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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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1주년기념 대 토론회>- 글로벌 시대의 사회보험 -
헌변
 
권 오 성 (자유기업센터 공공정책실장)

Ⅰ. 들어가는 글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은 보험료와 급여수준의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대안들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소득재분배기능을 전제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 보험료와 급여의 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리고 정교한 모델이 설정되고 나면 이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순수한 열정으로 이 제도를 건전하게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근본적 모순이 있다.

  첫째,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지면서 적정보험료와 급여를 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비해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하는 지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저소득층은 물론 고소득층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설계되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부담이나마 덜자는 것이다.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면서 이 제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은 득을 보고 고소득층은 손해를 보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고소득층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고소득 자영자의 경우 보험료를 작게 내기 위해 소득을 숨기게 될 것이다. 이런 변수들을 정확하게 고려해서 적정 보험료와 급여를 설계할 수는 없을 것이며, 결국 재정은 다시 부실해질 것이다. 이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물론 자영자의 소득을 정확하게파악하면 이러한 문제는 상당히줄어 들 것이다.

  그러나 자영자의 소득파악을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득파악은 일시적인 작업이 아니다. 동태적으로 변동하는 자영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은 그 편익보다 클 것이며, 정확한 소득파악은 결국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의료보험의 경우 소득재분배 기능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고소득에서 저소득으로 소득이 분배되는 만큼 치료나 진료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위험분산의 효과는 줄어들 것이다.

  연금 등의 사회보험을 통한 소득재분배는 시키고 대학의 법대교수인 Richard A.Epstein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의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off-budget financing"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 이런 종류의 소득재분배는 이 제도의 당사자들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외부의 정치적 강자에 의해 설계·운영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따라서 적립방식 연금제도의 목적은 국민들 스스로 노후에 대비한 저축을 유도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소득재분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적립방식의 연금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정부의 재정활동을 통해서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새로 조정된 연금제도 하에서 국가가 연금을 사심 없이 운영할 것이라는 가정도 현실성이 없다. 국민연금 전국민 확대실시에 대한 반발의 원인 중 하나도 국민들이 국가의 운영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또한 약속한 급여를 받을 수 있을 지의 여부도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연금재정이 부실화되고 있다는 이유로 급여수준을 낮추고, 연금지급시기를 늦추는 결정을 한 바 있다. 민간 보험이라면 이러한 결정에 수긍할 가입자는 없을 것이다. 보험을 해약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다른 보험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가입자들은 선택권이 없다. 그들이 국민연금을 조세로 간주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병원에 가지 않을수록 손해를 보는 의료보험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의료보험료가 국민들에게 일종의 세금으로 인식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제도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사회안전망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는 부과방식 연금제도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부양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 기타 요인으로 인해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이 제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고 경제성장에 짐이 되고 있다.

  월드뱅크의 로버트 팔라시오스는 모든 부과방식 연금제도는 연금지급 붕괴로 이어지는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이 제도가 이제 막 도입된 상태로 연금 수혜자들이 많지 않을 때이다. 둘 째 단계는 이 제도가 성숙하기 시작할 때이다. 연금 수혜자들이 늘어나면서 이 제도의 자금조달을 위해 비축된 기금은 고갈사태에 직면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인구구조가 고령화되어 연금 수혜자가 더욱 늘어난다. 기금의 고갈로 사회보장세가 상승하고 노동원가는 더욱 비싸진다. 이러한 과정들은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높은 실업률의 원인이 된다.한국의 사회보험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형식적으로는 적립방식을 채택했다. 부과방식의 연금제도와는 달리 적립방식 연금제도 하에서는 저축을 한 사람만이 혜택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방식의 주요 기능은 미래에 대비해 저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저축이 적당한 것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충분한 저축을 통해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추가로 저축을 강요하는 것도 정당성이 없다.

  개인구좌적립방식의 연금제도와 의료저축제도를 도입하면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 될 것이다. 싱가폴과 칠레의 연금제도, 미국의 케이토 연구소에서 제시하고 있는 의료저축제도, 이 들 제도의 장점을 결합한 포춘구좌방식을 참조하여 개혁의 대안을 찾아보자. 이 제도는 노동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글로벌시대에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사회보험의 모델이 될 것이다.

