철학에 대해서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정확한 개념을 중시하는 생활태도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우리는 독일(서구)사람들에 비해서 지성보다는 감성에 치중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 말의 형용사와 부사는 어느나라의 말보다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달되어 있지마는 명사는 매우 불분명하게 쓰여지는 경향이 있다. 이 명사(개념)의 중요성에 대해서 고 황산덕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신은 어떤 분인가?" 하는 질문은 "어떤 분이 신인가" 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는 해답을 얻을 수 없다. 기독교적인 신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불교의 해탈자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신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밤이 새도록 토론해 보았자 결국은 끝이 안나게 되어 있다". 참으로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주의 하고 살펴야 할 사항이 있다. 7.4 공동성명에서부터 시 작하여 지금까지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통일 3대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이 남북한회담에서 계속 양쪽 대표들의 입에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이란 1. 자주(自主), 2. 평화(平和), 3. 민족대단결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말하는 "자주"나 " 평화"나 "민족대단결"이라는 어휘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과는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라는 낱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개념의 혼동을 일으키는 어휘로서 "민주주의"를 들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참된 "민주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간교한 괴변에서 비롯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철저한 사이비 민주주의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실체를 살펴본다.
   민주주의의 정식명칭은 자유민주주의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하나의 체제 또는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고 하는 두 개의, 그것도 서로 상충하는, 정치체제와 가치를 결합시켜 놓은 원리를 일컫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의 원천을 국민에게서 구하는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이래서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 리, 참정권보호의 원리, 평등의 원리로 발전해 간다. 이것은 참여의 원리이자 긍정의 원리이다.
  이에 비해서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비대와 절대화를 견제하여 국민(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정치원리를 말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권력분립의 원리, 법치주의의 원리, 기본권보장의 원리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탈의 원리이자 부정의 원리이다. 국민(개인)은 민주주의에 의하여 국가로 승화하고 자유주의에 의하여 자신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참된 민주주의가 숙명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정치원리 중에는 민주주의가 아닌 사이비 민주주의가 너무나 많다.
  "민주주의"에 수식어(형용사)가 붙어있는 것은 모두 가짜 민주주의다. 가짜 민주주의중에 가장 전형적인 것은 인민민주주의라고 하는 공산주의이다. 공산주의는 노동자, 농민의 주권을 빙자한 계급독재정치원리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가 자신을 민주주의로 가장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이비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조국통일 3대원칙 속의「자주」

  자주라는 말은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으로 존재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말은 독립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주와 독립은 통상 자주독립이란 합성어로 쓰여지고 있다. 자주를 뜻하는 서구의 언어들 ,independence. self supporting(영),Unabhaengigkeit,Selbststandingkeit (독), independance(불), independencia(서), indipen denza(이)도 자주와 동시에 독립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주란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닌 독립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북한이 말하는 자주는 이러한 보편적인 의미의 자주가 아니다. 북한식 의미가 첨가된 자주이다. 무색투명한 자주가 아니고 붉은 색이 가미된 자주라는 말이다.
  우선 역사적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북한은 체제정립초기부터 "자주노선"의 수호를 강도높게 외쳐왔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정권수립후부터 1950년까지 철저하게 친소일변도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전반에 이르러서 친중공노선으로 기울어졌다. 1966.8.부터는 중.소 양국에 대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김일성이 1966.8.12자 당기관지를 통해서 "자주노선을 옹호하자"라고 외친 역사적 배경은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그가 주장한 "정치에서의 자유,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주, 사상에서의 주체"는 바로 필요성에 의한 기망적 자유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말하는 자주의 무서운 기망성은 우리에게 대한 관계에서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남한을 향해서 외치는 자주와 독립은 구체적으로 미군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북한이 말하는 자주와 독립은 미국으로부터의 자주와 독립을 뜻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미국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주인공이다. 한민족 전체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는 원쑤인 것이다. 북한이 민족의 통일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일으킨 6.25 성전의 목표달성을 무산시킨 괴수이다. 그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한반도로부터의 미군철수를 소리높이 외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이 미국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본다. 북한의 "정치사전 419면"은 "미제의 각을 뜰데 대한 전략은 위대한 주체사상과 철저한 반제혁명사상의 구현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김일성은 "미제의 각을 뜰데 대한 전략"을 다음과 같이 펴고 있다.
  "인민들이 세계에 이르는 곳마다에서 각각 미제의 팔도 뜯어내고 다리도 뜯어내며 머리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리며 미제의 각을 이르는 곳마다에서 뜨게되면 미제는 결국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김일성 저작선집 5권 501면).
  철수했던 미군이 다시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북한의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자주라는 말을 사용 할 때 그 말의 정의를 분명히 하는데 확고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조국통일 3대원칙 속의「평화」

