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환경주의자』
이상돈
브레인북스 (446쪽)
임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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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권의 남용
헌변
 林 炚 圭 (변호사)

1. 개인이 훈육(訓育)을 받지 않으면 제 욕심만 내고 형제를 괴롭히고 끝내 늙은 부모를 불행하게 한다.여러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기강(紀綱)을 세우지 못하면 사회를 해치고서 득을 보는 사람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어쩔 수 없이 한탄만 하는 쓰러져가는 사회가 된다.

예컨대 한 마을에서 가게에 가서 외상으로 술 사먹고 않갚은 채 다시 외상 안준다고 가게 유리창 깨고 행패하는 청년을 보고도, 홀어머니 밑에 자라는 외딸을 강제로 욕보이는 청년을 보고도, 내 집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편하게 여기며 가만히 사는 마을 청년들이 있는 그곳은 기강이 무너진 고약한 마을이 되어가고, 그 행패부리는 청년도 잘 대해주고 좋은 말로 권면하기를 계속하면 언제인가는 착해지리라고 설득만 하는 마을 어른이 좌정하고 있는 동네는 정의(正義)가 없는 곳이며 이사 떠나버려야 할 마을이 되어간다.

사회의 [기강]에 해당하는 영어말이 Discipline인데, 요새 우리사회에서는 이 Discipline이라는 영어단어를 모르는 대학생이 꽤 많다. 기강이니 기율(紀律)이니 하면 50대 이상 세대는 학도호국단이나 기율부원을 생각하는데, 현재의 우리사회는 기강, 기율이 손상되어가고 있는 사회로 되었다.나라만 망할 위험이 없다는 보장만 있으면 Discipline을 모르는 대학생들이 더 많아도, 기강에 관심없는 시민들이 많아도 우선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Discipline 즉 기강이 없으면 나라가 망해버린다는 반복되는 역사의 경고 때문에 뜻있는 사람들이 걱정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건국의 초대대통령에 추대받고도 거절한 바 있는 물리학자인 아인슈탄인(A. Einstein)은 1946년 6월 12일의 뉴욕타임스 기고에서『우리의 국가방위는 무장에 있지도 않고, 과학에 있지도 않고, 지하 방공호에 있지도 않다. 우리의 국가방위는 법질서속에 있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이것은『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오면 죽고 사람은 법질서 밖으로 나오면 죽는다』는 탈무드(Talmud)의 말을 현대적으로 재차 강조한 것이다.이스라엘 민족이 망하지 않는 정신이다.

2. 도로, 철도, 항만을 사회간접자본 또는 공공재(公共財)라고 한다. 교통질서, 철도시스템, 정확한 항만관리체계는 눈에 보이고 만져볼 수 있는 유형물체는 아니나 유형의 도로, 철도, 항만 자체에 못지 않은 공공재이다.

휴전선 철책, 탱크, 야포 역시 유형의 방위 공공재이지만, 충성심, 투지, 간첩의 색출과 엄정한 신상필벌 같은 Discipline도 유형방위공공재 못지 않은 공공재이다. 만약 누가 현재 휴전선 철책은 적군의 불신대상이고 조망(眺望)이 불편하다고 일부 잘라 없애버리고, 한국지형에 안맞는다고 갑자기 탱크수를 줄인다고 하면 매우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잡은 간첩도 형기만료 전에 석방해주어 대한민국에 충성심 없는 친구들의 열렬한 환영행사에 참석하여 큰소리 치게 한다면 이건 매우 이상스럽게 생각할 일인데도 너무 자주 벌어지는 행사가 되었다.Discipline이라는 공공재를 파괴하는 이상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4분기마다 반복되고 있다.