Ⅱ. 싱가포르·칠레의 연금제도

1. 싱가포르의 국민연금제도

(1) 개인구좌 적립방식

  싱가포르는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의 연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가입자들에게는 모두 개인구좌가 주어지며, 각자의 구좌에 원금과 기금의 운영에 따른 이자수익이 적립된다. 세금 혜택도 있다. 적립한 만큼의 연금을 지급 받게 되므로 정치적 결정에 따라 보험료와 연금지급액이 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징수한 보험료로 충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므로 연금기금의 파산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개인구좌를 자손에게 물려주거나 적립금의 일부를 다른 가족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다. 직장을 옮겨도 구좌는 함께 따라다닌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대부분의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연금은 일종의 자산으로 취급된다.

(2) 중앙공제기금(Central Provident Fund)

  연금기금은 정부가 관리하는 중앙공제기금(Central Provident Fund)에 의해 운용된다. 그러나 모든 가입자들은 개인구좌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구좌들이 모여 기금을 이루고 있으므로, 모든 가입자들은 연금기금의 주인인 셈이다. 참고로 한국을 비롯한 부과방식의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보험료를 낸 사람들 각자에게 구좌가 주어지지 않고, 기금의 주인이 익명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3) 의료보험·주택구입·교육보험과 통합관리

  싱가포르에서는 노후에 대비한 연금, 의료보험, 주택구입을 위한 보험, 교육보험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사회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매우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방식이 정착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싱가포르는 일반구좌(Ordinary account), 의료저축구좌(Medisave accounts), 특별구좌(Specail accounts), 총 3개의 사회보험 구좌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구좌는 주택구입, 교육 등을 위한 연금구좌이며, 의료저축구좌는 의료보험을 위한 구좌이다. 그리고 특별구좌는 노령연금과 기타 우발적인 사고에 대비한 보험구좌이다. 이들 구좌는 별도로 관리되지만 다른 쪽 구좌로 적립금의 일부를 이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료저축구좌의 잔액이 부족하다면 일반구좌의 적립금을 이체할 수도 있고, 반대로 병원에 많이 가지 않아 의료저축구좌의 적립금이 남는다면 다른 구좌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한편 자영업자는 의무적으로 의료저축구좌에 가입해야 하지만, 일반구좌와 특별구좌에 대한 가입 여부는 자유이다.

(4) 싱가포르 제도의 문제점

  직장 근로자의 경우 의무적으로 세 가지 구좌에 모두 가입해야 하며, 총 보험료는 소득의 약 30%에 달한다. 이 중 15%는 근로자가 부담하고 15%는 고용주가 부담한다.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보험료가 많은 것은 싱가포르 제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이다. 싱가포르에서의 연금은 국민들에게 일종의 자산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저축을 강제함으로써 소득이 낮은 직장 근로자들에게 적쟎은 부담이 되고 있다. 개인들은 자기기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모든 개인들은 노후를 대비하지 않는 용의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추측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강제저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필요한 소비 보다 소득이 작은 개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반듯이 저소득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저축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충분한 저축을 하고 있는 개인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많은 사회보험료 부담을 의무화하는 것은 싱가포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기업의 높은 사회보험 부담은 노동비용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 칠레의 연금개혁

  1981년 칠레는 세계 최초로 민간이 운용하는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연금개혁의 효과는 경제전체에 파급되었다. 1990년대에 들면서 GDP 성장률은 연평균 7%에 달했고, 1995년 현재 저축률이 GDP의 29%에 달하는 등 건실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1) 연금저축구좌(PSA: Pension Saving Accounts)

  새로운 칠레 연금제도의 핵심은 연금저축구좌와 연금기금관리회사이다. 연금저축구좌란 새로운 연금제도 하에서 개인에게 부여되는 연금구좌를 의미한다. 연금 지급액은 싱가포르 방식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구좌에 적립된 원금과 기금의 수익률에 따라 결정된다.

