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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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점
헌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의료사회주의-

1. 사람의 병과 상처는 양(量)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질(質)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병, 상처를 치료받고자 하는 사람과 병자, 부상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의사 사이의 관계는 ① 의사의 치료지식, 노하우② 의사의 노력강도 ③ 의사의 정직 성실 ④ 의사의 적정 치료비의 4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수요공급 관계입니다.

  2,400년 전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도 1800년 전의 화타 시대에도 용한 의술이 있고 열심히 애써주고 치료비를 지나치게 받지 않은 공급자(의사)에게 수요자들이 몰렸고 소비자(환자)만족을 시켜준 의사들은 보람을 가졌습니다.

  용한 의사, 열심한 의사, 적정보수를 받는 의사에 대한 수요의 집중이 현재라고 달라질 리가 없으며 그 분들이 젊은 의사들의 벤치마크가 되어야 하는 사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정보화시대에 우리 정부가 자꾸 채택하려는 의료사회주의가 의사에게 연구 더 하려는 의욕을 냉각시키고 환자에게 애써주는 강도를 약하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구출과 치료의『의료서비스』를 위하여 얼마나 우수한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얼마나 높은 질의 용역으로 제고되느냐는데 대한 깊은 생각은 빠져있습니다.

  대학을 나와 인턴을 마친 30세의 젊은 개업의사와 우수한 학업, 꾸준한 연구 20년의 성실한 의료경험을 축적하여 주변의 신뢰를 받는 50세의 내과전문의에게 예외 없이 똑같은『건강보험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151.62에 55.4원을 곱하여 초진료 8,400원을 계산하여 줍니다. 이렇게 수량(數量)만으로 의사노력(醫師努力)을 계산해주면 치료(治療努力)의 질(質)이 저하됩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특유의 수량화(數量化) 때문에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소련에서 직업활동으로 보수 받는 사람들이 보통 말했답니다.『그들(정부)이 Pay(대가지급)하는척 하니까 우리(직업인)도 Work(일)하는척 한다.』 수량화는『일 하는척 하여 수량으로 보고되는 양(量)』에 관심을 더 갖도록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놓고 사회주의에서는 일부 직업인들의 타락을 규탄하고 엄벌하는 캠페인을 매일같이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2. 평등을 제도로 강요하면 게으름과 속임수가 횡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119구조 엠브런스를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밀어 보내다가 살릴 사람을 죽게 하였다고 조사를 하고 수사를 하여야 합니다. 속임수의 허위진료를 찾아내려고 감시를 하고 감사를 하지만, 이를 회피 기만하는 지혜가 새로이 개발됩니다.

  평등을 강요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선택을 못하게 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이 없는 의료제도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인 의원, 병원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의료배급소로 서서히 전락되어가면 의료서비스는 질(質)이 아닌 양(量)으로 계산됩니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들에게도 자유시장경제의 선택이 줄어들게 됩니다. 좋다고 평판받는 병원에서 진찰받거나 유능하다고 알려진 의사에게 치료받으려면 소비에트의 배급소 행렬과 똑같이 몇 개월을 기다리는 행렬에 등록하여야 합니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시민들은 아주 중요한 부상이나 질병에 걸리면 소비에트사회에서처럼 미리 잘 아는 친지를 통하여 탁월한 의사를 찾으려 하거나 심하면 테이블 밑으로 금품을 건네주고라도 좋은 맞춤 의료서비스를 받으려고 애쓰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3. 국민들이 의사들의 능력을 언제까지나 착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 인술(仁術)을 베푸는게 좋다는 인술론(仁術論)을 법으로 강요하는 것이 의료사회주의입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사랑의 사회를 지향하는 선의의 이상주의자들이 화두(話頭)를 꺼내니까, 학자도, 법률가도, 관료도, 정치인도, 의사도 이의(異議)를 내세우기 힘듭니다. 그러다가 싸다니까 거저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요자 시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고『모든 사람에게 모든 치료를 해주자』는 논리에 상당수 동조하게 되고, 여기에 단기여론(短期輿論)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이 의료사회주의의 법률을 저지할 의지를 포기합니다. 게다가 사회주의 논리를 밀고 들어오는 투쟁가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나 높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강요된 자선(慈善)과 인술(仁術)은 진정한 자선과 인술이 아닙니다. 그리고 개별시민들이 느끼는 싼 의료비, 거저받는 치료는 나라공동체로서는 훨씬 비싸게 치여 의료수요자 겸 납세자 시민들에게 납세고지서와 체납처분으로 닥쳐옵니다.