3.1절, 석가탄신일, 8.15, 크리스마스 줄잡아 네번은 꼭 Discipline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선진국같으면 몰래 뇌물 3천만원 받은 국회의원이 법관의 고심어린 3심을 거쳐 3년형을 확정받았다면 절대로 8개월만에 은사를 받고 나오지 못한다. 선진국 같으면 고정간첩으로 15년 잠복한 정부 자문위원이 법관의 고심어린 3심을 거쳐 7년형을 확정받았다면 절대로 1년만에 은사를 받고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3년 뇌물범이 8개월만에 나와도, 7년 간첩범이 1년만에 나와도 일반시민은 나 개인에게 당장 손해나는 일 아니므로 관심없고, 뇌물국회의원과 그 동조자들, 고정간첩과 그 친지들은 매우 기뻐하니까, 청와대의 정치가는 3.1절, 석가탄신절, 8.15, 크리스마스 때마다 관대하고도 멋있는 아량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정치적 계산을 하여 보아도 관심없는 시민은 분개할 리 없으므로 그들 표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계산되고, 석방된 사람들과 그 동조자들은 진심으로 고마워 열렬한 지지표로 돌아올테니 프러스 마이너스 계산해보면 득이된다. 게다가 종교인들까지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설교하니 이를 들어주는 것은 도량이 넓은 민족화합의 지도자가 되기 때문에 아주 득이 된다. 그러니까 3.1절, 석탄절일, 8.15, 크리스마스에 아량과 사랑과 자비가 넘치고 Discipline은 손괴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 번영하고 안전한 나라는 Discipline 공공재를 아낀다.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Discipline 공공재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아우성을 친다.

법질서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물 밖에 나가는 물고기가 된다고 시민들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시시하게 보이는 거짓 증언 하나 가지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시민들이 Discipline 공공재가 허물어지는 것을 아파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선진국보다 적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탄압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건국한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Discipline 공공재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원래 납품업자의 뇌물을 받은 자재과장을 눈감아 주고, 회사 설계도면을 이웃나라 업자에게 넘겨준 기술과장이 발각되었는데도 보직만 바꾸는 아주 아량과 사랑과 자비가 많은 고용사장이 4년만 멋있게 인심을 쓰면 그 회사는 망하게 되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규율과 회사기강을 소모시키면서 사장 개인의 인심을 쓰고서 망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자식 잘 키우는 가정 치고 Discipline 굳게 지키지 않는 가정 없고, 튼튼하게 발전하는 회사 치고 인심 잃어서라도 Discipline 고수하지 않은 회사 없다.

몽고족(요) 여진족(금)과 사활을 걸고 싸워 국토를 지키고 전세계에서 몽고기병대에 40년간 항쟁한 유일한 나라인 고려의 경우와, 한달 이내에 일본군이나 만주군에게 서울을 빼앗긴 조선조의 경우의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군인 유가족을 넉넉히 보살피는 것과 아울러 싸움터에서 도망한 자를 예외없이 처벌하고 쉽게 은전을 베풀지 않은 고려와 전사자 가족보다 시문(詩文)에 능한 자를 더 우대하면서 고관의 자식이라거나 하는 등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싸움터에 나가지 않은 자에게 은전을 베푼 조선조와의 차이다.

4. 현대 국가에서는 사람의 처벌은 사법부가 독립하여 양심에 따라 행하고 그것도 3번에 걸쳐 신중을 기하여 형을 확정한다.임금이 친국하고 즉흥적으로 처벌하고 귀양보내기도 하고 쉽게 은전을 베풀기도 하는 방식은 조선조때나 하던 일이다.

조선조에서 벼슬하는 양반의 경우는 귀양이 일종의 대기발령의 성격까지 띠고 있기 때문에 임금은 1년에 몇번씩 수시로 처벌을 취소하고 귀양을 바꿔주고 은사를 베풀고 하였다.

지금이 조선조가 아닌데도 하는 식은 몇사람의 정치적인 고려에다가 민족화합이니 하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여 사면권을 남용하기 때문에, 형을 5년 받는 사람도 교도소 형기를 시작하는 초입때부터 5년을 복역한다는 각오를 할 이치가 없으며, 복역시작때부터 사람을 시켜 로비를 하며 정치충성을 맹세하는 식의 온갖 방법을 써서 사면과 복권을 따낸다.

판사들도 자기들이 선고하여 확정된 형이 청와대에 가서 에누리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이건 사법권 독립의 법치국가가 아니라, 대법원 위에 청와대 사법실이 군림하는 형사4심제도이며, 법의 적용 위에 정치고려(政治考慮)가 재심(再審)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판사들이 다른 선진국보다 유달리 왜 형사부 담당을 싫어하고 천시(賤視)하는지 그만하면 알만하다. 국민들 특히 지식인들도 대한민국 법원의 형사 3심절차를 최종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검사나 판사를 우습게알고 있다.