  직장 근로자들은 매월 소득의 10%를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지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 연금구좌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으므로, 추가적 저축의 동기를 증가시킨다. 가입자들은 세 달에 한번씩 자신의 구좌에 적립된 연금의 액수, 연금기금의 운용 실적과 내용 등을 통보 받는다. 자신의 구좌에 현재 적립된 연금의 액수, 또는 연금으로 받고자 하는 구체적 액수를 미리 정해놓고 매달 얼마를 적립하면 퇴직하고자 하는 시점에 그 만큼을 받을 수 있는지도 계산할 수 있다. 연금을 지급받는 시기와 방법 등을 매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싱가포르 방식과 유사한 점이다. 예를 들어 직장 근로자가 퇴직을 하기 전이라 해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적립금이 누적되면 연금을 지급받을 수가 있을 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연금을 지급받지 않은 채 구좌의 이자 증식을 유도할 수 있다. 연금에 가입하는 당사자가 맞춤양복을 주문하듯이 많은 문제들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칠레 방식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2) 연금기금관리회사(AFP: Pension Fund Administration Companies)

  연금기금관리회사는 연금저축구좌를 관리하는 민간 금융기관이다. 칠레에는 98년 4월 현재 13개의 민간 연금기금관리회사가 있다. 연금 가입자들은 이 회사들 중 하나 이상을 선택해 자신의 연금저축구좌를 개설 할 수 있다. 연금기금관리회사들은 위험이 낮은 자산에 분산 투자하며,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AFP감독원의 감독 하에 매월 기금관리 실적을 발표하므로 가입자들은 이들의 수익률을 비교할 수 있으며, 세 달에 한번 연금기금관리회사를 변경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러한 특징은 높은 수익률과 낮은 수수료를 보장하기 위한 연금기금관리회사들의 경쟁을 더욱 촉진시킨다. 한편 이들이 운영하는 연금기금은 오프 앤드형 투자신탁(Mutual Fund)으로 구성되므로, 만약의 경우 관리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안전하다.

(3)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체제

  우리 나라의 공적연금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원연금 등으로 분리 운영되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칠레의 연금제도는 경찰과 군인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들에게 적용되는 단일체계이다. 강제는 아니지만 자영업자나 개인 사업자도 가입할 수 있다. 연금지급액은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 원금과 기금의 운용 이자에 따라 결정될 뿐 아니라 세금 혜택이 주어지므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를 크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하경제를 제도권 경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점도 참조할 만하다.

3. 싱가포르·칠레 연금제도가 주는 시사점

  싱가포르와 칠레 연금제도의 공통점이자 우리가 가장 주목할 점은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이다. 모든 가입자는 자신의 구좌에 적립된 원금과 기금 운용에 따른 이자의 합을 연금으로 지급 받게 되어 정치적 결정에 따른 보험료율과 연금지급액의 변동 가능성은 없다.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하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연금구좌에는 세금혜택이 주어질 뿐 아니라 가입자들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연금지급과 연금 적립금의 양도가 허용된다. 파산의 가능성도 없다.

  금은 가장 안전한 자산의 일부이다. 이런 점들은 강제가 아니라도 자발적으로 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부하게 될 동기를 준다. 이들 두 나라의 연금제도를 통해 집고 넘어갈 또 하나의 문제는 연금기금 관리운영기구의 주체에 대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정부가 관리하는 중앙공제기금을 통해 연금기금이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칠레에서는 민간 연금기금관리회사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운영된다. 이 경우 가입자들은 수익률을 비교해서 자신의 구좌관리를 위탁할 민간 연금기금관리회사를 선택할 수가 있고, 연금기금관리회사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칠레의 방식은 연금기금이 비효율적으로 투자되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싱가포르 방식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Ⅲ. 의료저축제도(MSA)

  의료보험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대안이 제시되었다. 특히 고급 진료는 민간보험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국가보험을 위주로 한 영국 등도 민간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보험회사가 어떤 상품을 개발하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다. 민간보험은 시장에서 경쟁과 진화를 통해 발전할 것이다. 민간보험을 위주로 한 미국에서도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de) 등 전체 의료보험 중 비교적 비중이 작은 국가 보험에 관한 개혁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 글이 제시하고자 하는 대안 역시 국가 보험에 관한 것이다.국가 의료보험의 근본적 문제는 국민연금의 문제와 매우 유사하다. 우선, 이 제도의 설계와 운영은 정치적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조합방식 하에서 많은 조합들의 적자가 증가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둘째,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국가 의료보험제도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그들의 위험을 적절하게 분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저부담 저급여의 구조를 적정부담과 적정급여의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부담한 만큼 확실하게 더 많이 혜택을 받게 된다면 의료보험 부담 증가를 조세증가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료를 많이 내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하며, 보험료를 적게 내고도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보험료 인상은 조세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의료저축제도를 의료보험의 개혁방안으로 제안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는 앞에서 제시한 개인구좌적립방식의 연금제도와 연계하여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1. 의료저축제도(MSA)