  많은 시민들은 그 동안 의사가 고소득층으로 잘 살았으니 좀 덜 벌고 봉사하면 좋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저가봉사(低價奉仕)를 하라고 법으로 강요하는 것은 착취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게되면 사람의 부상과 병을 고치는 어려운 직업, 자칫 실수하면 5억원 가량의 인명배상을 해주어야하는 위험을 안은 업무에 도전하려던 우수인력중 의사가 되기보다는 그 보다 덜 어렵고 덜 위험스러운 직업과 업무로 진로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의사가 되어도 성형외과 이비인후과를 택하려 하는 경향도 생겼습니다. 이미 먹고 입을게 있는 50세 의사들중 의사 때려치고 골프장에서 등산로에서 놀고 싶어하는 분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서『맨발의 의사(모택동의 중공시절에 농민과 같은 수준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강요된 병 고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를 향하여 이 사회가 움직일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돈 많은 사람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아예 외국에 가서 수술 받고 싶어하게 될른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30대 40대 50대 의사들에게 달리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적다고해서 현재의 의사들의 능력과 의욕과 경험을 착취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30년 후에 가면 우리가 착취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과 의욕과 경험을 가진 의사는 이미 거의 없게 됩니다.

  현재에도 착취 받는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덜 착취 받으려고 양(量)으로 채우려는 유혹을 받고 있으며, 위험한 수술에서 한번 실수하면 5억원을 물어내고 5만명 치료로 보충하는 손해위험을 앞에 두고 수술을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119 구조대 차량이 위급환자를 데리고 도착해도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권하는 의사들의 겸손을 의료소비자 일반은 이미 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해당 응급실 의사의 비인간성만을 탓하는 언론의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의사들을 고소득자로 몰아 그 희생을 강요하는데 무엇 때문에 적자가 생기는가.

  원래 사회주의는『보람과 능력에 따라』일하고『필요에 따라』소비하는 이른바『고매한 이상(高邁한 理想)』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땀 흘리고 아끼고 저축하고 생산성 높인 네것과 놀고 저축 안하고 생산성 낮은 내것과 구분하지 말고『사회연대성』의 정신으로 함께 섞어서 고르게 살자는『고매한 이상』 때문에 지난 20세기 동안 엄청난 큰 희생과 빈곤과 독재를 경험하고서도 이『고매한 이상』이 한국에서 다시 소생하고 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연대성』의 이『고매한 이상』은 반드시 두가지의 조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법에 의한 강제와 처벌이고, 또 하나는 이로 인해 이득을 본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사회연대성』의 이『고매한 이상』을 인간이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니까 법규정을 자꾸 만들어서 꼼짝 못하게『사회연대성』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제제하며 처벌하고 이것도 부족하면 사회켐페인으로 주눅들게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일부 의사들 중에 내돈 아닌 국가돈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지혜와 꾀를 개발하여 핑계와 수량보고를 활용하여 가급적 보수를 더 많이 챙기는 사람이 나옵니다. 의사의 치료를 받는 환자 역시 국가돈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런 핑계와 수량보고에 일단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이걸 막느라고 다시 많은 돈을 들여 환자의 치료내역을 우편으로 보내는 무리한 행정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연대성』의 이『고매한 이상』을 하는 과정에서 여기서도 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싼 의료비를 보장해 준다고 하는 공공기관 공공조직 직원들의 일자리, 게으름과 속임수를 막으려고 갖가지 묘안을 짜내기에 바쁜 공무원들의 일자리와 보람, 솔제니친의 이른바 일(치료) 자체보다도 일(치료)의 업적보고에 능한 요양기관 멤버들, 행정이 일일이 막지 못하는 부정수혜(不正受惠)를 잘도 이용해내는 똑똑한 환자들, 사회주의 특유의 규정미로(規程迷路)를 해석해주고 대리해주는 전문가들이 그들입니다. 의료사회주의가 사라지면 이들의 직장과 보람은 없어지지요.

  이런 이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의 특색입니다. 이 이익 받는 사람들의 비생산적 활동의 보수만큼만 납세자가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생산적 활동과 함께 도덕타락(moral hazard)이 만연되어 대다수 시민들은 생산적 활동에 들이는 노력보다 비생산적 규정미로(規程迷路)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득이 된다고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 사회는 빈곤과 비효율을 향하여 급진적으로 이른바 진보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생산적 활동이 몰고 오는 사회주의 특유의 현상으로서 국가는 비효율적으로 될 수밖에 없으므로 적자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2001년도 4조원 가량 의보재정 적자에 대하여 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이 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이 벌써 나타난 분명한 신호입니다.

5. 의료사회주의는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규제와 관료주의 그 자체입니다.

  의료사회주의는『선의의 공무원』들이 탁상에서 작업 생산해서 축적해놓은 수천 페이지의 규정을 가지고, 의사들의『선의』와『창의』그리고 이를 가까이서『신뢰』하는 환자들의 자유스러운 관계를 방해합니다.

  의료사회주의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일으키게 되어 있는 국민세금낭비, 의료서비스 수혜자의 속임수,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게으름과 속임수를 막는다는 이유로 지금보다 더 많은 규정, 더 많은 위원회, 더 많은 예산소비를 정당화 할 것입니다. ♠ 임광규 (변호사)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2003-12-23, 23:19 ] 조회수 : 1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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