  평화는 인간집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다. 전쟁은 인간집단의 무력총돌 상태를 뜻하는 말이므로 인간사 이의 비정상관계를 뜻한다. 이에 반해서 평화는 인간집단의 정상관계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반가치개념이다. 이에 비해서 평화는 정상가치이고 보편가치이다.
  평화는 때로는 전쟁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 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평화는 전쟁의 제한과 저지를 위한 인간의 노력과 활동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은, 평화를, 우리와는 달리, 단순한 무전쟁상태(無戰爭 狀態)로 보지 않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실체를 살펴본다.
  김일성은 "평화의 파괴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며 노예의 평화를 반대하여 억압자들의 통치를 뒤집어 엎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일성 저작선집 4권 521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억압자 또는 압제자"란 부르조아정권을 말한다. 따라서 부르조아정권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평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평화관이다.
  북한의 철학사전은 "평화"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평화는 민족적 및 계급적 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의 리익과 분리시킬 수 없으며... 진정한 평화는 오직 략탈전쟁과 노예의 평화를 강요하는 사회제도를 뒤집어 엎을 때만이 이룩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평화는 지구상에 비공산주의 국가가 남아있는 한 이룩될 수 없다"
  북한은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르조아 평화주의의 표현이며 수정주의적 사상조류"라고 본다(김일성 저작선 집 4권 484면).
  그들의 "평화"나 "평화통일"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제휴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적화통일 야욕의 실현에 유리한 조건 조성을 위한 중간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평화는, 이러한 투쟁적평화외에 목적의식이 함몰되어 있는, 특수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국가정보원(구중앙 정보부)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인민의 적인 남한 부르조아정권의 체제수호법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그러한 악법의 집행기관이고 양심적인 혁신통일지향인사들에 대한 탄압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한에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국가정보원이 건재하는 한 한반도에 평화는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 는 것이다.

이른바 조국통일 3대원칙 속의「민족대단결」

  민족은 어느정도의 혈연적 공통성과 거주지역의 동일성을 기초로해서 성립되는 광범위한 문화공동체 (kulturgemein sehaft)를 의미하는 말이다. 같은 문화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서로 동일한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이러한 동일공동체 소속의식을 공속의식(Zusammengehoerigkeits bewusstsein) 또는 민족의식(nationalbewusstsei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단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또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의 "민족대단결"은 "존재"(Sein)이자 "당위"(Sollen)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존재적이고 당위적인 총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대단결"의 각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북한이 말하는 "민족대단결"이란 "사상과 노선을 초월하여 민족의 통일을 구현시키기 위한 협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컨대 간첩과 친북세력의 활동도 보장해주고 결과적으로 연방제통일을 구현하는데 이바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한내의 자생적 공산주의자 또는 친북세력의 주장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민족"에 최고 가치를 인정하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는 그보다 열등한 다른 모든 가치는 포기되어도 좋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열등한 가치중에는 우리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도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없는 통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 통일은 분단보다 못한 것이다. 북한의 "민족대단결"은 북한식 "민족"개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사전"에 따르면 민족은 "로동계급"이 주권을 잡고 있는 "사회주의적민족"과 "착취계급이 피착취계급을 억압착취하는 부르조아민족"의 둘로 분류된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승리는 반드시 "사회주의적민족"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대동단결"은 "민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위험한 민족대단결인가? ♠ 이진우 (헌변회원/변호사)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2003-12-23, 12:26 ] 조회수 : 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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