  의료저축제도란 모든 가입자들에게 개인 의료저축구좌(Medical Savings Accou -nts)를 부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의료보험제도이다.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은 싱가폴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도 이 제도가 도입되어 의료비용을 성공적으로 절감시키고 있다. 의료저축제도 하에서의 개인들의 의료보험료는 각자의 의료저축구좌에 적립된다. 의료저축구좌는 평상시 의료비지출을 위한 저축구좌와, 큰 질병이 발생했을 때의 치료비를 위한 순수한 의미의 보험구좌로 구성된다. 저축구좌의 적립금은 일상적인 병원치료를 위해 수시로 인출되고, 보험구좌의 적립금은 지정된 몇 가지 큰 질병이 생겼을 때 지급된다.

2. 의료저축제도의 운영

  가입자들에게 자신의 의료저축구좌를 운영할 민간 보험회사 또는 기타 금융기관들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행 의료보험제도에서 해결하지 못하던 선택과 경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의료보험과 관련된 정치적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

  보험료의 일정부분은 의료저축구좌의 '저축구좌'에 적립된다. 평균적으로 젊었을 때 질병발생 확률이 낮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노후에 적립금은 상당한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일정 수준 이상의 적립금은 모두 저축구좌에 적립된다. 여유 적립금은 개인구좌방식의 연금으로도 이전도 가능하다. 일상적인 의료비용은 모두 저축구좌에서 직접 인출되게 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이 의료비용의 절감 인센티브를 갖게 한다. 의료기관에서의 비용지불은 의료저축구좌카드를 이용한다.

  단기적으로는 의료저축구좌의 적립금이 치료비용을 상회할 수 있다. 따라서 MSA를 운영하는 금융기관은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될 비용의 대출을 일정기간 동안 일정범위 내에서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Brink Lindey(1993)은 이러한 문제가 구좌에 적립금이 누적될 장기에 있어서는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면서 '부부구좌' 또는 '가족구좌' 등은 일시적으로 의료비용 발생이 큰 가족 구성원의 적자문제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부연한다.

  보험료의 나머지는 순수한 의미의 '보험구좌'에 입금되며 지정된 만성 퇴행성 질환이 발생했을 경우 치료비를 보상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되돌려 받을 수 없다. 이 부분은 현행 의료보험이 간과하고 있던 순수한 의미의 보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치명적 질병에 대한 보험(catastrophic insurace)부분이다. 물론 현행 민간생명보험회사들이 취급하고 있는 질병보다 다양한 형태의 급여 대상 질병을 선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만성질환에 대비한 여타 민영보험들의 개발 역시 촉진 될 것이다. 의료보험구좌를 두 개의 형태로 분리 운영하는 것은 보험의 딜레마인 위험의 분산과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있는 일상적 치료는 각자의 저축구좌에서 인출되게 하여 비용절감의 인센티브를 주는 한편,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없는 치명적 질병의 경우에는 순수한 의미의 보험구좌를 통해 비용이 지불됨으로써 위험분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의료보험제도가 일상적인 치료에 대해서는 제3자 지불방식을 채택하면서 그 이상의 치료에는 본인부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방식이다.한편, 의료저축구좌의 보험구좌에 대한 가입은 선택적이다. 즉 MSA에 가입한다 하여도 치명적 질병에 대한 보험 구좌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던가, 치명적 질병에 대비해서는 민영생명보험에 별도로 가입하고 싶다면 굳이 의료저축구좌의 보험구좌에는 보험료를 적립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타의 민영보험 상품들과의 경쟁 또한 촉진할 수 있다.

3. 의료저축제도의 효과

  첫째, 의료저축제도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의료비지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자신의 치료비용에 따라 의료저축구좌에 적립된 금액이 변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도덕적 해이와 프리즈너스 딜레마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의료수요에 대한 바람직한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MSA(Medical Savings Accounts)를 실시한 지역의 경우 30% 이상의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둘째, 의료저축구좌가 민간 금융기관들을 통해 운영됨으로써 개인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의료저축구좌를 운영하는 금융기관들을 선호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험가입자인 개인과 이를 운영하는 금융기관들 모두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만약 MSA의 저축구좌와 치명적 질병에 대한 보험(catastrophic insurance)에 모두 가입한다면 현재 민영생명보험회사들이 취급하고 있는 암보험 등에 이중적으로 가입할 필요가 없게 된다. 반대로 개인의 능력과 위험기피의 정도에 따라서는 추가로 사보험에 가입하여 비용부담이 많은 질병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넷째, 국가는 국보보조의 부담을 덜 수 있으며, 국민은 보이지 않는 의료비지출인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러한 세금부담의 감소로 저소득층의 의료비부담 역시 상당수준 줄어들게 된다.