이것이 최근 10년 가량 사이에 이른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 가져온 심각한 폐해의 현주소다. 이 상태에서 법의 존엄성을 찾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낚으려는 짓이 되다시피 하여 정치가들의 뒷돈거래에서, 국가에 배신하는 음모의 반역적 행위에서, 법을 어기는 폭력노동운동현장에서, 그리고 급진주의자들의 데모현장에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는 진흙밭에 밟히고 있는 것이다.그 진원지가 바로 사면권의 남용임을 대한민국 국민이 깨닫는 날부터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비로소 재건될 것이다.

5. 미국에서는 1972부터 1974까지 3년 이상에 걸쳐 월남전 기피자에 대한 조건부 사면에 관한 의회와 대통령의 신중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조사에서 연방수사당국, 재향군인회, 참전군인, 포로부인, 기피자, 저명한 역사학자, 신학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월남전 기피자를 사면한다면 월남전에서 싸우던 아들을 잃은 부모, 남편을 잃은 아내,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 월남전 포로, 행방불명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장차 미국 군인의 사기와 충성은 어떻게 될 것이냐를 깊이 고민한 끝에 월남전 휴전이 있은 다음에야 사면이 내려진 바는 있다.

이것도 1869년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남쪽 반란자들을 사면한지 100여년만의 국가안보에 관한 사면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최근 10여년간의 사면은 역사적인 것도 아니고, 신중하지도 않고, 국가안보를 고민한 흔적도 없는 즉흥적인 사법판결 무효화의 인기정치행위였다.

우리나라는 사법부의 신중한 확정판결을 행정부가 손쉽게 무효화시키는 사면과 복권을 남발하는 국가로 전락했다. 이는 우리국민이 Discipline 공공재를 아끼는 정의감이 아직 좀 부족하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정치계산상 일시적으로 득이 된다는 판단 아래 행하여지는 정치행위라고 사료된다.

6. 사면권 행사의 내용도 아주 좋지 않다.[자유]라는 단어를 제일 적절하게 세상이 정의(定義)해 본 일이 없다.양들의 목덜미에 찾아온 늑대를 쫓아낸 양치기에게, 양들은 [해방자]라고 고마워하지만, 늑대는 그 양치기를 [자유방해자]라고 규탄할 것이다.간단히 말해 양들과 늑대들은 자유의 개념에 관해 합의한 일이 없다.

이건 링컨(A. Lincoln)이 1864년 4월 남북전쟁 중에 한 말이다. 그때에는 전쟁중이었으나 북군이 전투에서 3천명이 전사하는 대패전을 입어도 링컨대통령은 장군에게 격려하고 회의를 소집하여 반격할 수 있는 50일의 여유가 있었으나, 이 대한민국은 5시간 안에 3백만명의 인명이 다칠 수 있는 휴전파기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여유없는 곳이다.

링컨의 정부는 늑대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자기를 전복하려는 중무장세력에게 돈을 갖다주게 하고 일부 잘못된 지식인들은 늑대와 양 사이에 중립을 지키자고 하면서 그게 민족화해운동이라고 떠들고 있다.

쇠퇴하여 망해가는 나라에서 지식인들이 부당한 인권운동 많이 한 예를 들어보자.1960년대 후반부터 월남의 언론인들, 교수들, 지식인들, 종교인들의 상당수들이 월남정부 편도 들지 않고 반도(叛徒)인 베트콩편도 들지않고 어느쪽에도 가담치 않은자 말하자면 중립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미화하고 그들의 이적행위를 정부가 조사하면 인권탄압이라고 아우성쳤다.월남의 자유체제가 비록 그것이 군인들의 집권이라 하더라도 월맹과 베트콩연합세력과 사활을 걸고 싸우는데, 인민들에게 월남정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중립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것을 자유라고 떠드는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걸핏하면 극우니 반동이니 하고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떠드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라.

그들이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적대적이 아니라고 좋게 보아주더라도 대한민국 헌법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가볍에 여기는 중립주의자들인 경우가 많다.

중립을 자랑하고 대한민국을 해코지해도 그럴듯한 떼를 쓰면서 국가보안법을 악법이라고 우기면 사면을 받고 복권을 받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사면권 행사는 그 내용도 나라존립에 아주 좋지 않다.
[ 2003-12-23, 13:24 ] 조회수 : 13796