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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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하는 김대중 대통령께
헌변
 평양 방문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님! 최근 모 일간지에 게재된 한 장의 사진은 우리 국민들을 몹시도 씁쓸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보셨겠지만 그건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방문을 앞두고 어느 학교에서 한 남자가 황급히 태극기를 떼어 내리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그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요? "북한 예술단의 인솔자는 물론 어린 예술단원들까지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무용실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그대로 두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난단 말인가. 우리가 북한에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라의 표상인 태극기까지 떼어내야 하는가"고 통탄해 마지 않았던 모 일간지 사설을 대통령님께서도 보셨겠지요. 대통령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요?

얼마전 위의 신문 기자수첩이던가요. 금강산 관광 사업을 벌이고 있는 현대측이 민주당 금강산 관광단을 수행한 기자들 가운데 북한이 '한국'이라는 우리 국호를 싫어한다고 해서 멀쩡한 이름을 'H일보'니, 'H경제신문'이니 하는 식으로 표기해 북한측에 방문신청을 냈다는 얘기가 실렸더군요. 대통령님께서도 역시 이 기사를 읽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요?

김대중 대통령님!
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한 순간의 흔들림도 없이 추진해 온 햇볕정책은 남북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미 탈냉전 체제에 접어든지 오래이건만 유일하게 냉전의 고도로 남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그토록 소망해 오셨고, 이제 목전에 둔 남북정상회담도 다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화와 공존! 그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데 누구도 이의가 없을 줄 압니다. 대통령님! 알아서 태극기를 떼어 내리고, 알아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는 게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까? 물론 아니라고 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정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의 기분만을 위해 비굴하게 '나'를 굽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존재를 부인하고서야 상호 인정과 존중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작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나', 곧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현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알아서 태극기를 떼어 내리고, 알아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모르긴 해도 그들은 북한측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북한을 자극하여 행여 햇볕정책을 다치게 하거나 무르익어가는 남북정상회담에 흠집을 내게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대통령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대통령님의 마음속 의지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들의 '대한민국을 부인한 행위'는 대통령님의 뜻을 이행하겠다는 사람들의 실천행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국민의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햇볕정책의 큰 성과로 꼽아 왔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단체로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던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남북교류일 수는 없습니다. 철조망이 쳐 있는 길을 따라 단지 좋은 경치나 구경하고 돌아올 뿐 북한 주민들과 만나볼 수도, 말 한마디 나눠볼 수도 없는 그런 것을 '교류'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금강산 관광이 남북간 해빙 무드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건 결국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대화'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근 북한의 평양교예단이 서울에 왔습니다. 며칠간 공연하는 대가로 무려 60억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이 정도의 대가가 타당한지 여부는 알지 못합니다만 무슨 까닭인지 얼마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오버랩되는군요. 4월이었던가요. 금난새 씨가 지휘하는 우리 공연단이 평양을 방문했다가 되돌아온 일이 있었지요. 당시 공연단은 2진으로 편성되어 북한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1진은 이미 평양에 들어간 상태였고, 2진은 북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헌데 북측이 평양공연 대가 100만 달러 외에 북측 공연단의 서울공연 대가를 별도로 요구하면서 2진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모두 철수한 일이 있었지요. 당시 평양공연 대가는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고 들었습니다.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우리 공연단이 평양에 가서 공연하는데 왜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도 납득이 잘 안되지만 하여간 그때의 일이 60억이라는 거액을 받고 서울에 온 평양교예단 소식과 오버랩되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이 모든 상황은 각각의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태극기를 알아서 떼어 내린 것이나, 금강산 관광길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린 것이나, 대화든 교류든 돈으로 사야만 하는 것이나 다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고, 그건 모두 '한국'을 지워버리는 행위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한국 지우기'의 배경은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도 있다'는 '의지'가 아닌지 걱정됩니다. '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김대중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는 곧 평양 방문길에 오르십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분단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부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호 인정과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상대를 인정하면서 대한민국은 '지워지는' 사태가 있어서는 더더욱 안될 것입니다. ♠ 조남현 (시사평론가/르포작가)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2003-12-23, 13:42 ] 조회수 : 14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