  다섯째, 의료보험조합에 지원하던 국고부담액 중 상당부분은 의료저축구좌에 일정액 이상을 적립할 수 없는 최저소득계층을 위한 의료보호 사업 등에 사용될 수 있다.

  여섯째, 의료저축제도를 통해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이 제도 하에서 의사는 보험자인 의료보험조합을 의료서비스의 진정한 구입자로 생각하는 대신 환자 자신을 의료서비스의 진정한 구입자로 생각하게 되므로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은 훨씬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저축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수가규제, 광고규제의 철폐, 의사수의 확대 등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Ⅳ. 포춘구좌방식(Fortune Accounts)

  영국의 아담스미스 연구소는 칠레의 경쟁적 민간연금 운영방식의 장점과 싱가폴 방식, 즉 연금구좌와 의료저축구좌 등을 연계하여 운영하는 방식을 결합시킨 포춘구좌방식(Fortune Accounts)을 제안하고 있다. 모든 사회보험을 개인구좌 적립방식으로 관리하며, 서로 연계하여 운영하는 방식이다.

1. 포춘구좌방식의 개념

  포춘구좌는 ①기초 퇴직 연금구좌 ②단기적인 필요에 의한 보험구좌(단기적인 의료비지출, 일시적인 실업 등) ③일생 동안 발생하게 될 위험구좌(장기적인 실업, 장애, 장기적인 의료비지출 등)로 구분된다. 각각의 구좌에 누적된 적립금은 다른 구좌로 이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기적인 필요에 의해 적립금을 초과하는 지출이 불가피할 경우 기초퇴직 연금구좌나 일생동안 발생하게 될 위험구좌의 적립금 중 일부를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가족 중 지출이 많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다면 대신 적립해 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적립금을 그의 구좌로 이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좌의 적립금 중 전부 또는 일부를 자식에게 양도할 수 있다. 일정 한도까지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2. 포춘구좌의 운영

  포춘구좌는 민간금융기관을 통해 경쟁적으로 운영한다. 국가의 역할은 이 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감독하는 것이다. 포춘구좌의 세부적인 설계나 운영방식의 결정은 민간금융기관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가입자들은 이 들 금융기관 스스로 설계한 포춘구좌 방식의 형태나 운영방식 또는 기금 운용 수익률 등을 감안하여 자신의 포춘구좌를 관리할 민간금융기관을 선택할 수 있고, 변경할 수도 있다. 이 제도의 가입은 강제가 아니다. 그러나 포춘구좌에는 이자소득세 등의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이면 자유롭게 적립할 보험료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점들로 가입자들이 포춘구좌의 적립금을 안전하고 유익한 자산으로 여긴다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자 하는 동기를 줄 것이다.

  포춘구좌의 모든 적립금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입자들이 부담한다. 기업이 사회보험 부담을 하지 않게 된다.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의 사회보험 부담을 강제하게 되면,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납부하는 사회보험료의 총액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받을 뿐이다.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의 진정한 총액은 자신의 부담과 기업들의 부담을 합한 것이다. 기업들은 사회보험 부담을 노동투입비용의 일부로 여길 것이며, 결과적으로 노동수요는 감소하여 실업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기업의 사회보험비용 부담은 결국 노동자와 기업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한편 보험료를 내지 못할 정도의 장기적인 저소득층은 국가가 대신 일정수준의 보험료를 적립해 준다. 그러나 다시 소득이 증가해서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생긴다면 국가의 예산지원은 중단된다. 예산지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3. 포춘구좌방식 도입의 효과

(1) 건강한 재정과 탈 정치화

  사회보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험료보다 지나치게 많은 급여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현재의 체제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구좌 적립방식의 사회보험인 포춘구좌방식은 이러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 방식 하에서 정부의 역할은 공정하게 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지를 감독하는 데 있을 뿐이다.

(2) 기금의 효율적 투자

  포춘구좌에 적립된 기금이 효율적 투자처로 흘러 들어간다면 자본시장을 성숙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정부가 기금을 운영하는 것과 민간이 운영하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주식시장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즉 기금을 하락장세에 있는 주식시장에 투자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떨어져야 할 주가가 떨어지는 않는 현상이 오며, 주식시장은 비효율적이 된다. 채권시장이나 기타 다른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자본시장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이 기금을 운영하면 결과는 다르다. 주가가 상승하리라고 예상되는 곳에 투자하게 된다. 이런 곳에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주식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든다. 막대한 양의 자금이 이렇게 효율적인 곳에 유입된다면, 전체 자본시장은 성숙하게 될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펠스타인은 정부가 관리하는 기금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정부는 정부관리기금을 통해 예산적자를 메우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된다. 현재의 연금기금은 공식적으로는 예산 외이지만 지난 10여년 간 기금의 잉여는 정부의 적자예산을 메우는 데 사용되었다.

  둘째, 정부관리기금은 정치적 고려에 의해 투자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부는 정부관리기금이 정치적 개입 없이 볍률에 의해 관리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특정지역의 특정 사업에 기금을 운영할 수 있다.

  셋째, 정부가 기금을 주식과 채권에 일정한 비율로 분산투자 하더라도 결코 효율적인 자본투자가 될 수 없다. 민간투자자들은 장래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경영실적이 좋지않은 기업의 주식은 매각함으로써 자본시장을 효율적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경영상태가 좋은 기업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규모를 확장할 수 있게 되는 반면,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은 규모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같이 효과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

(3) 세계화 시대의 사회보험

  이 제도는 세계화가 가속되어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에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사회보험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 근무를 하게 되거나 이민을 가게 되어도 연금지급의 권리에 변동이 없다. 개인별 포춘구좌는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다. 통합이 추진되어 노동 이동이 특히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유럽에서 이러한 방식의 사회보험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4) 노후 등에 스스로 대비하는 풍토 조성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후 또는 우발적 질병에 대비해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칠레가 개인구좌 적립방식의 연금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이기도 하다.

(5) 라이프 스타일의 선택

  현재의 사회보험은 1940년대의 라이프 사이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라이프 사이클은 과거와 비교해 큰 변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포춘구좌방식의 사회보험은 다양한 형태의 연금 지급을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가입자들은 독점적인 국영기관에 연금 가입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형태의 포춘구좌를 제공하는 민간금융기관들 중 하나 이상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포춘구좌의 형태도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화 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글을 마치며

  국민연금 등의 대부분 사회보험은 보험료에 비해 급여가 지나치게 많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의료보험도 점점 늘어나는 의료비를 보험료 수입이 따라가지 못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점차적으로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수준을 낮추는 방안들이 제안되어 왔다. 이러한 대안들은 현재와 같은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적정 보험료와 급여의 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한다. 또한 정교한 모델이 설정되고 나면 이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순수한 열정으로 이 제도를 건전하게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개인구좌 적립방식의 연금제도와 의료저축제도, 그리고 이 둘을 연계·운영하는 포춘구좌방식의 사회보험을 제안한 이유는 다른 대안들이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 방식이 정치적 결정과 무관하게 운영될 수 있는 유일한 사회보험 방식이며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포춘구좌방식의 개혁을 위해서는 과도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모든 가입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외하고는 현재 사회보험 기여금(납부 보험료 총액)만큼의 연금인정채권(recognition bond)을 발행해야 한다. 연금인정채권을 지급 받은 가입자들은 민간금융기관을 선택해 자신의 포춘구좌를 위탁할 수 있다. 연금인정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재정적자는 정부가 불필요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해서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약속한 급여액이 아니라 납부 보험료 총액을 연금인정

  채권으로 발행하는 것이므로, 적자의 액수는 크지 않을 것이다. 기존 사회보험에 보험료를 납부하던 가입자들의 포춘구좌는 연금인정채권을 기본으로 적립금이 누적되며, 신규가입자의 적립금은 이 때부터 누적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될 국가들간 노동이동을 따라 포춘구좌는 이동된다. 이 방식의 사회보험은 국경이 허물어져 노동이동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보험의 유일한 모델이 될 것이다.



[ 2003-12-23, 23:06 ] 조회수 : 1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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